해제(解題)

 

본 『심양창화록(瀋陽唱和錄)』은 조선 인조(仁祖) 때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일행으로서 함께 심양(瀋陽)으로 갔던 세자의 빈객(賓客)이었던 유촌(柳村) 한형길(韓亨吉) 등의 시신(侍臣) 및 이경석(李景奭)과 같은 척화신(斥和臣) 등, 그리고 사절신(使節臣) 등이 전후로 와서 심양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틈틈이 서로 만나 수창한 시집이다. 본 시집은 한형길의 후손 한기연씨의 소장본이다.

본 『심양창화록』은 필사본인데 필사 연도 및 필사자는 알 수 없다. 분량은 총 58장 115쪽인데 서문을 비롯한 앞부분 3장이 찢겨나갔으며 책의 모서리가 낡고 군데군데 쥐가 쏠아서 상당수의 글자가 유실된 상태이다.

『심양창화록』의 시대적 배경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 소현세자는 1637년 1월에 남한산성이 함락되어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한 후 같은 해 4월에 볼모가 되어 심양으로 끌려갔다. 이듬해 봉림대군(鳳林大君)이 청황제의 서정(西征)에 동행하였다. 청나라는 명나라와의 전쟁에 조선군의 파병을 강요하였는데, 이를 반대한 김상헌(金尙憲) 등이 1640년 12월에 심양으로 붙잡혀갔다.

소현세자는 1640년 2월에 심양에서 돌아왔다가, 1641년 9월 이완(李完), 임경업(林慶業) 등과 함께 청나라의 금주성 공격에 참가하였다. 이후 1644년 1월에 소현세자는 서울로 돌아왔다가 4월에 청나라의 서정(西征)에 참가하였고, 1645년 2월에 서울로 돌아와서 4월에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긴박한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심양수창록』 속의 수창자는 ․유촌 한형길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청호(靑湖) 이일상(李一相) ․현계(玄溪) 박서(朴遾) ․미천(薇川) 유경창(柳慶昌) ․낙주(洛州) 구봉서(具鳳瑞) 등이다.

유촌 한형길(1582-1644:선조 15-인조 22)은 자가 태이(泰而)이다. 1620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영변판관(寧邊判官), 서천군수(舒川郡守) 등을 지냈다. 이괄의 난 때는 공주로 왕을 호종하였고, 사헌부 지평과 장령을 거쳐 충원(忠原)목사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있었는데, 삼전도에서 왕이 항복할 때 배종하였다. 이후 우승지(右承旨)를 지내고 조정사(朝正使)로서 심양에 다녀왔다. 호조 병조참판 등을 지내고 1642년 좌부빈객(左副賓客)으로서 세자를 모시고 심양으로 갔으나 2년만에 병으로 귀국하였다.

백헌 이경석(1595-1671:선조 28-현종 12)은 자가 상보(尙補), 별호는 쌍계(雙溪)이다. 병자호란 당시 부제학으로서 삼전도(三田渡)의 비문을 찬진(撰進)하였고, 대제학, 이조판서를 지내고, 1642년 세자 이사(世子貳師)로서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신(斥和臣)으로 심양(瀋陽)에 잡혀가서 1년간 봉황성(鳳凰城)에 구금되었다.

청호 이일상(1612-1666:광해군 4년-현종 7년)은 자는 함경(咸卿)이다. 별호는 춘파(春坡)이다. 영의정 이정귀(李廷龜)의 손자이며, 이조판서 이명한(李明漢)의 아들이다. 1633년 설서(設書)가 되고, 검열(檢閱)을 거쳤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정언(正言)으로서 화의를 반대하였다가 이듬해 척화죄인(斥和罪人)으로 절도(絶島)에 유배되었다. 그 후 풀려나와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였다. 1654년(효종 5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청나라의 실정을 보고하여 효종의 북벌계획 수립에 도움을 주었다.

현계 박서(1602-1653:선조 35-효종 4)는 당시 보덕(輔德)으로서 자가 상지(尙之)이다.

미천 유경창(1593-1662:선조 26-현종 3)은 자가 선백(善伯)이며 별호는 성탄(聲灘)이다. 인조 6년에 별시문과에 뽑히어 수찬(修撰), 교리(校理), 지평(持平) 등을 지냈다. 1644년에 사서(司書)가 되고, 이듬해 헌납(獻納), 이조좌랑(吏曹佐郞)이 되었다.

낙주(洛州) 구봉서(1597-1644:선조 30-인조 22)는 자가 경휘(景輝)이다. 이조정랑 변(忭)의 증손이며, 계(棨)의 아들이다. 1617년 생원시를 거쳐 1624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였고, 참의, 승지를 거쳐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병자호란 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들 외에 퇴헌(退軒)이 있는데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다.

아무튼 이들의 면면은 당시 조선의 대표적인 문인들인데 심양과 관련된 그들의 행적으로 볼 때 『심양창화록』은 대략 1642년경에 이룩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심양창화록』 속의 시는 대부분 심양에 볼모로 붙잡혀 있는 자신들의 처량하고 불안한 신세를 탄식하고 고국으로의 귀환을 갈망하는 내용들이다.

 

函谷重關阻 함곡관의 중첩한 관문이 막히고

歸程萬里餘 돌아갈 길은 만리가 넘네

空憐燕有社 공연히 제비에게 사일이 있음이 부러운데

却嘆雁無書 다시 기러기의 편지 없음을 한탄하네

砌冷蛩音急 섬돌 차갑고 귀뚜라미소리 급한데

簷虛月影踈 처마는 비고 달 그림자는 성그네

中宵坐不寐 한밤중 앉아서 잠 못 이루고

愁寂楚囚如 근심 속에 초나라 죄수와 같네

 

이는 유촌 한형길의 시인데, 자신을 초수(楚囚)로 비유하고 있다. 초수는 춘추시대 초(楚)나라 종의(鍾儀)로서 진(晉)나라의 옥사에 갇혀있었던 인물이다. 이처럼 종의나 혹은 흉노에게 19년 동안이나 억류되어 있었던 한(漢)나라의 소자경(蘇子卿)으로 볼모인 자신들의 신세를 비유하며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자신들의 불안하고 처량한 심경을 부치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청나라와 명나라의 전쟁을 지켜보며 심각한 국제정국에 대한 불안한 심사를 표명하였다.

 

遼陽形勢昔開營 요양의 형세는 옛날에 진영을 열었고

威震陰山虜瞻驚 위엄 떨진 음산을 오랑캐들 놀라서 바라보았네

頗老有機望列障 염파 늙은이는 책략을 지니고 여러 요새를 바라보았는데

奢兒無略失長城 조사의 어린 아이는 계략이 없어 만리장성을 잃고 말았네

疆場戲戲餘千里 국토가 기쁘게도 천리가 넘는데

戰伐年年苦萬生 전쟁이 해마다 일어나 만 백성이 괴롭네

可惜衣冠華夏地 애석하구나 의관 입은 중국의 땅

積骸成莽黑煙橫 쌓인 해골이 덤불을 이루니 검은 연기 비켜 있네

 

염파(廉頗)는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장수로서 북방의 이민족을 막아냈던 인물이고 조사(趙奢)의 아들 괄(括)은 장평(長平)의 싸움에서 4십만의 조(趙)나라 군사를 잃고 대패하였다.
오랑캐인 청나라를 막아내지 못하고 멸망해가는 문명국가인 명나라에 대한 안타까운 심회를 담고 있다. 이는 결국 조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명인 것이다.

『심양창의록』의 시편들은 대략 이런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백헌 이경석의 『백헌집(白軒集)』에 『심양수창록』 속에 있는 자신의 시편들을 모두 수록해 놓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수록 시편에 상호 출입이 있다. 이런 면에서 『심양수창록』은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중요한 일차적 사료라고 생각된다.

 

2005년 1월 정취재에서 문학박사 기태완

 

詩出於不平鳴耳. 其聲淸濁哀樂, 隨所發而異焉. 古之善鳴者, 不遇之時, 雖各不同. 未有如吾儕之人○日也. 諷詠景 (이하 2장 탈락)

能言剛腸不能耐. 如贅一辭. 只今人增感慨而銷魂骨, 故略之, 待後來能言者也歟.

 

서(序)

시란 불평의 소리에서 나올 뿐이다. 그 소리의 맑고 탁함과 슬프고 즐거움은 가는 장소에 따라서 나오므로 서로 다르다. 옛날의 잘 울린 자들은 불우한 때가 각자 서로 달랐지만 우리들이 (처했던) 날과 같은 것은 없었다. 풍경을 읊고(2장 탈락)

능언(能言)은 강장(剛腸)일지라도 참아낼 수 없는데, 군더더기는 모두 사양하였다. 다만 지금 사람들은 더욱 감개하고 혼과 뼈를 삭인다. 그러므로 그것을 대략 언급하고. 후래의 능언자를 기다린다.

 

瀋陽唱和錄(심양창화록)

 

異地同爲客 이역에서 함께 나그네가 되니

休論骨肉親 골육의 친애함을 말하지 마오

悲歎談笑盡 비탄 속에 담소를 다하고

歎曲性情眞 탄식의 곡조는 성정이 참되네

忠信宜相勉 충성과 신의로써 마땅히 서로 권면하고

記箴不願頻 잠계를 적는 것이 빈번함을 원하지 않네

人生貴知己 인생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니

乃爲質神明 곧 신명에게 물어보겠네

(이하 2장 탈락)

 

殊邦節侯近重陽 이역의 절후가 중양절에 가까우니

無限羈愁憶旧鄕 무한한 나그네 시름에 고향을 생각하네

尙憙連床陪笑語 오히려 기쁘게 침상을 나란히 하고 담소를 나누며

有時沽酒引壺觴 때때로 술을 사와 술병과 잔을 이끄네

窮荒漠漠秋陰薄 궁벽한 황야는 막막하게 가을 그늘 엷은데

孤館寥寥日色凉 외로운 여관은 쓸쓸하고 날 빛은 처량하네

自嘆亂來經卷席 난리 이래 권석을 겪은 것을 자탄하며

强趨筵席續難詳 억지로 연석에 나아가서 잇는 것이 상세하기 어렵네

 

주석

1)殊邦(수방): 이방(異邦). 이역(異域).

2)卷席(권석): 권석(捲席)과 같음. 자리가 뒤집어지듯 기세가 흉맹(凶猛)한 것.

3)筵席(연석): 임금과 신하가 모이어 자문주답(諮問奏答)하는 자리. 여기서는 심양에 볼모로 잡혀와 있는 소현세자와의 강론하는 자리를 말함.

 

官府寥寥近夕陽 관부는 쓸쓸하게 석양에 가깝고

共將愁病睡爲鄕 함께 근심 병으로 잠을 고향으로 삼네

塵沙撲面難乘興 모래먼지 얼굴을 치니 흥이 나기 어렵지만

談笑傾心且盡觴 담소로 마음 쏟으며 다시 술잔을 비우네

連夜(이하 2장 탈락)

 

恾驂未識華山陽 말 걱정에 화산의 남쪽을 알지 못하고

白首驅馳又他鄕 백발로 내달리니 또 타향이네

下澤尙違平日計 택지에 빠져 오히려 평일의 계책을 어겼는데

殊方猶把故人觴 이역에서 오히려 고인의 술잔을 드네

燈前客夢和愁亂 등불 앞 나그네 꿈은 근심으로 어지럽고

磧裏秋陰挾雨凉 자갈 속 가을 그늘 비를 끼고 차갑네

無限中情難說盡 무한한 마음의 정을 말로 다하기 어려운데

家書宜略不宜詳 집안 편지는 소략하고 상세하지 못하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李景奭)의 『백헌집(白軒集)』권6에 <이헌납함경 일상운(李獻納咸卿 一相韻)>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茫驂(망참): 곁에 맨 말(馬)을 걱정함.

3)華山陽(화산양): 화산의 남쪽. 화산은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화양시(華陽市) 남쪽에 있는 산. 옛날 오악(五嶽) 중의 하나였음.

4)下澤(하택): 수레가 택지로 빠짐.

5)殊方(수방): 이방(異邦). 이역(異域).

6)故人(고인): 친구. 벗.

 

欹枕寥寥又夕陽 베개에 기대니 쓸쓸하게 또 석양인데

一秋魚蟹隔江鄕 한 가을의 물고기 게들 강 마을 너머에 있네

詩驚塞路初更夢 시 짓다가 변새 길의 초저녁의 꿈에 놀라고

酒憶秦樓旧把觴 술 마시다가 진루에서 옛날 잡았던 술잔을 추억하네

人事不堪成遠別 인사는 먼 이별을 감당할 수 없는데

天時何更動新凉 천시는 언제 다시 새 서늘함이 움직이는가

靑坊咫尺瞻依幸 청방을 지척에서 바라보니 다행인데

欲記荒詞愧未詳 황사를 기록하려니 상세하지 못해 부끄럽네

 

주석

1)秦樓(진루): 진목공(秦穆公)이 그의 딸 농옥(弄玉)을 위해 건축한 누대. 봉루(鳳樓)라고도 함. 후에 기원(妓院)의 의미로도 쓰임.

2)靑防(청방): 청궁(靑宮). 세자의 거소(居所). 이 당시 인조(仁祖)의 장남인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 효종)이 심양(瀋陽)에 볼모로 붙잡혀 있었음.

3)荒詞(황사): 황사(謊詞). 충실하지 못한 말.

 

又 輔德(보덕)

行李何時別洛陽 행장 꾸려 언제 낙양을 떠났던가?

暮年羈里共他鄕 모년에 떠도는 마을 모두 타향이네

衰容却愧頻看鏡 쇠한 얼굴은 빈번히 거울 보기가 도리어 부끄럽고

豪氣猶能如擧觴 호기는 술잔을 드는 것처럼 오히려 능하네

遼海晝陰稀見日 요해의 낮 어둠 해를 보기 드물고

塞天秋露早生凉 찬 하늘 가을 이슬이 일찍이 서늘하네

沈吟欲寫心中事 침음하며 심중의 일을 적으려 하니

自笑荒詞話不詳 스스로 우습구나 황사의 말 상세하지 못하네

 

주석

1)輔德(보덕): 박서(朴遾)를 말함. 인조 때의 문신. 자는 상지(尙之), 호는 현계(玄溪)이다. 보덕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3품 관직. 세자에게 경사(經史), 예절, 도의 등을 가르침.

2)行李(행리): 행장(行裝).

3)洛陽(낙양): 낙수(洛水)의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서 중국 역대 왕조의 수도였음. 여기서는 수도의 대칭으로 쓰여 조선의 한양(漢陽)을 가리킴.

4)遼海(요해): 요동(遼東)을 말함. 요하(遼河) 동쪽 일대의 연해지역.

 

雙闕連天是漢陽 쌍궐이 하늘에 이어지니 곧 한양인데

歸心非獨戀家鄕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가향을 그리워해서 만은 아니네

秦關遠隔三千里 진관은 멀리 삼천 리나 떨어져 있어

虜酒時傾累十觴 오랑캐 술을 때때로 몇 십 잔 기울이네

鴻雁欲征秋夜永 큰기러기는 길 떠나려는데 가을 밤 길고

羝羊不乳塞雲凉 숫양은 젖이 나지 않는데 변새의 구름 차갑네

胸中自有無窮恨 흉중에 절로 무궁한 한이 있는데

句裏那能記得詳 시구에 어찌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겠는가?

 

주석

1)이 시는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의 『백헌집(白軒集)』권6에 <화이헌납함경(和李獻納咸卿)>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이경석(1595(선조 28)-1671(현종 12))은 자가 상보(尙補), 호는 백헌(白軒), 쌍계(雙溪)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덕천군(德泉君) 후생(後生)의 6대손이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유간(惟侃)의 아들로서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13년 진사가 되고, 1623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다가 이듬해 주서(注書), 대교(待敎)를 지냄.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굴복하자 부제학으로서 삼전도(三田渡)의 비문을 찬진(撰進)하였음. 대제학, 이조판서를 지내고, 1642년 세자 이사(世子貳師)로서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신(斥和臣)으로 심양(瀋陽)에 잡혀가서 1년간 봉황성(鳳凰城)에 구금되었음. 돌아와서 대사헌, 이조판서를 지내고 1645년 우의정이 되어 이듬해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649년 영의정에 올랐다. 이듬해 김자점(金自點)의 밀고로 효종의 북벌계획이 청나라에 알려져 추궁당하자 책임질 것을 자청하여 청나라에 의해 백마성(白馬城)에 감금되었다. 1651년(효종 2년)에 석방되었으나 청나라의 압력으로 다시 등용되지 못하고, 1659년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남인으로서 송시열 등의 서인에게 여러 번 배척을 당하였으나 왕의 신임으로 유임되었으며, 1668년(현종 9)에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2)秦關(진관): 진(秦) 지역의 관소(關所). 관중(關中) 지역을 가리킴.

3)저양불유(羝羊不乳): 숫양은 젖이 나오지 않음. 불가능한 일을 비유함. 숫양은 젖이 나오지 않는 법인데 계절에 맞지 않게 변새에 눈이 내리고 있다는 뜻임.

 

回車未敢學王陽 수레 돌려 감히 왕양을 배우지 못하고

絶域危途隔故鄕 외딴 지역의 위험한 길은 고향을 격해 있네

政憶彩衣曾侍坐 진정 색동옷 입고 모시던 때를 추억하는데

忝將斑鬢共稱觴 흰 귀밑머리 보태고서 함께 술잔을 따르네

洛中舊會猶如昨 낙중의 옛 모임 어제만 같은데

遼左新秋又作凉 요좌 땅 새 가을에 서늘함이 일어나네

前夜夢尋東路去 전날 밤 꿈에서 동쪽으로 가는 길을 찾았는데

短長亭堠杳難詳 낮고 높은 정후들 아득하여 분간할 수 없었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차이헌납함경일화운(次李獻納咸卿一和韻)>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王陽(왕양): 왕양낭의(王陽曩衣)의 고사를 말함. 전한(前漢) 때의 왕길(王吉)은 자가 자양(子陽)인데, 금은 비단과 같은 재물에는 청렴하였으나 수레와 의복에는 사치를 하였다고 함.

3)彩衣曾侍坐(채의증시자):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늙은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었던 노래자(老萊子)의 고사를 취해 부모를 모시던 때를 가리킴.

4)洛中(낙중): 원래 낙양(洛陽)을 말하나 여기서는 한양을 가리킴.

5)遼左(요좌): 요동(遼東) 좌측 지역.

6)亭候(정후): 변경을 살피고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보루.

 

夜夜鐘聲憶景陽 밤마다 종소리에 경양을 추억하고

消憂無賴醉爲鄕 근심 풀길 없어 취함을 고향으로 삼네

尙書行色霜侵鬢 상서의 행색은 서리가 귀밑머리에 침범했고

學士風流托滿觴 학사의 풍류는 가득한 술잔에 의탁하였네

客裏不堪頻聚散 나그네길에 빈번한 모임과 헤어짐을 감당할 수 없는데

天涯已變幾炎凉 하늘 끝은 이미 변하여 몇 번의 더위와 추위였던가?

雍容歸席吾何效 옹용히 자리로 돌아와 내 어찌 본받을 수 있으랴

除却茶經紹未詳 다경을 밀쳐두고 잇고자 하나 상세하지 못하네

 

주석

1)景陽(경양): 남조(南朝) 때의 궁(宮)의 이름. 제무제(齊武帝)가 누대 위에 종을 설치하고 궁인들에게 종소리를 듣고 일찍 일어나서 치장하게 하였음.

 

又 輔德(보덕)

遼水東邊古瀋陽 요수 동변의 옛 심양

此間風土異故鄕 이 지역의 풍토는 고향과 달라서

狐裘不脫仍三夏 여우 갖옷을 벗지 않았는데 한 여름으로 이어지네

駱駝何堪晝一觴 낙타주는 어찌 한 잔을 다 마실 수 있겠는가

客裏光陰空荏苒 나그네길 세월만 공연히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病中懷抱轉凄凉 병중에 회포만 더욱 처량하네

悲辭却怕傍人聽 슬픈 말 옆 사람이 들을까 두려워서

無限哀懷說未詳 무한한 슬픈 회포 상세하게 말하지 못하네

 

주석

1)駱駝(낙타): 낙타의 젖을 발효시킨 음료수.

 

又 二師(이사)

葵藿難知向太陽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하는 것을 알기 어렵고

鷺鷗偏愛水雲鄕 백로와 갈매기는 수운향만 좋아하네

可堪沙漠連金闕 사막이 금궐로 이어짐을 감당하니

長懷瓢盃替玉觴 표주박 술잔 옥 술잔으로 바뀔 것을 오래 생각하네

白鶴不來華表逈 백학은 오지 않는데 화표주는 멀고

靑蛇時拂翔風凉 청사는 때때로 떨치는데 삭풍이 차갑네

須看當日刀環親 반드시 당일에 귀환하여 양친을 보리니

意在無言不在詳 뜻은 무언에 있고 상세함에 있지 않네

 

주석

1)二師(이사): 이경석을 말함. 이사는 세자이사(世子貳師)의 준말로서 세자시강원의 종일품 벼슬.

2)水雲鄕(수운향): 물이 흐르고 구름이 떠도는 곳. 속기를 떠난 맑은 곳을 말함.

3)華表(화표): 고대에 왕이 상소를 받거나 혹은 지시하는 도로에 세운 나무 기둥. 여기서는 전설 속의 요동 사람 정령위(丁令衛)가 젊어서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학이 되어서 돌아와 화표주에 앉았다는 고사를 말하고 있음.

4)靑蛇(청사): 고대 보검(寶劍)의 이름. 검의 범칭으로 사용.

5)刀環(도환): 고향으로 돌아감. 환(環)과 환(還)의 발음이 같아서 은어로 쓰임.

 

又 輔德(보덕)

自嘆吾生逢不辰 나의 생애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스스로 탄식하는데

殊方客味更酸辛 이국에서의 나그네 음식도 괴롭기만 하네

始知一飯難忘德 밥 한 그릇도 그 덕을 잊기 어려움을 비로소 알겠는데

誰道千鍾不醉人 누가 천 종의 술에도 취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坐榻欲穿生蚤虱 좌탑은 구멍이 나려는데 이와 벼룩이 생겨나고

朝衣將綻染沙塵 조의는 실밥이 터지려는데 모래먼지 묻어 있네

何時得遂東歸計 어느 때나 동쪽으로 돌아갈 계획을 이루어

因賞煙花故園春 고향 동원의 봄날에 연화를 구경할 것인가?

 

주석

1)鍾(종): 술잔.

 

又 二師(이사)

夜夜沈吟坐到辰 밤마다 침음하며 날을 세우고

十年多難飽悲辛 십 년간 다난하여 슬픔을 만끽하였네

○憐白髮三千丈 가엽구나 백발 삼천 장

敢道明時茅一人 밝은 때 띠집 속의 한 사람을 말하리라

壟水寒聲添孤恨 언덕의 물 차가운 소리 외로운 한을 더하고

塞天秋色乘兵塵 변방 하늘의 가을빛엔 전쟁의 먼지가 올랐네

消憂○亟杯中物 근심 풀 잔 속의 술이 없는데

安得雲安麴米春 어디서 운안의 국미춘을 얻을까

 

주석

1)雲安麴米春(운안국미춘): 운안에서 생산하는 술 이름. 두보(杜甫)의 <발민(拔悶)>시에 “聞道雲安麴米春, 纔傾一盞卽醺人”이라 하였음.

 

龍光鬱鬱射星辰 용천검의 빛은 울울히 별들을 쏘는데

駒隙駸駸足苦辛 세월만 침침히 내달려 고통스럽네

歲去仍爲天末客 세월 가는데 하늘 끝의 나그네 되어

秋來未見日邊人 가을이 와도 해 가의 사람을 보지 못하겠네

狼烟不是平安火 사나운 연기 평안할 때의 불이 아닌데

鶴塞猶飛戰伐塵 학새엔 오히려 전쟁의 먼지가 날고 있네

白首追思行樂日 백발로 행락하던 날을 추억하는데

黃花爛醉洞庭春 황화는 동정춘에 만취하였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박상지서(和朴尙之遾)>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龍光(용광): 고대 보검인 용천검(龍泉劍)의 빛.

3)鬱鬱(울울): 기(氣)가 성한 모양.

4)駒隙(구극): 흰 망아지가 벽의 구멍을 지나가는 것처럼 세월이 빠름을 말함.

5)駸駸(침침): 빠르게 내달리는 모양.

6)鶴塞(학새): 지명. 지금의 강서성(江西城) 구강시(九江市).

7)洞庭春(동정춘): 동정춘색(洞庭春色)의 준말. 술 이름. 황감(黃柑)을 넣어 빚은 술로 색이 노랗다. 황화(黃花)는 노란 국화로서 동정춘색의 노란색으로 피었다는 의미.

 

又 輔德(보덕)

貳師仙露歸烏有 이사의 선로가 돌아갈 곳이 어찌 있겠는가

賓客新醪熟也無 빈객들 새 술의 익음 또한 없네

政是中秋月明夜 진정 중추의 달 밝은 밤인데

團圓肯許少年俱 단원절을 기꺼이 젊은이와 함께 함을 허락하네

 

주석

1)貳師(이사): 이사(二師).

2)團圓(단원): 단원절(團圓節). 음력 8월 15일 추석 명절.

 

又 李獻納 一相 (이헌납 일상)

心存玉壺泣袁安 옥호에 마음 두고 원안을 슬퍼하는데

況復他鄕節序闌 하물며 타향에서 다시 계절이 바뀜에랴

殘角斷雲沙塞逈 남은 뿔피리 소리 끊긴 구름은 사막의 변새에서 멀고

五更歸夢玉樓寒 오경의 돌아가는 꿈은 옥루에서 차갑네

秋來不厭持杯數 가을되어 쥐는 술잔의 숫자를 꺼리지 않고

世亂方知快意難 세상의 난리에 바야흐로 유쾌한 뜻이 어려움을 깨닫네

同病每憐同作客 같은 병으로 함께 나그네가 됨을 항상 동정하는데

又經人事幾悲歡 또 다시 인사 속에 몇 번의 슬픔과 기쁨을 겪었던가

 

주석

1)이일상(李一相: 1612(광해군 4년)-1666(현종 7년)): 조선 문신. 자는 함경(咸卿), 호는 청호(靑湖), 본관은 연안(延安). 영의정 이정귀(李廷龜)의 손자, 이조판서 이명한(李明漢)의 아들. 1628년(인조 6년)에 17세로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으나 연소하여 벼슬을 하지 않고 있다가 1633년 설서(設書)가 되고, 검열(檢閱)을 거쳤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정언(正言)으로서 화의를 반대하였다가 이듬해 척화죄인(斥和罪人)으로 절도(絶島)에 유배되었다. 그 후 풀려나와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였다. 1654년(효종 5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청나라의 실정을 보고하여 효종의 북벌계획 수립에 도움을 주었다. 1657년 부제학으로 실록수정청당상(實錄修正廳堂上)이 되어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편찬에 참여하고, 이어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에 올랐다. 현종 때 예조판서에 이르렀고, 죽은 후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2)玉壺(옥호): 옥으로 장식한 항아리. 옥호(玉壺氷)에 마음 둠은 고결함을 비유함.

3)袁安(원안): 한(漢)나라 때의 고사(高士).

 

由來得喪漫營營 득상으로 인해 몹시 부지런히 오갔는데

萬事人間一夢驚 인간세상 만사가 한 꿈속에 놀라네

醉興喜傾鸚鵡杓 취흥에 즐겁게 앵무잔을 기울리고

歸心愁隔鳳凰城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근심 속에 봉황성에 격해 있네

羈臣共託靑圍近 떠도는 신하는 함께 청위에 의탁하여 가까운데

志士偏知白髮生 지사는 백발이 돋음을 깨닫네

況是天涯搖落後 하물며 하늘 끝에서 요락하게 된 후

不禁淸淚下縱橫 맑은 눈물 마구 흐름을 금할 수 없네

 

주석

1)得喪(득상): 득실(得失). 명리(名利)를 얻고 잃음.

2)鸚鵡杓(앵무표): 앵무배(鸚鵡杯). 앵무새를 새긴 술잔.

3)鳳凰城(봉황성): 경성(京城). 장안(長安)을 말함. 여기서는 한양을 가리킴.

4)靑圍(청위): 태자의 동궁(東宮). 전하여 태자가 거처하는 곳.

 

夢裏分明舞彩衣 꿈속에 춤추던 색동옷 분명한데

不言人世有生離 인간 세상의 생이별을 말하지 않네

無端鼓角邊風急 무단히 북과 뿔피리소리 변방 바람 속에 급하니

政是孤燈欲滅時 바로 외로운 등불이 꺼지려 할 때이네

 

天涯蕭瑟又逢秋 하늘 끝 쓸쓸한데 다시 가을을 만나

日日歸心逐水流 매일매일 돌아가고 싶은 마음 물 흐름을 따라가네

忽見東飛雲一片 문득 동으로 날아가는 구름 한 조각을 보니

夕陽如帶故園愁 석양은 고향생각의 수심을 띠고 있는 것 같네

 

八月邊風近授衣 팔월 변방 바람은 수의에 가까운데

客來身世病支離 나그네 신세 병들어 지리하네

生憎一陳南飛雁 한 떼의 남으로 나는 기러기가 미워지니

叫破長安夢幻時 그 울음소리 장안의 몽환을 깨뜨리네

 

주석

1)授衣(수의): 음력 9월의 별칭.

2)長安(장안): 여기서는 한양을 가리킴.

 

腸斷西河館裏秋 애끊는 서하관의 가을 속에

淚添殘燭枕邊流 눈물이 스러지는 촛불에 보태져 베개 가에 흐르네

鄕書寄與東歸使 고향편지 동쪽으로 돌아가는 사자에게 부치고

入夜蟲聲不盡愁 밤이 되어 벌레소리에 수심이 그치지 않네

 

絶域秋風吹客衣 외딴 이역의 가을바람 나그네 옷자락에 불어오니

斷腸非獨有傷離 애끊는 마음 이별을 상심해서 만은 아니네

逢人若問吾消息 만나는 사람이 혹시 내 소식을 묻거든

白雁南飛是去時 흰기러기 남쪽으로 날 때가 갈 때라고 하오

 

萬里風沙八月秋 만리의 모래바람 팔월 가을인데

悲懷不覺淚橫流 슬픈 회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흐르네

行臨鴨水休西望 떠나가 압수에 임하여 서쪽을 바라보지 마오

落日雲山總是愁 운산에 지는 햇살 모두 이 수심이라오

 

주석

1)鴨水(압수): 압록강(鴨綠江).

 

又 二師(이사)

敲推漫自費吟安 추고하며 몹시 시에 공들이며 편안하니

漸覺詩場興易闌 점차 시장의 흥이 무르익음을 깨닫네

黃鵠尙傳遺曲咽 황곡가는 오히려 남은 곡조 전하며 애달픈데

白鷗應笑舊盟寒 백구는 마땅히 옛 맹세를 비웃으며 차갑네

人謀已失秦關險 사람의 계책 이미 진관의 험난함을 잃었으니

客路休嗟蜀道難 나그네길에 촉도의 험난함을 한탄하지 마오

塞日荒凉邊月苦 변새의 날은 황량하고 변방의 달빛 괴로운데

秋來何處可拚歡 가을되어도 어느 곳에서 즐길 수 있겠는가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수박상지(酬朴尙之)>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黃鵠(황곡): 황곡가(黃鵠歌). 고대 가요의 이름.

3)白鷗(백구): 흰 갈매기. 백구에 대한 맹세는 은거를 말함.

4)秦關(진관): 진(秦) 지역의 관소(關所). 이 구절은 명나라가 험난한 진관을 지키지 못하고 후금에게 나라를 빼앗겼음을 암시함.

5)蜀道(촉도): 남방 촉(蜀) 땅으로 가는 길 .예로부터 험난하기로 유명하였음.

 

又 輔德(보덕)

此身無處蹔求安 이 몸은 잠시의 편안함을 구할 곳이 없는데

酒興詩情久已闌 주흥에 시정이 오래 무르익었네

別洛四千工部恨 낙양을 떠난 사 천리는 공부의 한이며

行年五十漂陽寒 떠돈 세월 오십 년 표양이 차갑네

抽琴歡○廣陵散 금을 빼어 광릉산을 즐겁게 연주하고

撫劍空歌行路難 검을 어루만지며 공연히 행로난을 불러보네

賴有丈人○○意 다행히 어른의 후의가 있어서

一尊談笑聲交歡 한 동이 술로 담소소리 즐거움을 나누네

 

주석

1)工部(공부): 공부시랑(工部侍郞)을 지냈던 두보(杜甫)를 말함. 수도 장안을 떠나 남방의 촉 지방을 떠돌다 죽었음.

3)廣陵散(광릉산): 금곡(琴曲)의 이름. 삼국 위(魏)나라 혜강(嵇康)이 이 곡을 잘 탔다고 함.

4)行路難(행로난): 고대 악부곡(樂府曲)의 이름.

 

棲遲未借一枝安 정처 없이 떠돌며 작은 안식도 빌리지 못하였는데

潦倒天涯歲欲闌 하늘 끝에 흘러와서 세월만 저물려 하네

關月遠隨千里夢 관새의 달은 멀리 천리 꿈을 따라가고

塞風吹送五更寒 변새의 바람은 오경의 추위를 불어오네

窮途斗覺交情薄 궁벽한 길에서 교정이 박함을 문득 깨닫고

久客偏知生理難 오랜 나그네생활에 생리가 어려움을 아네

唯有故人同此況 다만 고인께서 이런 상황을 함께 하니

强謀盃酒接飮歡 억지로 술잔 갖추고 음주의 즐거움을 접해보네

 

주석

1)棲遲(서지): 떠돌며 실의(失意)함.

2)一枝安(일지안): 잠깐의 편안함.

 

幾度天涯送今辰 몇 번이나 하늘 끝에서 오늘을 보냈던가

旅情隨處摠艱辛 나그네 정은 가는 곳마다 모두 고생이네

愁中關塞離群雁 근심 속에 관새에선 기러기 무리와 이별하고

喜見長安報信人 장안의 소식 전하는 사람을 기쁘게 보네

墻外鼓鍾驚遠夢 담장 밖 종소리에 먼 꿈이 놀라고

門前車馬動飛塵 문전의 수레 말은 먼지를 날리네

何當歸臥東湖上 언제나 동호 가에 돌아가 누워

滿酌尊中竹葉春 술동이 속의 죽엽춘을 가득 따라볼까

 

주석

1)竹葉春(죽엽춘): 술의 이름.

 

又 二師(이사)

陰山八月猶炎熱 음산의 팔월은 오히려 열기 무더워서

縱作秋菰避未能 설령 가을철의 줄이 되더라도 필할 수가 없으리라

舊說此時飛白雪 옛말에 이때에 흰 눈이 날린다는데

誰知今日足蒼蠅 누가 오늘 쉬파리가 들끓음을 알겠는가

從來萬事多翻覆 종래의 만사가 몹시 엎어졌으니

無乃三庚亦荐仍 아마 삼경이 또한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却憶與君相對坐 도리어 그대와 대좌했던 때를 추억하니

淸襟正映玉壺氷 맑은 가슴 진정 옥호의 얼음을 비추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팔월이 또한 열흘이 지났는데, 그러나 열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노두(老杜: 두보)의 <칠월고열(七月苦熱)> 운을 써서 박서와 이일상 등의 벗에게 보이고 겸하여 사서(司書)에게 올린다(八月且踰旬, 而炎熱殊苦, 用老杜七月苦熱韻. 示朴李諸益, 兼柬司書)>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陰山(음산): 내몽고에서 내흥안령(內興安嶺)에 뻗어 있는 산맥의 이름. 고대 남북으로 통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음.

3)秋菰(추고): 가을철의 줄. 줄은 갈대와 같은 물가의 식물.

3)蒼蠅(창승): 쉬파리.

4)三庚(삼경): 삼복(三伏)

5)玉壺氷(옥호빙): 옥호 속의 얼음. 고결함을 비유함.

 

又 輔德(보덕)

朔方秋後尙炎蒸 삭방의 가을 후 오히려 찌는 듯하여

臥輒昏昏坐未能 누우면 어질어질 앉아 있을 수도 없네

時取浮瓜沾渴口 때때로 물에 띄운 외를 가져다 마른입을 축이고

且將團扇撲飛蠅 또한 둥근 부채로 나는 파리를 치네

陰陽秩序天難測 음양의 질서를 하늘도 예측하기 어려우니

瘴癘薰人病又仍 장려 기운이 사람에 끼쳐 병이 곧 뒤따르네

安得飄然北風去 어떻게 표연히 북풍을 타고 가서

凌雲臺上踏淸氷 능운대 위의 맑은 얼음을 밟아볼까

 

주석

1)朔方(삭방): 북방(北方).

2)瘴癘(장려): 열병의 일종.

3)凌雲臺(능운대): 삼국 위나라 문제(文帝)가 세운 대의 이름.

 

又 二師(이사)

少日狂圖擬斫營 젊은 날 미친 도모는 진영을 격파하려 했건만

祗今寥落壯心驚 지금은 요락하여 장심이 놀라네

鬢凋政似風飄雪 귀밑머리 시듬은 진정 바람에 날리는 눈발 같고

愁迊眞同月暈城 수심이 에워쌈은 참으로 달빛 어린 성과 같네

遊說却慚蘇季子 유세는 도리어 소계자에 부끄럽고

詩書空誤魯諸生 시서는 공연히 노나라 제생을 그르쳤네

龍泉掛壁貂裘弊 용천검은 벽에 걸려 있고 담비 갖옷은 헤어졌으니

中夜無眠涕泗橫 한 밤중 잠이 없어 눈물만 종횡으로 흘리네

 

주석

1) 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수상지(酬尙之)>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遊說(유세): 전국시대 책사들이 천하를 주유하며 군주에게 자신의 정치사상을 설득하였던 것. 소계자(蘇季子): 전국시대 유명한 책사의 한 사람이었던 소진(蘇秦).

3)詩書(시서): 시경과 서경.

4)魯諸生(노제생): 노(魯)나라의 제생(諸生). 유가(儒家)의 무리를 말함.

 

自笑胡爲來在此 스스로 우습구나 어찌 이곳에 오게 되었던가

平生拙性百無能 평생의 졸렬한 성품은 모든 일에 무능하였네

常愁道途亂豺虎 항상 길에 승냥이 호랑이가 날뛸까 근심이었는데

況復几案饒蚊蠅 하물며 다시 궤안에 모기와 파리가 가득함이랴

夏日凄凄暴風作 여름날 처량하게 폭풍이 일어나고

秋炎赫赫纖絺仍 가을 더위 혁혁하여 가는 갈포 옷이 이어지네

寒溫變易不須說 추위와 더위가 쉽게 변한다고 말하지 마오

晝夜憂心如履氷 밤낮으로 근심이 살얼음 밟는 듯하다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상지서회용전운(和尙之書懷用前韻)>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纖絺(섬치): 고운 갈포. 가는 칡 섬유로 짠 옷.

 

又 李獻納 一相(이헌납 일상)

沈吟偏覺夜遲遲 침음하며 밤이 더딤을 깨닫고

曉起無端鬢欲絲 새벽에 일어나니 무단히 귀밑머리 세려하네

常侍病來休漫興 항상 병을 끼고서 만흥을 내지 못한데

故人書到慰相思 고인의 편지가 와서 서로의 그리움을 위로하네

鷄豚舊社秦雲隔 닭과 돼지 잡던 옛 제사는 진 땅의 구름에 막히고

鴻雁新秋塞草悲 기러기 나는 새 가을에 변방의 풀이 슬피 우네

爲與尙書期一醉 상서와 함께 한 차례 취하기를 기약하니

預愁明月獨歸時 밝은 달빛 아래 홀로 돌아갈 때를 미리 걱정하네

 

주석

1)舊社(구사): 고향에서의 지냈던 옛날의 춘사(春社)와 추사(秋社).

 

秋氣曉悽悽 가을 기운 새벽에 처량한데

悵然歸意迷 슬프게 돌아갈 생각 헤매네

北堂今夜夢 북당을 오늘 밤 꿈꾸고

南磵舊時題 남간에선 옛날에 시 지었네

況抱河魚痛 하물며 하어통을 지녔는데

偏驚塞雁嘶 변새의 기러기 울음에 놀라네

故人去遠我 고인이 나를 멀리 떠나가니

咫尺阻提携 지척에서 만남이 막히었네

 

주석

1)河魚痛(하어통): 복통(腹痛).

 

又 輔德(보덕)

爲人本踈揉 사람됨이 본래 소탈하고 무르고

賦性元癡迷 타고난 성품은 원래 치졸하고 혼미하네

願以○○猥 바라건대 무람되게

經人口品題 남들에게 품평을 받는 것이네

琴遠伯牙奏 금은 백아의 연주와 멀고

馬連五○嘶 말은 다섯 마리가 이어져 우네

却恨節時近 도리어 절기 가까움이 한스러운데

天涯還相携 하늘 끝에서 도리어 서로 손을 이끄네

 

又 輔德(보덕) 疊出(첩출)

自嘆吾生逢不辰 나의 생애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스스로 탄식하는데

殊方客味更酸辛 이국에서의 나그네 음식도 괴롭기만 하네

始知一飯難忘德 밥 한 그릇도 그 덕을 잊기 어려움을 비로소 알겠는데

誰道千鍾不醉人 누가 천 종의 술에도 취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坐榻欲穿生蚤虱 좌탑은 구멍이 나려는데 이와 벼룩이 생겨나고

朝衣將綻染沙塵 조의는 실밥이 터지려는데 모래먼지 묻어 있네

何時得遂東歸計 어느 때나 동쪽으로 돌아갈 계획을 이루어

因賞煙花故園春 고향 동원의 봄날에 연화를 구경할 것인가?

 

年來縱迹謝趨營 연래의 종적은 추영을 사양하고

寵辱都忘自不驚 총애와 욕됨을 모두 잊고 스스로 놀라지 않네

才乏匡君叨補袞 재간은 임금을 바로 잡는데 부족한데 보필을 탐하니

仕因將毋乘專城 벼슬은 이로 인하여 장차 전성에 오르지 못하리라

自憐秋露逢今日 스스로 가련하니 가을 이슬 속에 오늘을 만나니

敢恨泥塗困此生 감히 진흙길 속에 이 생이 고생함을 한하랴

萬事終知皆有如 만사가 모두 이러함을 마침내 깨달으니

不須中夜淚交橫 한밤중에 눈물을 종횡으로 흘리지 말 것이네

 

주석

1)趨營(추영): 진영을 돌아다님.

2)專城(전성): 주(州)나 군(郡)을 주재하는 지방의 수령.

 

欲往何歸坐不安 가고자 하나 언제 돌아갈지 앉아서도 불안한데

半年羈縶宦情闌 반년의 나그네길에 벼슬생각 막히었네

殊方未卜蘇卿返 이방에서 소경의 귀환을 바라지 못하니

末路誰憐范冉寒 말로에 누가 범염의 한미함을 동정하리

蝸室莫言容膝易 와실도 무릅을 쉽게 들일 수 있다고 말하지 마오

駭機方覺到頭難 해기를 즉각 깨침은 머리에 이르기 어렵네

寧將多少關心事 차라리 다소의 관심사를

都付尊酒一醉歡 모두 술에 부쳐서 한 번 취하여 즐기리라

 

주석

1)蘇卿(소경): 한(漢)나라 소무(蘇武). 자는 자경(子卿)임.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19년 동안 억류되었다가 귀환하였다.

2)范冉(범염): 후한 때의 선비로서 세속을 피해 은거하여 궁벽한 생활을 하였음.

3)蝸室(와실): 오두막 집.

4)駭機(해기): 돌연히 촉발한 노기(弩機). 전하여 갑작스런 어려운 일.

 

中天月色照邊營 중천의 달빛이 변방의 진영을 비추고

臨塞風高雁陳驚 변새에 임한 바람이 높아 기러기 행렬이 놀라네

八渡遠連華表柱 팔도하는 멀리 화표주에 이어지고

五雲長望漢陽城 오색구름 속을 오래 바라보니 한양성이네

銅圍咫尺恩榮極 동위가 지척이어서 은영이 지극하니

杯酒尋常感慨生 술잔 앞에서 항상 감개가 일어나네

憂國戀君無限意 나라 근심 임금 생각에 무한한 뜻이 있는데

悄然相對至參橫 슬프게 서로 마주하고 삼성과 횡성에 이르네

 

주석

1)八渡(팔도): 팔도하(八途河). 물의 이름.

2)銅圍(동위): 견고한 위장(圍墻). 견고한 담장의 궁궐을 말함.

 

此生於世有何樂 이 생이 세상에서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一死非○○○○ 한 번의 죽음

○○孤啼失群雁 외롭게 울며 기러기 무리를 잃고

黙然癡坐○○○ 묵묵히 어리석게 앉아서

○○縱辦夕炊絶 설령 마련하더라도 저녁 밥짓는 연기 끊기고

夏葛爲單冬秋仍 여름 갈옷은 단벌인데 가을 겨울이 이어지네

㝡是不堪愁苦處 가장 견딜 수 없는 괴로운 곳은

陰山積雲混河氷 음산의 쌓인 눈과 혼하의 얼음이네

 

又 司書 柳慶昌(사서 유경창)

殊方節侯殊難改 이방의 절후는 특히 바뀌기 어려워

八月炎蒸見未能 팔월의 열기는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네

鑠石銷金愁大火 돌과 쇠를 녹이는 큰 열기가 근심인데

穿裳撲面怯飛蠅 옷을 뚫고 얼굴 치는 나는 파리가 겁나네

昏昏不耐沈眠苦 어질어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 고통이고

鬱鬱那堪病渴仍 답답하게 소갈병이 따름을 어찌 감당하랴

忽詠新詩牙頰爽 문득 새 시를 읊으니 입안이 상쾌하니

滌煩何期飮淸氷 번뇌 씻으려 어찌 맑은 얼음물을 마시기를 기대하리오

 

주석

1)柳慶昌(유경창: 1593-1662:선조26-현종3): 조선 문신. 자는 선백(善伯), 호는 성탄(聲灘)․미천(薇川), 본관은 전주(全州). 1668년(광해군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8년(인조 6) 별시문과에 뽑히어 수찬(修撰), 교리(校理), 지평(持平) 등을 지냄. 1644년에 사서(司書)가 되고, 이듬해 헌납(獻納), 이조좌랑(吏曹佐郞)이 됨. 1653년 형조참판 때 남장(濫杖)의 죄로 파직되었으나, 1656년 예조참판으로 복귀하고, 1662년(현종 3)에 동지부사(冬至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대사헌, 대사성 등을 지내고 청백리로 녹선(錄選)되었다.

 

又 疊出(첩출)

官府寥寥近沙場 관부는 쓸쓸하게 모래밭에 가까운데

共將愁病睡爲鄕 함께 근심병을 가지고 잠을 고향으로 삼네

塵沙撲面難乘興 모래먼지가 얼굴을 치니 흥이 나기 어렵고

談笑傾心且盡觴 담소하며 마음 기울려 또 술잔을 다 비우네

連夜夢回雙闕遠 밤마다 꿈은 쌍궐을 돌며 멀고

薄雲秋送滿衣凉 얇은 구름은 가을기운을 보내 옷 가득히 서늘하네

更喜佳篇空百遍 다시 좋은 시에 기뻐하며 공연히 백 번을 읊조리니

○○○○字字詳 글자마다 상세하네

 

又 輔德(보덕)

銀漢漫漫凉夜遲 은하수는 넘실대는데 서늘한 밤 더디고

玉壺無彩繫靑絲 옥호는 채색 없는데 푸른 끈에 묶여 있네

西河館裏憐問病 서하관 안에서 가엽게 문병하는데

南國天涯有不思 남국은 하늘 끝에서 그리워할 수 없네

自是人懷依故土 본래 사람의 회포 고향에 의존하는데

況逢佳節倍新悲 하물며 가절을 만나니 새 슬픔이 더하네

他年京洛仲秋月 타년 경락에서의 중추일에

應把餘盃說此時 마땅히 남은 잔을 쥐고 이때를 이야기하리

 

好是中秋節 좋은 중추절인데

悽然意轉迷 처연하게 뜻이 더욱 헤매네

酒宜長夜飮 술은 마땅히 긴 밤 동안 마시고

詩和故人題 시는 고인의 시에 화답하네

路忝銅龍近 길은 욕되게도 동룡문에 가깝고

心驚鐵馬嘶 마음은 철마의 울음에 놀라네

何時故國路 언제나 고국 가는 길에서

歸去手同携 돌아가며 손을 함께 이끌 건가

 

주석

1)銅龍(동룡): 동룡문(銅龍問). 원래는 한나라 때 태자의 궁문의 이름. 전하여 제왕의 궁궐을 말함.

 

欲傾混河水 혼하의 물을 기울려

添作葡萄盃 포도 잔에 더하려 한데

高影○○○

滿酌黃金盃 황금 잔에다 가득 따르네

病減千鍾量 병이 덜하여 천 종의 분량을 따르니

詩漸○○○

遙億故園菊 멀리서 고향 동원의 국화를 추억하니

爛漫爲誰開 난만하게 누구를 위해 피었는가

 

吾愛李夫子 나는 이부자를 사랑하니

新有能詩聲 새롭게 능히 시 읊는 소리가 있네

共把○○盃 함께 술잔을 쥐고

迴輪千古情 수레 돌려오니 천고의 정이네

休吟出塞曲 출세곡을 읊지 말고

且作長歌行 장차 장가행을 지으시오

醉後望京國 취한 후 경국을 바라보니

天外秋陰生 하늘 밖에서 가을 음기 생겨나네

 

주석

1)李夫子(이부자): 이경석(李景奭)을 말함.

1)出塞曲(출새곡): 고대 악부곡(樂府曲)의 이름.

2)長歌行(장가행): 고대 악부곡의 이름.

 

曉隨冠冕問平安 새벽에 관면을 따라 편안함을 문안하고

城上鐘鳴曙色闌 성 위의 종소리 울려 새벽빛이 무르익었네

初陽影中南望淚 아침해의 그림자 속에 남쪽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고

銅圍高處北風寒 동위 높은 곳에 북풍이 차갑네

欣瞻禮數僚寮盛 기쁘게 예수하는 관료들이 성대함을 지켜보고

病覺周旋拜謁難 병들어 주선하여 배알하기 어려움을 깨닫네

歸倚旅窓仍不寐 돌아와 여관 창에 기대어 곧장 잠들지 못하니

傍人休怪我無歡 옆 사람은 내가 즐거움 없음을 괴이 여기지 마오

 

주석

1)冠冕(관면): 갓과 면류관을 쓰는 벼슬아치.

2)禮數(예수): 벼슬의 등급에 따라 예우함.

 

又 二師

呼兒數問寢何安 아이 불러 여러 번 잠자리 편안한가 묻고

落月當窓夜已闌 지는 달 창가에 있어 밤이 이미 깊었네

是處金風行欲晩 이곳의 가을 바람 부는 것 늦으려 하고

遙知玉宇不勝寒 멀리서 옥우를 아니 추위를 이길 수 없네

心因瞻望懸逾切 마음은 바라볼수록 더욱 절절하고

淚到佳辰制更難 눈물은 가절을 만나 억제하기 어렵네

陪駕幾時東返國 수레 모시고 어느 때나 동쪽 고국으로 돌아갈 건가

奉巵齊賀兩宮歡 술잔 받들고 나란히 양궁을 축하하며 즐거워하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팔월 팔일, 배세자행망 전례후, 봉화박상지용전운우감(八月 八日, 陪世子行望 殿禮後, 奉和朴尙之用前韻寓感)>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金風(금풍): 가을 바람.

3)玉宇(옥우): 임금이 있는 곳.

 

又 輔德(보덕)

芳筵偸得片時安 좋은 연석에서 잠깐의 편안함을 구하고

聯袂歸來興未闌 소매 나란히 돌아와서도 흥이 무르익지 않네

夕日斂暉邀好月 저녁 해는 빛을 거두고 좋은 달을 맞이하니

西風鏖暑釀微寒 서풍은 더위를 물리치고 한기를 배양하네

佳辰强飮休辭醉 좋은날의 술자리 취함을 사양하지 마오

絶塞寬愁到此難 외딴 변새에서 넓은 근심 이 험난함에 이르렀네

淸聖濁賢莫不可 청주와 탁주 둘 다 불가하지 않으니

適宜相就盡餘歡 마음껏 서로 나아가 남은 즐거움을 다해봅시다

 

주석

1)淸聖(청성): 청주(淸酒).

2)濁賢(탁현): 탁주(濁酒).

 

又 輔德(보덕)

故國幾千里 고국은 몇 천 리인가

殊方我數人 이방에 우리 몇 사람이 있네

泥塗傷此夕 진탕에서 이 저녁을 슬퍼하니

風雨負佳辰 풍우 속에 명절을 저버렸네

天運休論命 천운에 운명을 논하지 마오

時危○○○

唯當各勞力 다만 마땅히 각자 노력할 것이니

一詩期君親 한 시로 그대와 친함을 기약하네

 

又 咸卿(함경)

相逢差喜故人多 상봉함에 고인이 많음이 다소 기뻐서

盃酒論心付短歌 술잔 들고 마음 기울려 단가에 부치네

憐我痛懷同沈約 나의 아픈 회포를 동정함은 심약과 같이 하고

愛君詩律比陰何 그대의 시율을 사랑함은 음갱과 하손에 비하네

 

주석

1)沈約(심약): 육조시대 양(梁)나라의 문인.

2)陰河(음하): 육조시대 진(陳)나라 음갱(陰鏗)과 양(梁)나라 하손(何遜). 두 사람 다 율시의 발전에 공헌하였음.

 

寥寥羈思自可悽 적막한 나그네 수심 절로 처량하고

欹枕偏憐獨淚啼 베개에 기대어 홀로 눈물 흘리며 우는 것을 동정하네

仍想故人今夜夢 이에 고인의 오늘밤 꿈을 상상하니

遠歸秋雨洛城西 가을비 속에 낙성 서쪽으로 멀리 돌아가리

 

 

又 輔德 尙之

此日長安行樂多 이날 장안의 행락이 많으리니

華筵處處動琴歌 화려한 자리 곳곳마다 금가가 울리리라

長安此去隔千里 장안은 이곳에서 천리나 떨어져 있으니

感恨其如佳節何 그 가절이 어떠한지 한스럽네

 

殘燈欲盡轉悽悽 남은 등불 다하려 하니 더욱 처량한데

蟋蟀何知空自啼 귀뚜라미가 공연히 홀로 우는 것을 어찌 알리

遠憐今夜故鄕夢 오늘밤 고향의 꿈을 멀리서 동정하며

忘却此身遼海西 이 몸이 요동 서쪽에 있는 것을 망각하네

 

居然今歲已無多 거연히 올해도 이미 많이 남지 않았으니

客裏鄕愁悽不歌 나그네길의 향수에 처량하여 노래할 수 없네

如記蘇州詩上語 소주의 시 속의 말을 기억하니

去來明時問信何 오고감에 밝을 때 소식 물음이 어떠하오

 

주석

1)蘇州(소주): 당나라 위응물(韋應物). 소주자사(蘇州刺史)를 지내어 위소주(韋蘇州)라고 불림.

 

又 咸卿(함경)

逢闈書至喜還悽 궁중의 편지가 옴을 만나니 기쁘고도 처량한데

夢伴林鳥子夜啼 꿈속에 숲의 새를 동반하여 자야에 울고

仍憶故鄕兄弟會 곧 고향의 형제의 모임을 추억하며

獨憐飛雁殘雲西 나는 기러기 남은 구름 서쪽에 있음을 홀로 부러워하네

 

주석

1)子夜(자야): 자시(子時)의 밤. 야반(夜半).

 

咫尺還同牛女悲 지척에서 도리어 우녀의 슬픔을 함께 하니

謾憑明月想容姿 몹시 밝은 달빛에 기대어 자태를 상상해보네

此去銀河元不隔 여기서 은하수까지의 거리가 원래 막혀있지 않는데

豈敎吾輩但相思 어찌 우리들에게 다만 서로 그리워하게 하는가

 

주석

1)牛女(우녀): 견우(牽牛)의 여자. 직녀(織女).

 

他鄕談笑喜還悲 타향에서의 담소가 기쁘고도 슬픈데

塵土依然玉雪姿 진토에서 의연한 옥설의 자태가 있네

天上佳期無夜雨 천상의 좋은 기약엔 밤비가 없는데

人間咫尺各相思 인간세상 지척에서 각자 서로 그리워하네

 

又 尙之(상지)

一渡龍灣壯志灰 용만을 한 번 건너오니 장지가 식고

故園歸計日相催 고원으로 돌아갈 계책을 매일 재촉하네

逢君破却洲翁戒 그대 만나 주옹의 경계를 내던지고

强和新詩又把盃 억지로 시에 화답하며 다시 술잔을 드네

 

遼陽鴨水杳歸程 요양과 압수 돌아갈 길 아득한데

風雨虛窓客夢驚 비바람 빈 창가엔 나그네 꿈이 놀라네

七尺身輕恩義重 칠 척의 몸은 가볍지만 은의는 무거우니

丈夫何恨此間行 장부가 어찌 이 사이의 행차를 한스러워 하랴

 

駱酒三盃已發紅 낙주 세 잔에 이미 붉어지고

歸來烟雨尙濛濛 돌아올 때 안개비 오히려 몽몽하네

從敎水濺衣冠濕 설령 물방울에 의관이 적실지라도

爲洗塵沙滿面蒙 모래먼지 만면에 뒤집어 쓴 것을 씻어주네

 

又 咸卿(함경)

秋陰埋却日輪紅 가을 어둠이 해의 붉은 빛을 가렸는데

夢入江鄕殘雨濛 꿈속에 강마을로 가니 남은 비가 몽롱하네

爲是險易隨分義 이런 험이 속에 분수와 의리를 따르니

一家三世國恩蒙 일가 삼 세가 나라 은혜를 입네

 

주석

1)險易(험이): 뜻의 험난함과 쉬움.

 

遼海蒼茫落照紅 요해는 창망한데 낙조가 붉고

西風吹雨晩冥濛 서풍이 비를 불어 저녁 어둠 몽롱하네

相逢尊酒論文地 상봉하여 술을 들고 문장을 논하던 곳

下視曹劉若拔蒙 조식과 유정을 아래로 보며 어리석음 깨우쳐주는 듯하네

 

주석

1)曹劉(조류): 삼국 위나라 조식(曹植)과 유정(劉禎). 이들은 건안시대(建安時代)의 대표적인 작가였음.

 

又 司書 柳慶昌 善伯(사서 유경창 선백)

病裏衰顔借酒紅 병들어 쇠한 얼굴 술기운으로 붉고

客窓秋雨正空濛 객창의 가을비에 진정 하늘 흐릿하네

知心賴有玄溪在 다행히 마음 알아주는 현계가 있어서

爲作新詩友我蒙 새 시를 지어 나의 어리석음을 벗해주네

 

又 尙之(상지)

京國歡遊隔此宵 경국의 즐거운 유람이 이 밤에 막혔고

浪吟南北路非遙 남북에서 시 읊는데 길은 멀지 않네

如何咫尺不相見 어찌하여 지척에서 서로 보지 못하고

獨酌淸尊遠獨謠 홀로 맑은 술을 따르고 멀리서 홀로 노래하나

 

糜粉難酬聖主恩 가루가 되어도 성주의 은혜를 갚기 어려우니

此身幸苦更堪論 이 몸의 고생을 다시 논할 수 있으랴

逢秋又送南歸客 가을을 만나 또 남으로 돌아가는 객을 송별하니

自是剛腸不孤魂 스스로 강심장이지 외로운 혼이 아니네

 

又 咸卿(함경)

萬死餘生荷國恩 만사 끝의 여생에 나라 은혜를 지니

客來懷抱向誰論 나그네길 회포를 누구에게 논하랴

傍人莫報君行日 옆 사람에게 그대 가는 날을 알리지 마오

憶看臨岐已孤魂 갈림길에 임함을 생각해 보니 이미 외로운 혼이 되네

 

此生無路答君恩 이 생은 임금의 은혜에 보답할 길 없는데

辛苦間關豈敢論 고생했던 험한 길을 어찌 감히 논하랴

爲是殊方偏有感 이로써 이방에서 몹시 감개가 있는데

望鄕無處不銷魂 고향 바라볼 곳 없어 혼을 달래지 못하네

 

又 尙之(상지)

一枝遼塞變炎凉 한 줄기 요새에 더위와 추위가 바뀌어

幾度驚心又斷腸 몇 번이나 놀란 마음에 또 애끊었던가

萬事卽今都不可 만사가 지금 모두 불가하니

與君談笑醉爲鄕 그대와 더불어 담소하며 취함을 고향으로 삼네

 

聚散由來固有期 모이고 흩어지는 유래는 본래 기약이 있으니

浿江歸興九秋時 패강의 돌아가는 흥이 구추 때이네

明春定踏關西路 다음 봄엔 진정 관서 길을 밟으려니

爲問洪郞去後思 홍랑에게 떠난 후의 생각을 물어보네

 

又 子和(자화)

奮得雲翰定後期 편지 얻음을 진정 뒤에 기약하는데

可憐花蕊未開時 가련하게 꽃이 피지 않았을 때이네

東歸爲報郞君意 동쪽으로 돌아가 낭군의 뜻을 전하니

旅枕三秋只夢思 삼추의 나그네 침석에서 다만 꿈속의 그리움이네

 

又 咸卿(함경)

忍淚臨江別 눈물 참으며 강가에서 이별하고

歸來白髮生 돌아오니 백발이 생겼네

君臣故國望 군신들 고국을 바라보고

朋友異心情 붕우들은 심정이 다르네

積雨分孤榻 쌓인 비는 외로운 의자에서 나눠지고

沈吟到五更 침음하며 한밤중에 이르네

又獨喜得酒 다시 홀로 술 얻음을 기뻐하며

洗酌待同傾 잔 씻어 함께 기울이기를 기다리네

 

又 柳村(유촌)

羈旅非天意 떠도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니

艱虞自我生 고생과 근심은 나에게서 생겨나네

留時强作笑 머물 땐 억지로 웃음 지으니

去後若爲情 떠난 후엔 정이 있는 듯하네

棣萼憐分蔕 앵두꽃 떨어진 것 슬퍼하고

龍樓憶報更 용루에서 시간 알렸던 것 추억하네

二年南望淚 이 년간 남쪽 바라보며 흘린 눈물

添却混河傾 혼하에 보태어 기울이네

 

주석

1)柳村(유촌): 한형길(韓亨吉)의 호. 광해군 때의 문신. 자는 태이(泰而). 본관은 청주(淸州).

 

南冠秦北地 남관은 진북의 땅에 있는데

寥寂幸心親 쓸쓸히 마음 친하네

晉樓○○○ 진루에 있다가

歸來如覺眞 돌아오니 참됨을 깨친 듯하네

饒然徵酒好 풍족히 술을 청하니 좋고

遣悶寄詩頻 시름 풀어 시에 부침이 빈번하네

老我慚年少 늙은 나는 젊은이들에게 부끄러우니

文章總有神 문장들 모두가 신들린 듯하네

 

주석

1)南冠(남관): 남방인(南方人)을 말함. 원래는 춘추시대 초(楚)나라 종의(鍾儀)가 진(晉)나라의 옥사에 갇혀서 쓰고 있던 관(冠)인데, 나중에 남방인 혹은 수인(囚人)을 가리키게 됨.

2)晉樓(진루): 진(晉)나라의 누대.

 

又 咸卿(함경)

淸秋望月近佳辰 맑은 가을 보름달은 명절에 가까운데

旅枕三更說苦辛 나그네 잠자리의 삼경에 고생을 말하네

爭口幾成無事飮 입 다투어 몇 번이나 무사한 술자리 이루었던가

天涯又作未歸人 하늘 끝에서 다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되었네

凉生鶴靜千年塔 서늘함은 학정의 천년 탑에서 생기고

雨洗龍灣一路塵 비는 용만 가는 길의 먼지를 씻어내네

他日却乘飛轉過 훗날 다시 나는 수레 타고 들리면

羨君顔鬢政靑春 그대 모습 진정 청춘임을 부러워하리

 

又 尙之(상지)

數行書到報平安 몇 행의 편지가 와서 편안함을 알리니

百遍看過意未闌 백 번 보아도 뜻이 물리지 않네

秋盡澤中鴻雁孤 가을 다한 늪지 안의 기러기 외롭고

風凄原上鶺鴒寒 바람 처량한 들판의 할미새 차갑네

殊方鬱鬱又爲客 이방에서 울울하게 다시 나그네 되니

隻影蕭蕭誰憂難 외로운 그림자 쓸쓸하게 누가 고난을 근심하는가

何日此身歸故國 훗날 이 몸이 고국으로 돌아가면

一旬牽挽與同歡 열흘 내내 이끌고 함께 즐기리라

 

又 李一相 咸卿(이일상 함경)

高秋一雁望長安 높은 가을 하늘 한 마리 기러기에 장안을 바라보고

絶塞悲吟到夜闌 외딴 변새에서 슬프게 읊조리며 깊은 밤에 이르네

看鏡鬢凋驚遠別 거울 보고 귀밑머리 시들어 먼 이별에 놀라고

授衣時迫㥘初寒 수의시절이 가까워 이른 추위를 겁내네

身同季子黃金盡 몸은 계자가 황금을 다 소모한 것 같고

詩和巴人白雪難 시는 파인의 백설가에 화답하기 어렵네

羈思不堪門掩後 나그네 수심 문 닫은 후를 감당할 수 없으니

共誰持酒强成歡 누구와 함께 술잔 들고 억지로 즐겨볼까

 

주석

1)季子(계자): 전국시대 소진(蘇秦). 소진이 진(秦)나라에 가서 유세할 때 검은 담비 갖옷이 다 헤어지고 황금 백 근을 모두 소모하고 형용이 곤궁하게 되었음.

2)巴人(파인): 파주(巴州) 사람. 파주는 고대 초(楚)나라 지역인데, 이 지역의 민가(民歌)가 당시에 유행하였음.

3)白雪(백설): 고대 금곡(琴曲)의 이름. 춘추 때 진(晉)나라 사광(師曠)이 지었다고 전함. 전하여 고아한 시사(詩詞)를 비유함.

 

又 白軒(백헌)

早識才高學逑安 재간 높아 편안함 구함을 배웠음을 일찍이 알았는데

向來文字酒初闌 이제까지의 문자는 술기운 막 무르익을 때였네

星河八月孤槎杳 은하수 팔 월에 외로운 땟목이 아득하고

風雨三更一影寒 비바람 속 삼경에 한 그림자 차갑네

疇昔盡世踰分久 이전의 온 세월 분수 넘은 지 오래인데

卽今師席强顔難 지금 선생의 자리에서 얼굴 펴기 어렵네

惟但款殷歸休日 다만 느린 말을 타고 돌아가 쉴 때

看弄漁舟家可歡 고깃배 놀리면 집안이 즐거우리라

주석

1)관단(款段): 관단마(款段馬). 걸음이 느린 말.

 

又 春坡(춘파)

仲秋十二日猶熱 중추 십이 일 오히려 무더우니

宋玉問天吾欲能 송옥이 하늘에 물은 것 나도 그러고 싶고

李白詩吟搖大扇 이백은 시 읊으며 큰 부채를 흔들고

歐陽賦懷憎蒼蠅 구양수는 회포 읊어 쉬파리를 증오하였네

綿裘着與絺衣間 솜과 갖옷을 갈포옷과 더불어 걸치는 사이

與餘句添睡味仍 남은 구절을 더하니 잠이 몰려오네

講院倘拚河朔飮 강원에서 하삭음을 들면

宮恩應許井中氷 궁궐의 은혜는 마땅히 우물 속의 얼음을 주리라

 

주석

1)春坡(춘파): 이일상의 별호.

2)宋玉(송옥):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초사(楚辭)의 작가.

3)李白(이백): 성당의 시인.

4)歐陽(구양): 송나라 구양수(歐陽修). <창승부(蒼蠅賦)>를 지었음.

5)河朔飮(하삭음): 한나라 말엽에 광록대부(光祿大夫) 유송(劉松)이 북쪽으로 원소(袁紹)의 군대를 진압하고, 원소의 자제들과 술자리를 열었는데 마침 삼복(三伏) 때여서 더위를 피하려고 주야로 마시고 취하였음. 후에 피서의 술을 하삭음이라고 함.

 

又 白軒(백헌)

何處笳吟細柳營 어느 곳의 갈피리 소리 가는 버들의 영내에서 울리는가

向來金甲事堪驚 이제까지의 전쟁의 일 놀랄만 한데

秦關尙照當時月 진관엔 오히려 당시의 달빛이 비추는데

遼塞還非舊日城 요새는 도리어 옛날의 성이 아니네

一寸心隨淸渭遠 일 촌의 마음은 맑은 위수를 따라 멀어지고

萬重愁與白雲生 만 겹 수심은 흰 구름 따라 생겨나네

中宵獨立看牛斗 한밤중 홀로 서서 견우성을 바라보는데

玉宇迢迢雁字橫 옥우는 아득하고 기러기 글자가 빗겨있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차함경(次咸卿)>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白雪詞高和更遲 백설사는 높아서 화답하기 더디니

强拈枯筆染烏絲 억지로 마른 붓을 들어 검은 붓털을 적시네

今朝却有三秋恨 오늘 아침 도리어 삼추의 한이 있으니

尺地常如萬里思 지척의 땅이 항상 만리의 수심 같네

共飮休言魯酒薄 함께 술 마시며 노주가 박하다고 말하지 마오

相看莫作楚囚悲 서로 보며 초수의 슬픔을 짓지 마오

佳辰且喜佳期在 명절에 또한 좋은 기약 있음을 기뻐하니

頗似長安會合時 몹시 장안에서의 모일 때와 같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함경(和咸卿)>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魯酒(노주): 노(魯)나라의 술로서 박(薄)하여 후에 박주(薄酒)를 지칭하게 되었음.

3)楚囚(초수): 진(晉)나라 옥에 갇혔던 초나라 종의(鍾儀).

 

秋日正悽悽 가을날 진정 처량하여

旅窓愁轉迷 여창에 수심이 더욱 헤매네

酒應逢我醉 술은 마땅히 나를 따라 취하고

詩是爲君題 시는 그대를 위해 지었네

暝色棲鴉集 어둠 속에 깃든 까마귀들 모이고

邊城牧馬嘶 변방 성엔 목장의 말들이 우네

良宵端正月 좋은 밤 진정 정월이니

願與玉人携 옥인과 함께 손잡기를 원하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함경(和咸卿)>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甚矣五衰也 심하구나 나의 쇠약함이여

皆皆萬事迷 모든 만사에 헤매네

消愁時把盞 수심 풀려고 때때로 잔을 잡고

减藥且看題 약을 줄이고 다시 시를 보네

碧海鯤魚驚 푸른 바다의 곤어가 놀라고

靑雲騕褭嘶 푸른 구름 속엔 요뇨가 우네

平生挑竹杖 평생 죽장을 집으니

合向故園携 흡사 고향을 향해 이끄는 것 같네

 

주석

1)鯤魚(곤어): 전설 속의 큰 물고기.

2)騕褭(요뇨): 신마(神馬)의 이름.

 

今夕知何夕 오늘밤이 어떤 저녁인지 아는가

新醅勝舊醅 새 술이 옛 술보다 낫네

中秋十五日 중추 십 오 일에

大醉三百盃 삼 백 잔으로 대취하니

又有羲之出 다시 왕희지가 나온 것 같고

飄然白也才 표연하기는 이백의 재간 같네

比來衰轉甚 근래 쇠약함이 더욱 심해졌으나

談笑爲君開 담소를 그대를 위해 열었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에 <주차함경운(走次咸卿韻)>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試聽葛巾漉 시험삼아 갈건으로 술 거르는 소리 들어보니

細如春雨聲 작기가 봄비의 소리 같네

無論賢聖酒 청주와 탁주를 따지지 말고

看取淺深情 얕은 정 깊은 정을 취하여 보구려

月欲當樓滿 달빛은 누대 앞에 가득 차려고 하고

杯酒揷羽行 잔술은 깃털 꽂아 마시네

吾今有此客 나에게 지금 이 손님이 있으니

爛醉是平生 마구 취하여 한 평생으로 삼으리라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에 <주차함경운(走次咸卿韻)>이란 제목의 두 번째 시로 실려 있음.

2)杯酒(배주): 『백헌집』에는 배수(杯須)로 되어 있음.

3)聖賢酒(성현주): 청주와 탁주. 옛 은어(隱語)에서 청주를 성인(聖人)에 비하고 탁주를 현인(賢人)에 비하였음.

 

又 春坡(춘파)

睡起呼兒急 잠에서 일어나 아이를 급히 불러서

新醪問醱醅 새 술을 빚었나 물어보네

欲成佳節會 가절의 모임을 이루어서

擬把故鄕杯 고향의 잔을 들고 싶네

一代尙書望 일대의 상서의 명망

千篇學士才 천 편의 학사의 재간

不緣同作客 함께 손님이 될 인연이 없으니

懷抱向誰開 회포를 누구를 향해 풀어야 하나

 

發興驚呼數 흥이 나 여러 번 소리쳐 부르니

窓間漉酒聲 창가에 술 거르는 소리가 나네

飮從何處醉 어디에서 마시고 취할 건가

詩荷丈夫情 시에는 장부의 정을 부쳤네

已使烹蟹螯 이미 게다리를 삶으라고 하였으니

方將促馬行 바야흐로 가지고서 말을 재촉하여 가네

獨憐傾蓋地 홀로 경개하였던 곳을 그리며

東望白雲生 동쪽으로 흰 구름 피는 곳을 바라보내

 

주석

1)傾蓋(경개): 길을 가다 서로 만나 차개(車蓋)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눔. 전하여 서로 만나 대화함을 말함.

 

濁酒休嫌薄 탁주를 박하다고 꺼리지 않고

淸詩亦有情 맑은 시엔 정이 담겼네

寂寥門掩後 적막한 문을 닫은 후

孤月爲誰明 외로운 달은 누구를 위하여 밝은가?

 

欲起還仍坐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으니

依然醉後情 의연히 취한 후의 정이 있네

可憐簷際月 사랑스러운 처마의 달은

留照故人明 머물러서 고인을 밝게 비춰주네

 

又 白軒

勸我一壺酒 나에게 한 병의 술을 권하니

飮君無限情 그대의 무한한 정을 마시네

如何今夜月 오늘밤의 달이 어떠한가?

又作十分明 다시 십분 밝아졌네

又 (이름탈락)

間關異域尙傷安 길 험한 이역에서 안전을 걱정하는데

荏苒流年漸向闌 끊임없이 흐르는 세월 점차 저물려는데

金輪夜收勞遠想 금륜이 밤이 거두어지니 먼 생각 노고롭고

震宮新闢避輕寒 진궁이 새로 열리니 가벼운 추위가 피해가네

心如杞國憂天切 마음은 기나라 사람이 하늘을 근심하듯 절실하고

身學壺公徜地難 몸은 호공이 노니는 곳을 배우기가 어렵네

佳節獨含淸淚望 가절에 홀로 맑은 눈물 머금고 바라보니

聖人南北隔同歡 성인과 남북으로 함께 하는 즐거움 막히었네

 

주석

1)金輪(금륜): 태양.

2)震宮(진궁): 동방(東方).

1)壺公(호공): 전설 속의 신선의 이름. 그 성명은 사원(謝元), 시존(施存) 등 여러 설이 있음.

 

搖搖心緖若爲安 흔들리는 마음 편안해지려는데

盡日商飇不暫闌 종일 가을 바람 잠시도 멈추지 않네

暝色偏供鄕思苦 어두운 빛은 고향생각의 괴로움을 더하고

雨聲催作客窓寒 빗소리는 객창의 차가움을 재촉하네

狼居山色飛霜易 낭거산의 색은 서리가 날리기 쉽고

天柱峰遙玩月難 천주봉은 멀어서 달을 구경하기 어렵네

却懷舊時秋社會 다시 옛날의 추사의 모임을 생각하며

持螯直到夜深歡 게다리를 들고 곧장 깊은 밤의 즐거움에 이르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수박상지부첩저운(酬朴尙之復疊前韻)>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狼居山(낭거산): 낭거서산(狼居胥山). 지금의 내몽고 지역에 있음.

3)天柱峰(천주봉): 산 이름.

4)秋社(추사): 가을 수확 후에 곡신에게 올리는 제사.

 

慈山東北混河涯 자산 동북쪽 혼하 가에

萬里秋風搖落時 만리의 가을바람 나뭇잎 질 때

異地不堪爲客苦 이역에서 나그네의 괴로움 감당할 수 없는데

家書況又隔年遲 가서마저 하물며 해를 걸러 더딤에랴

消愁賴酒盃難擇 수심 풀려고 술을 마시려도 잔을 택하기 어렵고

華髮欺人鏡不窮 백발은 사람을 속여서 겨울 속에 끝이 없네

唯有文章餘舊習 다만 문장은 옛날의 익힘이 남아서

與君時和感懷詩 그대와 때때로 감회시를 화답하네

 

秋色沈沈雨送寒 가을빛 침침한데 비가 추위를 보내고

不堪佳節隨淸歡 가절에 좋은 즐거움을 따를 수 없네

天公多意掩明月 천공이 뜻이 많아서 밝은 달을 가리니

縱有光輝誰共看 설령 달빛이 있더라고 누구와 함께 볼 건가

 

身隨落日到天涯 몸이 지는 해를 따라 하늘 끝에 이르러

坐見飛鴻向北時 앉아서 나는 기러기가 북쪽으로 향할 때를 보네

家在洛陽諸弟遠 집은 낙양에 있어서 여러 형제들과 멀고

秋來遼左尺書遲 가을이 되어 요좌엔 편지가 더디네

獰風拔地揚沙漲 사나운 바람이 땅에 불어 모래를 마구 날리고

苦月當窓入夜窮 괴로운 달빛은 창 앞에서 밤 되어 깊어지고

佳節不堪愁寂意 가절에 근심의 뜻을 감당할 수 없는데

枕邊驚把故人詩 베개 가에서 고인의 시를 놀라서 쥐어보네

 

秋雨蕭蕭晩作寒 가을비 소소하게 저녁에 차갑고

客懷凄切不成歡 나그네 시름 처절하여 즐길 수 없네

題詩寄與春坊友 시를 지어 춘방의 벗에게 부치고

只待明朝握手看 다만 내일을 기다려 손잡고 보리라

 

주석

1)春坊(춘방):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별칭.

 

歸心長憶洛西涯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낙서 가를 오래 추억하니

又是蕭條歲晏時 또 다시 쓸쓸하게 세월이 저물 때이네

接地風雲寒氣早 땅에 접한 풍운에 한기가 이르고

滿天星斗曙光遲 하늘에 가득한 별들 새벽빛이 더디네

殊方旅館同成縶 이방의 여관에 함께 매여서

故國荒園久未窺 고국의 황폐한 동원을 오랫동안 살피지 못하였네

宋玉秋懷元自苦 송옥의 가을 회포 원래 절로 괴로운데

更堪頻賦別離詩 다시 빈번하게 이별할 때를 읊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상지(和尙之)>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西風蕭瑟夜生寒 서풍이 소슬하여 밤에 찬 기운 생기니

縱對壺觴可作歡 설령 술병을 대하더라도 즐길 수 있겠는가

莫怪陰雲遮好月 검은 구름이 좋은 달을 가리는 것 괴이쩍게 여기지 마오

定憐孤客帶愁看 진정 외로운 나그네가 수심 띠고 보는 것을 동정해서라오

 

異域猶今夕 이역에서 오히려 오늘밤이 있어

同盃又故人 잔을 함께 하는 것은 또한 고인이네

(白軒 백헌)

逢如在京國 상봉하니 고국에 있는 것 같고

況復是良辰 하물며 또한 좋은 날임에랴

强起三秋病 삼추의 병에서 억지로 일어나서

都忘萬死身 만 번 죽은 몸을 모두 잊네

(玄溪 현계)

何時湖海上 언제 호해 가에서

長與白鷗親 영원히 흰 갈매기와 친해볼까

 

風雨銅龍夕 비바람 치는 동룡문의 저녁

歸來拜丈人 돌아와서 어른에게 인사하네

會心逢勝友 마음 맞는 좋은 친구를 만나니

把酒作芳辰 술을 쥐고 좋은 날을 이루네

萬里憂時病 만리에서 시국을 근심하여 병이 나니

千金報主身 천금으로 임금에게 보답하는 몸이네

可憐趨走地 가련하다 분주히 달리던 곳

含淚日相親 눈물 머금고 날로 서로 친해지네

 

不料窮荒客 궁황의 객을 헤아리지 않고

猶携我輩人 오히려 우리들을 이끌어 주시네

杯盤非舊日 술잔 그릇은 옛날의 것이 아니지만

時序自良辰 절기가 절로 좋은 날이네

萬事空搔首 만사에 공연히 머리만 긁적이는데

孤忠早許身 외로운 충심 일찍이 나라에 몸을 허락하였네

平生歲寒志 평생 변치 않을 뜻으로

相勖向朋親 서로 힘쓰며 친구들을 향하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차상지(次尙之)>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咫尺成千里 지척이 천 리를 이루어

團圓少一人 단원절에 한 사람이 적으리라

(玄溪 현계)

淹留仍絶塞 엄류하여 외딴 변새가 이어지고

邂逅卽良辰 해후하니 곧 명절날이네

(晦堂 회당)

始識門前路 비로소 문전의 길을 아니

渾忘病裏身 완전히 병든 몸을 잊었네

(玄溪 현계)

欲將詩酒去 시와 술을 가지고 가려하니

談笑盡交親 담소로 친교를 다하리라

(晦堂 회당)

 

出遊非季子 출유는 계자가 아닌데

留滯是行人 체류는 행인들이네

故國三千里 고국은 삼 천 리 밖에 있고

歸心十二辰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열 두 달

逢君輒開口 그대 만나 곧 입을 여니

有酒可酣身 술이 있어 취할 수가 있네

却恨題詩處 시를 지은 곳 도리어 한스러우니

難將杖屨親 장차 왕래하며 친하기 어렵구나

 

주석

1)季子(계자): 전국시대 소진(蘇秦).

2)杖屨(장구): 지팡이와 신발. 전하여 왕래함을 말함.

 

絶塞高秋月 외딴 변새의 높은 가을 하늘의 달

西河館裏人 서하관 속의 사람

盃盤疑舊會 술잔과 쟁반에 옛날의 모임인가 싶은데

兄弟隔玆辰 형제들은 이 밤에 떨어져 있네

漂迫無生意 떠돌며 생의가 없는데

支離未死身 지리한 채 죽지 못한 몸이네

與君同閈久 그대와 함께 거처한 지 오래이니

相對倍思親 서로 마주하니 사친생각 배나 더하네

 

斜陽隱隱照莞茵 석양빛 은은하게 왕골자리를 비추고

把酒相看盡故人 잔 들고 서로 보니 모두가 고인들이네

却笑春坊學病士 도리어 우습구나 춘방에서 병을 배운 선비

一年愁苦不窺隣 일 년 동안 괴로움 속에 이웃을 살피지 못했네

 

暇日逢場醉吐茵 휴가 날 만난 곳 자리에다 취해서 토하니

天涯俱是未歸人 하늘 끝에 모두가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네

憐君斗室三秋臥 그대 그리며 작은 방에서 가을 동안 누워 있자니

愁病涔涔與作隣 근심 병만 잠잠하게 더불어 이웃이 되네

 

주석

1)斗室(두실): 말만한 방. 작은 방.

2)涔涔(잠잠): 형용이 애달프고 번민하는 모양.

 

一病三秋臥弊茵 한 병으로 가을 동안 헤진 자리에 누워있으니

佳辰行樂付他人 명절의 행락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었네

醉鄕倘有閑田地 취향에 오히려 한전의 땅이 있으니

願與劉伶且卜隣 바라건대 유령과 함께 장차 이웃이 되고 싶네

 

주석

1)醉鄕(취향): 술에 취하여 정신이 맑지 않은 경계(境界).

2)閑田(한전): 경작하지 않은 황폐한 밭.

3)劉伶(유령): 진(晉)나라 때의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 술을 좋아하여 <주덕송(酒德頌)>을 지었음.

 

悄悄相思依依看 초초하게 서로 그리며 의의하게 보니

與君俱是別長安 그대와 더불어 모두 장안을 떠나온 사람들이네

傍人莫笑逢場戱 옆 사람은 해후한 곳의 놀이를 비웃지 마오

絶域羈懷借酒歡 외딴 이역의 나그네 회포를 술을 빌려 즐긴다오

 

주석

1)悄悄(초초): 근심하여 기운이 없는 모양.

2)依依(의의): 사모하는 모양.

 

依依無言不厭看 의의하게 말없이 보기를 꺼리지 않으니

異鄕差喜各平安 타향에서 각자 평안함이 약간 기쁘네

十分明月七分酒 십분의 밝은 달과 칠분의 술기운

他日能忘今日歡 훗날 오늘의 즐거움을 잊을 수 있겠는가?

 

同舍無他客 같은 집에 다른 손님은 없고

殊方有故人 이방에 고인들이 있네

風塵曾幾載 풍진 속 일찍이 몇 세월이던가

詩到偶今辰 시가 우연히 오늘밤에 이르렀네

擬共厭厭飮 함께 염염한 술자리를 가지려 하지만

難抽懮懮身 근심스런 몸을 빼내기 어렵네

黃昏白衣到 황혼에 흰 옷 입은 사람들이 이르니

轉覺夙心親 일찍이 품은 친애함을 더욱 깨닫네

 

주석

1)厭厭(염염): 안일(安逸)한 모양.

2)懮懮(우우): 근심하는 모양.

 

蒲團無端綿爲茵 포단을 무단히 비단으로 자리를 만들고

翠竹蒼松總可人 푸른 대와 푸른 소나무 모두 사람에게 어울리네

他日拂衣歸故壑 훗날 옷을 떨치며 고향으로 돌아갈 때

阿誰從我作芳隣 누가 나를 따라 좋은 이웃이 될 건가

 

주석

1)蒲團(포단): 부들로 짠 둥근 방석.

2)芳隣(방린): 이웃에 대한 미칭(美稱). 좋은 이웃.

 

日日應須百遍看 매일매일 마땅히 백 편을 보니

多醪不用憶雲安 많은 술이 필요 없으나 운안주를 생각하네

相携但使陶然醉 서로 이끌며 다만 도연히 취하니

便是當時故里歡 곧 당시의 고향마을의 즐거움이네

 

昨日仍今日 어제가 오늘로 이어지니

詩人復酒人 시인들 다시 취한 사람이 되네

(白軒 백헌)

停盃待好月 술잔을 멈추고 좋은 달을 기다리고

覓句詠佳辰 시구 찾아 명절을 노래하네

(柳村 유촌)

發興寧辭病 흥이 나니 어찌 병으로 사양할 것인가

忘形莫問身 망형의 흥취에 몸의 안부를 묻지 마오

(玄溪 현계)

却愁分散後 도리어 각자 흩어진 후를 근심하니

魂夢若爲親 혼뭉에도 친애할 듯 하오

(咸卿 함경)

 

주석

1)忘形(망형): 과도한 흥취로 평소의 태도를 잃어버림.

 

六七年間事 육칠 년 사이의 일들

三千里外人 삼 천 리 밖의 사람

淹忽已多日 문득 많은 날들이 지나니

嘆息此何辰 오늘이 무슨 날인지 탄식하네

報國慚無策 나라에 보답함은 계책이 없어 부끄럽고

臨危恐失身 위기에 임해서는 몸을 잃을까 두렵네

中情說未盡 마음속을 말로 다 못하니

擧目摠非親 눈을 들어도 모두가 친하지 않네

 

久客堪愁寂 오랜 나그네 생활 근심을 감당하는데

心期托有人 마음의 기약을 의탁할 사람이 있네

幽懷寫好句 깊은 회포는 좋은 시구로 베껴놓고

濁酒慰芳辰 탁주로 명절을 위안하네

夷險堅吾節 이험에도 나의 절개를 견고하게 하고

艱危任此身 난위에는 이 몸을 맡기네

無將今日事 장차 금일의 일을 가지고

安樂異踈親 안락에 친소가 다르지 않게 하리라

 

四海多艱日 사해에 어려운 날들이 많은데

三韓季葉人 삼한 말엽의 사람

早蒙傾雨露 이른 은혜 우로를 기울었고

曾忝上星辰 일찍이 성진에 오르는 것을 보태었네

未識安危體 안위의 몸을 아직 모르는데

猶全寵辱身 오히려 총욕의 몸을 온전히 하였네

南冠秋又晩 남관에 가을이 또한 저무는데

雄劍獨相親 웅검과 홀로 서로 친하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차상지(次尙之)>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음.

2)四海(사해): 천하.

3)三韓(삼한): 우리 나라를 말함.

 

萬里思歸日 만 리에서 돌아갈 날 생각하는데

三秋去國人 가을 내내 나라 떠나온 사람이네

風塵淹歲月 풍진 속에 세월만 흘러가고

南北隔參辰 남북으로 삼성과 상성처럼 막히었네

轉覺愁銷骨 수심 속에 쇠한 뼈를 더욱 깨닫고

偏憐影伴身 그림자 몸을 동반함을 동정하네

可堪孤館夜 외로운 여관의 밤을 감당하니

唯有一燈親 다만 한 등불만이 친하네

 

黃鶯曾送我 꾀꼬리가 일찍이 나를 전송하였는데

玄鳥已辭人 제비가 이미 사람을 떠나갔네

獨立看西日 홀로 서서 서쪽 해를 보고

長吟望北辰 길게 읊조리며 북극성을 바라보네

一秋愁裏鬢 한 가을 수심 속의 귀밑머리

千里夢中身 천리 길 꿈속의 몸

漸覺寒宵永 점차 찬 밤이 오래됨을 깨닫는데

誰敎綠酒親 누가 녹주를 친하게 하는가?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차상지(次尙之)>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通籍金門日 금문에 명단을 올리던 날

推君第一人 그대를 제일인으로 추천했었지

風流驚拔俗 풍류가 발속한데 놀라고

恩渥喜逢辰 은악을 만나던 날 기뻐하였네

忽抱江南疾 홀연 강남의 병을 지니고

遠成塞北身 멀리 변새 북쪽의 몸이 되었네

無兒憐伯道 자식이 없는 백도를 동정하니

凋喪一家親 일가친척을 잃고 말았네

 

주석

1)通籍(통적): 처음 벼슬에 오르는 것을 말함. 조정에 명단이 오르는 것.

2)金門(금문): 궁궐의 문.

3)伯道(백도): 진(晉)나라 등유(鄧攸)의 자. 등유는 하동(河東) 오군(吳郡)과 회계(會稽)태수를 지냈는데, 영가(永嘉) 말에 석륵(石勒)의 병란을 피해 달아나다 일가가 다 죽을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자식을 버리고 조카만을 구하였는데, 후에 자식이 없었음.

 

美酒持螯興更新 좋은 술과 게다리 쥐니 흥이 더욱 새롭고

團圓俱是洛中人 단원절에 모두가 낙중의 사람들이네

從他絶塞風雷作 설령 다른 외딴 변새에 바람 우레가 치더라도

和氣長薰在上春 화기와 긴 훈기가 상춘에 있네

 

炊飯烹魚掃一堂 밥 짓고 물고기 삶고 한 당을 소제하여

與君終日說江鄕 그대와 종일 강 마을을 이야기하리라

如何買得南門酒 어떻게 남문의 술을 사와서

添却狂夫醉後狂 광부의 취한 후의 광기를 더할 수 있을까

 

草草高陽路 쓸쓸한 고양의 길

荒荒去住人 황황하게 머문 사람 떠나네

風霜悲絶塞 풍상 속에서 외딴 변새를 슬퍼하고

雷雨感明辰 뇌우 속에서 명절을 감개하네

羈勒逢吾輩 떠도는 우리들 상봉하여

間關任此身 험한 길에 이 몸을 맡기었네

相憐尊酒會 술자리 모임을 서로 동정하니

俱是故鄕親 모두 고향의 친구들이네

 

又 疑玄溪詩(현계의 시가 아닌 듯함)

自號玄溪與晦堂 스스로 호를 붙인 현계와 회당은

一年三百醉爲鄕 일년 삼 백 일 취함을 고향으로 삼네

揮毫不謀詞林丈 붓 휘둘러 사림의 장을 꾀하지 않으니

堪笑吾傷太放狂 우습구나 내가 지나친 방광을 근심하는 것이

 

憂家憂國鬢毛新 집안과 나라를 근심하여 귀밑머리 새로운데

二七來年未死人 이십 칠 년 동안 죽지 못한 사람

事主日長吾不恨 임금 섬기는데 날만 길어 내가 한스러워 하는데

草心無復報三春 초심은 다시 삼춘에 보답함이 없네

 

無涯至痛久逾新 끝없는 고통이 오래되니 더욱 새롭고

天地之間一罪人 천지 사이에 한 죄인이 있네

一死不能忘此恨 한 번 죽어도 이 한을 잊을 수 없는데

況經人世回年春 하물며 세상에서 회갑의 봄을 겪었으니

 

萬事灰心百感新 만사에 식은 마음인데 온갖 감회가 새로우니

悠悠天理此何身 유유한 천리 속에 이는 무슨 몸이던가

衷懷不欲分明訴 충회를 분명히 호소하려 하지 않고

恐說江南已舛春 두렵게 강남에 이미 봄이 저버린 것만 말하네

(江南順川也: 강남은 순천이다)

 

何處雙墳春草新 어느 곳 쌍분에 봄 풀이 새로운가

子孫零落更無人 자손들 영락하여 다시 사람이 없네

明年忍過臨津路 명년에 임진로를 차마 지나가겠는가

腸斷山花又一春 애간장 끊어지는데 산 꽃은 다시 한 봄이네

 

주석

1)임진로(臨津路): 임진강(臨津江)의 길.

 

心腸寸斷淚痕新 심장이 마디로 끊기는 눈물 흔적 새로운데

顔面依然夢裏人 안면은 의연하게 꿈속의 사람이네

荊樹一年摧朽盡 가시나무 일 년만에 꺾어져 없어지고

開花無復小堂春 꽃 피어 다시 소당의 봄이 없네

 

孰謂丈夫多好新 누가 장부는 새 것을 몹시 좋아한다고 했던가?

難忘孝友兩全人 두 분 부모에 대한 효우를 잊기 어려우니

偏憐泣血三年後 가련하게 피눈물 흘린 삼 년 후

草草浮生四十春 초초한 부생은 사십 살이라네

 

一弟雖存病轉新 한 아우 비록 있지만 병이 더욱 새롭고

每憐書至汝爲人 매번 편지 이르면 너의 사람됨을 사랑하는데

何時共棹孤舟去 언제나 함께 외로운 배를 저어가서

痛笑松楸古里春 소나무 가래나무 옛 마을의 봄을 통쾌하게 웃어볼까

 

蒿里秋花幾度新 호리의 가을꽃 몇 번이나 새롭게 지났던가

二年霜露未歸人 이 년의 서리 이슬 속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

餘生忍踏城西路 남은 생애 성 서쪽 길을 차마 밟겠는가

古木蕭條不復春 고목은 쓸쓸히 봄을 회복하지 못하였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상지상도술회(和尙之傷悼述懷)>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未死孤懷到老新 죽지 못해 외로운 회포 노년에 더욱 새롭고

六親强半九原人 육친은 절반 넘게 구원 사람이 되었네

年年最是傷心處 해마다 가장 상심하는 곳은

蟋蟀秋宵杜宇春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과 두견이 우는 봄이라네

 

絶域逢秋恨轉新 외딴 이역에서 가을을 만나니 한이 더욱 새로운데

爲誰重作陟剛人 누구를 위해 다시 언덕에 오르는 사람이 되는가?

回頭弟勸兄酬地 아우가 형에게 수창하라 권하던 곳으로 고개 돌려보니

只有荊花半樹春 단지 형화가 반쯤 핀 나무의 봄이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상지상도술회(和尙之傷悼述懷)>란 제목의 두 번째 시로 실려 있음.

2)絶域(절역): 『백헌집』에는 ‘이역(異域)’으로 되어 있음.

 

武君衣故痛逾新 무군의 의상 예스러워 고통이 더욱 새로운데

憐子長懷擧案人 자식을 그리며 거안인을 오래 생각하네

落葉打窓秋夜永 낙엽이 창을 치는 가을밤이 긴데

昔年桃李夢中春 지난해의 복사꽃 오얏꽃 꿈속의 봄이네

 

주석

1)武君(무군): 한나라 소무(蘇武). 자는 자경(子卿). 무제(武帝) 때 흉노에 사신을 갔다가 19년 동안이나 억류되었으나 지절을 굽히지 않았다. 소제(昭帝) 때 흉노와 화친하여 풀려서 돌아왔다. 아내에게 보내는 <증내(贈內)>시가 전함.

2)擧案人(거안인): 밥상을 드는 사람, 즉 아내를 말함.

 

癸亥年中日月新 계해년 중의 일월이 새로운데

衣冠身作太平人 의관 걸친 몸은 태평인이네

何時復興金錢會 어느 때나 다시 금전회를 일으켜서

爛醉烟花紫陌春 연화 자맥의 봄에 실컷 취해볼까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함경(和咸卿)>이란 제목의 두 번째 시로 실려 있음.

2)金錢會(금전회): 당나라 때 궁중에서 벌이던 돈을 거두는 놀이.

 

風色凄凄玉露新 풍색은 쓸쓸하고 이슬은 새로운데

候蟲聲學孤吟人 계절 알리는 벌레소리는 외롭게 읊조리는 사람소리를 배우네

孤燈一夜頭如雪 외로운 등불 아래 하룻밤에 머리가 하얗게 되니

不待蘇卿十九春 소경의 열아홉 세월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함경(和咸卿)>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蘇卿(소경): 소무(蘇武). 19년 동안 흉노에 억류되어 있었음.

 

此地相追舊意新 이곳에서 서로 따르니 옛정이 새로운데

年少才動洛陽人 젊은이들 재간은 낙양인을 감동시키네

看來未覺秋風冷 보아도 가을바람 차가움을 깨닫지 못했는데

寶樹猶含故國春 보수는 오히려 고국의 봄을 머금고 있네

 

十年邊地苦 십 년의 변새의 고통

萬死此生餘 만 번 죽다 이 생이 남으니

未見烏頭變 검은머리 변함을 보지 못했는데

難傳雁足書 기러기 다리에 편지 전하기 어렵네

遼天霜欲落 요동의 하늘 서리가 떨어지려 하고

關樹初○○ 관새의 나무 처음 낙엽이 질 때이네

却羨雙飛鳥 도리어 쌍으로 나는 새가 부러우니

嗟嗟我不如 아아 나는 그보다 못하네

 

苦懷仍成夢 괴로운 회포 곧 꿈이 되니

依然午晩餘 의연히 오후 저물녁이네

況聞新酒熟 하물며 새 술이 익었는데

不見故人書 고인의 편지를 보지 못하였네

塞路龍灣隔 변새의 길은 용만에 막혀있고

秋風雁字踈 가을바람 속 기러기 글자는 드무네

憐君一弟痛 그대의 한 아우의 병을 동정하니

心事更何如 심사가 다시 어떠한가?

 

客臥是誰地 나그네로 누우니 이곳은 누구의 땅인가

殊方萬里餘 이방의 만 리 밖이네

魂隨關塞月 혼은 관새의 달을 따라가고

目斷故鄕書 눈에는 고향의 편지가 끊어졌네

一片丹心切 한 조각 단심이 절실한데

千莖白髮踈 천 줄기 백발이 성그네

遠憐知已在 멀리서 지기가 있는 곳을 그리워하니

相問病何如 서로 병이 어떠한가를 묻네

 

絶塞秋高後 외딴 변새의 가을이 깊은 후

孤臣病起餘 외로운 신하 병에서 일어나니

分明萬重意 분명한 만중의 뜻

咫尺荊之書 지척의 편지에 담고

談笑差爲幸 담소로 조금 위안이 되니

招尋且莫踈 불러 찾는 것 소홀하지 마오

思量人世事 인간 세상의 일을 헤아려보니

癡坐一僧如 어리석게 앉아서 한 중과 같네

 

羈旅誰云苦 여행을 누가 고생이라고 하였는가

追陪興有餘 따라 모시니 흥이 넘치네

騷壇韓李句 시단에선 한유와 이백의 시구이고

講幄夏商書 강악에선 하서와 상서이네

學術慚無補 학술에 보완함이 없어 부끄러운데

壺觴分不踈 술병을 나눔은 소홀하지 않네

金莖一杯露 금경의 한 잔의 선로

時復賜相如 때때로 다시 상여에게 내리네

 

주석

1)騷壇(소단): 시단(詩壇).

2)韓李(한이):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와 이백(李白).

3)金莖(금경): 승로반(承露盤)을 받히는 구리기둥. 승로반은 이슬을 받는 그릇.

3)相如(상여): 한나라 부(賦)의 작가 사마상여(司馬相如).

 

風雨何年別 풍우 속 어느 해에 이별하였던가

西南萬里餘 서남 만 리 밖이네

逢場憐愁病 상봉한 곳 수심 병이 가련한데

開篋撿君書 상자 열어 그대 편지를 점검하네

世路偏多險 세로엔 몹시 험난함이 많지만

交情晩不踈 교정은 만년에 소홀하지 않네

無斷遼塞外 끝없는 요새의 밖에서

相對夢中如 서로 대하니 꿈속인가 싶네

 

痛飮一斗後 한 말 술을 통음한 후

吟詩千首餘 시 읊은 것 천 수 남짓인데

文章盛於此 문장이 이 때에 왕성하니

近日續何書 근일에 어떤 글을 이었는가

白雪人誰和 백설인을 누가 화답하리

黔驢○○○

○○○獨甚

萬事醉無如 만사가 취하여 없는 듯하네

 

一室寬天地 한 방이 천지처럼 넓고

安排樂有餘 안배에 즐거움이 넘치네

尊盈新釀酒 새로 담은 술을 술동이에 가득 채우고

幸對古人書 다행히 고인의 편지를 대하네

詩思窮愈健 시 구상은 곤궁할수록 더욱 건실하고

狂圖老更踈 미친 도모는 늙어갈수록 소홀해지네

春坡李學士 춘파 이학사와

氣味乃相如 기미가 곧 서로 같네

 

又向春坊去 또 춘방으로 가서

論交握手餘 교분 논하며 손을 잡네

坐愁傾盡酒 앉아서 수심 속에 술을 모두 따르고

歸憙臥看書 돌아와 기쁨 속에 누워서 책을 보네

快意顚狂甚 즐거운 뜻의 솟구침이 몹시 심하고

忘形禮法踈 자신마저 잊고 예법에 소홀하네

天涯秋一葉 하늘 끝의 가을에 한 나뭇잎은

吾與故人如 나와 고인과 같네

 

十載風塵裏 십 년 동안 풍진 속에서

孤生萬死餘 외로운 생은 만 번 죽다 남았는데

驚看新序節 새 계절을 놀라서 보며

抛却舊詩書 옛 시서를 내던지네

沙塞蟾光冷 사막의 변새에 달빛이 차갑고

關河雁影踈 관하의 기러기 그림자는 드무네

向來帶恨淚 이제까지 한스런 눈물을 지녀왔는데

今日更漣如 금일에 다시 쏟아질 듯하네

 

早許忘年友 일찍이 망년의 벗으로 허락하였는데

今爲載酒人 오늘은 술을 싣고 온 사람이네

兵屯細柳日 병사들 세류영에 주둔하는 날에

書斷上林辰 편지는 상림의 날에 끊겼네

秋入秦時月 가을은 진나라 때의 달빛으로 들어오고

寒侵楚奏身 추위는 초나라 곡을 연주하는 몸으로 침범하네

羨君孤館裏 그대를 선망하며 외로운 여관 속에 있으니

猶夢在堂親 오히려 꿈이 당에서 친한 것 같네

 

주석

1)忘年友(망년우): 나이를 따지지 않는 친구.

2)細柳(세류): 세류영(細柳營).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함양(咸陽) 서남에 있었던 한(漢)나라 때의 진영의 이름.

2)上林(상림): 궁궐의 원림(園林).

3)楚奏身(초주신): 초나라 종의(鍾儀)을 말함. 종의가 진(晉)나라에 포로가 되어 잡혀있을 때 진나라 왕 앞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초나라 금곡(琴曲)를 연주하였음.

 

篋中猶有舊縫衣 상자 속에 아직도 옛날 지은 옷이 있어서

長懷萱堂舞綵時 훤당에서 색동옷 입고 춤추던 때를 오래 생각하네

秋露此生無限痛 가을 이슬 이날에 생겨나 무한한 고통이 있어

不堪吟到蓼莪詩 요아시를 차마 읊을 수가 없네

 

주석

1)萱堂(훤당): 어머니가 거처하는 방.

2)蓼莪詩(요아시): 『시경․소아』의 편명.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애도시이다.

 

同居同食且同衣 거처와 식사를 같이하고 또한 옷까지 함께 입었는데

一隔幽明已幾時 한 번 유명으로 갈린 지가 이미 몇 세월이던가

分痛急難難再得 급난에 고통을 나누던 것 다시 얻기 어려워

不堪吟到鶺鴒詩 척령시를 차마 읊을 수가 없네

 

주석

1)幽明(유명): 죽음과 삶.

2)鶺鴒詩(척령시): 『시경‧소아』의 <상체(常棣)>시를 말함. 척령은 할미새인데 형제를 비유함.

 

飢從誰食凍誰衣 굶주리면 누구를 좇아 밥을 먹고 추우면 누구에게서 옷을 입나

想見當年擧案時 당년의 밥상을 들던 때를 생각해보니

天賦我生胡獨苦 하늘이 나의 생을 부여함이 어찌 홀로 괴로운가

不堪吟到瑟琴詩 슬금시를 차마 읊지 못하겠네

 

주석

1)瑟琴詩(슬금시): 슬금은 곧 금슬(琴瑟). 부부의 정을 비유함.

 

椿堂何日舞班衣 춘당에서 색동옷 입고 춤추던 때가 언제이던가

血泣慈烏反哺時 자애로운 까마귀가 반포하던 때를 피눈물 흘리네

況是故人秋露感 하물며 고인이 가을이슬에 감개하니

苦吟應和七韻詩 골똘히 읊조리며 칠절시에 마땅히 화답하네

 

주석

1)椿堂(춘당): 춘정(椿庭). 부친을 말함.

2)反哺(반포): 까마귀는 늙은 어미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함. 효도를 비유함.

高堂一罷戱班衣 고당에서 한차례 색동옷 춤을 파하고

空對妻兒說舊時 공연히 처와 자식들을 대하고 옛날을 얘기했었네

千里白雲難更望 천리 길 흰 구름에 바라보기 어려운데

淚痕偏濕采蘭詩 눈물자국 젖어 있는 채란시일세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상지술회(和尙之述懷)>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班衣(반의): 『백헌집』에는 ‘래의(萊衣)’로 되어 있음.

3)采蘭詩(채란시): 진(晉)나라 속석(束晳)의 <보망시(補亡詩)․남해(南陔)>를 말함. 그 내용은 부모에 대한 공양이다.

 

情同姜被義摳衣 정을 함께 받고 의리를 공경하였는데

不道生看永訣時 살아서 보았던 영결하였던 때를 말하지 못하네

墓草三回秋月白 묘지의 풀은 세 번이나 가을달 빛 속에 하얗고

夜床和淚獨題詩 밤의 침상에서 눈물 흘리며 홀로 시를 짓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상지술회(和尙之述懷)>란 제목의 두 번째 시로 실려 있음.

2)摳衣(구의): 아래옷 자락을 들어 올림. 공경함을 나타냄.

 

秋來誰復寄寒衣 가을되었는데 누가 다시 겨울옷을 보내주나

隻影還相遠客時 외로운 그림자만 도리어 원객을 대하는 때이네

長夜似年冷似水 긴 밤은 일년 같고 차가움은 물과 같은데

可憐新寫悼亡詩 가련하게 도망시를 새로 짓네

 

주석

1)悼亡詩(도망시): 죽은 부인을 애도하는 시.

 

又 柳村(유촌)

函谷重關阻 함곡관의 중첩한 관문이 막히고

歸程萬里餘 돌아갈 길은 만리가 넘네

空憐燕有社 공연히 제비에게 사일이 있음이 부러운데

却嘆雁無書 다시 기러기의 편지 없음을 한탄하네

砌冷蛩音急 섬돌 차갑고 귀뚜라미소리 급한데

簷虛月影踈 처마는 비고 달 그림자는 성그네

中宵坐不寐 한밤중 앉아서 잠 못 이루고

愁寂楚囚如 근심 속에 초나라 죄수와 같네

 

주석

1)楚囚(초수): 진(晉)나라에 포로로 갇히었던 초나라의 종의(鍾儀).

2)燕有社(연유사): 제비에게 사일(社日)가 있음. 제비는 춘사(春社日)에 오고 추사일(秋社日) 때 돌아간다고 함.

 

路隔三千遠 길은 삼천 리나 막히어 멀고

秋深八月餘 가을 깊어 팔월이네

雁飛行亂字 기러기의 날아가는 행렬의 글자 어지럽고

人病卷迷書 사람은 병들어 책에는 글자가 어지럽네

報國微誠切 보국의 작은 정성이 절실한데

回轅宿計踈 수레 돌리려는 묵은 계책은 소홀하네

朝衣空收淚 조의에 공연히 눈물 거두는데

天意到何如 하늘의 뜻은 어디에 이르는가

 

鶴髮鴒原與縞衣 백발로 할미새 나는 들에서 상복을 입고

無窮哀慟憶當時 무궁한 애통 속에 당시를 추억하네

憐君不忍吟風雅 그대 그리워 차마 풍아를 읊지 못하겠네

三百篇中幾句詩 삼백편 중에 몇 구의 시던가

 

주석

1)鶴髮(백발): 백발(白髮).

2)鴒原(영원): 할미새가 나는 들판. 형제의 우애를 말함.

3)風雅(풍아): 『시경』을 말함.

4)三百篇(삼백편): 『시경』의 시를 말함. 『시경‧소아』의 <상체(常棣)>시에서 할미새를 가지고 형제의 우애를 말하였음.

 

與君秋露感俱新 그대와 함께 가을이슬에 대한 감개가 모두 새로우니

又作殊方苦惱人 다시 이역의 고뇌하는 사람이 되네

蝶夢未知身孑孑 나비가 된 꿈에 몸이 혈혈단신임을 몰랐는데

彩衣時入北堂春 색동옷 입었을 때 북당으로 들어가던 봄이었네

 

주석

1)蝶夢(점몽): 호접몽(胡蝶夢)을 말함.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았는데 깨고 나서 자신이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자신이 된 것인지를 몰랐다고 함.

2)北堂(북당): 어머니의 거소.

 

玉宇霜飛夜氣新 옥우에 서리 날리고 밤기운 새로운데

眼中難見夢中人 시야엔 꿈속의 사람을 보기 어렵네

悲風白草多蕭瑟 슬픈 바람에 백초가 몹시 소슬하고

恐却沙場更不春 사막에 다시 봄이 오지 않을까 두렵네

 

異域君臣血抆衣 이역의 군신들 피를 옷에 닦으니

荒荒天道此何時 황황한 천도인데 이 어느 때이던가

愁來咏罷文山句 근심으로 문산의 구절을 읊고 나니

燕獄千秋正氣時 연옥의 천추에 정기가 부를 때이네

 

주석

1)文山句(문산구): 문산(文山)은 송나라 문천상(文天祥)의 호. 원나라가 침공하였을 때 굴복하지 않고 연경(燕京)으로 잡혀가서 회유를 받았으나 끝내 항복을 거절하고 <정기가(正氣歌)>를 읊은 후 처형되었음.

2)燕獄(연옥): 연경(燕京)의 옥사(獄舍).

 

羈思逢秋轉覺新 나그네 시름 가을 만나 더욱 새로운데

天涯空作可憐人 하늘 끝에서 공연히 가련한 사람이 되어

半生忠孝俱無報 반평생의 충효를 모두 보답하지 못하니

屈指行年五十春 지나온 해 손꼽아보니 오십 세월이네

 

自恨此生如石頑 스스로 한스러우니 이 생애가 돌처럼 완고하여

每懷長逝敢圖安 매번 멀리 떠나 편안함을 도모하기를 생각하네

憐君心抱蘇耽痛 그대 마음 소탐의 고통을 지닌 것을 가련히 여기니

尙有春堂舞綵歡 오히려 춘당의 색동옷 춤의 즐거움이 있네

 

주석

1)蘇耽(소탐): 한(漢)나라 말엽 침현(郴縣) 사람. 일설에는 계양(桂陽) 사람이라고도 함.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함. 후에 신선이 되었다고 함.

 

忽忽時爲浪自悲 홀홀히 때로 마구 스스로 슬퍼하니

昏昏寧欲醉無知 혼혼히 차라리 취하여 무지하고 싶네

知君定是無憂者 그대가 진정 근심 없는 사람임을 아니

不識憂生靜坐時 근심하는 생이 조용히 앉아있는 때를 알지 못하네

 

天高何路秦愚頑 하늘 높은데 어느 길에서 어리석은 완고함을 상주할 건가

方寸曾無一日安 방촌의 마음 일찍이 하루도 편안함이 없었네

家國百憂身已老 집안과 나라에 대한 온갖 근심 속에 몸은 이미 늙었으니

此生難卜世上歡 이 생은 세상의 즐거움을 바라기 어렵네

 

世路多岐最可悲 세상의 길 갈래갈래 많아 가장 슬픈데

靜中深味子獨知 고요함 속의 깊은 맛을 그대 홀로 아네

須看萬卷無餘事 반드시 만 권의 서적을 보며 여사가 없으니

不是禪家面壁時 선가의 면벽 때가 아니겠는가?

 

주석

1)禪家(선가): 선승(禪僧).

2)面壁(면벽): 벽을 마주하고 참선하는 것.

 

家國如今不盡悲 집안과 나라 생각에 지금까지 슬픔이 다하지 않으니

百年人事彼蒼知 백년의 인사를 저 푸른 하늘은 알리라

煩君莫作輕生意 번민하는 그대는 살 뜻을 경시하지 마오

只勗男兒報主時 다만 남아가 임금에게 보답할 때에 힘을 다하시오

 

不是空爲無益悲 공연히 무익하게 슬퍼함이 아니니

君親一體我獨知 군친이 일체임을 나는 홀로 안다네

中秋卄九明朝是 중추 이십구일 밝은 아침인데

忍忘年年獻壽時 차마 해마다 헌수하던 때를 잊겠는가

 

주석

1)獻壽(헌수):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것.

 

老去詩才太施頑 늙어가며 시의 재능 몹시 완고해져서

强拈枯筆字難安 억지로 마른 붓을 드니 글자가 편안하기 어렵네

多君一斗成百首 그대가 한 말 술을 마시고 백 수를 짓는 것이 부러우니

要續城東舊日歡 부디 성동에서의 옛날의 즐거움을 이어서 읊어주오

 

次輔德九日野坂韻 柳村<보덕의 구일야판운에 차운하다> 유촌

人如脫縶馬如飛 사람은 굴레를 벗어난 듯하고 말은 나는 듯하니

暫舍郊原未還歸 잠시 교외의 들에 머물며 다시 돌아오지 않네

想對黃封期盡醉 황봉을 마주하고 만취할 것을 기약해 보지만

自憐班鬢拭無衣 스스로 가련하니 흰 귀밑머리 눈물 닦을 옷자락도 없네

流光只解添羈緖 흐르는 세월만 단지 나그네 시름을 더해주는데

急景遠驚易夕暉 급한 햇살 석양빛으로 바뀜을 멀리서 놀라워하네

忽憶禁苑秋一色 문득 금원의 가을빛을 추억하니

菊花楓葉政依依 국화와 오동잎은 진정 변함이 없네

 

주석

1)黃封(황봉): 슬 이름. 송나라 때 관청에서 주조한 술로 노란 비단이나 종이로 봉하였음.

2)禁苑(금원): 궁중의 원림(苑林).

 

高秋歿葉政絲飛 높은 가을 하늘에 시든 잎 진정 실처럼 날리고

人未歸時雁獨歸 사람은 돌아갈 때가 아닌데 기러기 홀로 돌아오네

黃菊一年當今節 노란 국화는 일년만에 지금 절기를 맞으니

綠紅千里斷縫衣 푸르고 붉은 천리 길에 꿰맨 옷 끊어지네

已知出郭迷塵事 이미 성곽을 나서 먼지 속에 헤맬 일을 알았으니

欲把長戈■■落暉 긴 창을 들고 지는 햇살을 만회하고 싶네

明日重城孤館裏 다음날 깊은 성 외로운 객관에서

寂寥門掩影相依 적막하게 문 닫히면 그림자와 서로 의존하리라

 

不分塵沙滿面飛 먼지 모래 만면에 나는 것을 분간할 수 없고

關河路斷欲何歸 관하 길은 끊겼는데 어디로 돌아가고자 하는가

龍山故事風吹帽 용산의 고사는 바람이 모자 날렸고

藍水新愁淚抆衣 남수의 새 수심에 눈물을 옷자락에 훔쳤네

酒潤衰顔獨友暈 술기운 짙은 쇠한 얼굴은 홀로 햇무리를 벗하는데

詩成短律已斜暉 시는 단율을 이루었는데 이미 석양빛이네

城闉暝色非吾土 성문의 어두운 빛 내 고향이 아닌데

自笑催遠若有依 스스로 우습구나 먼길 재촉하며 의지할 곳 있는 양하네

 

주석

1)龍山故事(용산고사): 진(晋)나라 맹가(孟嘉)가 환온(桓溫)이 용산(龍山)에서 베푼 중양절 잔치에 참석하여 바람에 모자를 날리고도 몰랐다는 고사. 용산은 안휘성(安徽省) 당도현(當途縣) 동남에 있는 산 이름.

2)藍水新愁(남수신수): 당나라 두보의 <구일남전최씨장(九日藍田崔氏莊> 시에 “藍水遠從千澗落, 玉山高並兩峰寒”이란 구절을 취한 것임. 두보의 시는 중양절의 수심을 내용으로 하고 있음. 남수는 남전(藍田)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 이름.

 

次李學士重陽前後韻 <이학사의 중양 전후의 운에 차운하다>

着睡搖煩夢 잠을 자는데 괴로운 꿈 요란하고

挑燈覺夜長 등불 밝히고 밤이 김을 깨닫네

有期逢會節 명절의 모임 기약이 있는데

無酒作中陽 술도 없이 중양절이 되었네

未恨身心苦 심신의 고생은 한스럽지 않으나

偏驚節序忙 절서가 빠름에 몹시 놀라네

帽簷終日整 모자창만 종일 바로잡는데

新月漫寢床 새 달빛 침상에 가득하네

 

荏苒年光促 끊임없이 흐르는 세월 촉박한데

衰遲世味長 쇠약한 만년에 세상맛이 기네

來時經伏熱 올 때 복날의 열기를 겪었는데

住處已回陽 머무는 곳에 이미 양기가 회복되었네

故國黃花發 고국엔 노란 국화가 피었겠고

邊秋白雁忙 변방의 가을엔 흰 기러기가 분주하네

仙逝望咫尺 신선의 떠남을 지척에서 바라보고

愁寂臥寒床 근심 속에 차가운 침상에 누웠네

艱險嘗曾備 간험의 맛은 일찍이 예비되었는데

亨屯計未長 형둔의 계책은 뛰어나지 못하였네

可堪千里客 천리 먼 나그네가 되었는데

又是一中陽 다시 또 한 중양절이 되었네

世事淹中變 세상일 머무는 중에 변하는데

光陰箇裏忙 세월은 그 속에서 바쁘네

誰憐吹帽節 누가 모자 날리는 명절을 그리워하는가

病渴臥藜床 소갈증으로 명아주 침상에 누었네

 

忽忽佳辰過 홀홀히 가절이 지났는데

悽悽客意長 처량하게 나그네 시름이 기네

已知非九日 이미 구일이 아님을 알지만

有酒卽中陽 술이 있으니 곧 중양절이네

多病傾須細 병이 많아 적게 따를 것 같은데

無錢賖豈忙 돈도 없는데 술 사는 것 어찌 바쁜가

待人仍待月 손님을 기다리고 이어서 달을 기다려

同醉且同床 함께 취하고 또한 침상을 함께 하네

 

客淚秋難制 나그네의 눈물은 가을에 억제하기 어렵고

佳辰意更長 가절에 뜻이 더욱 기네

未拚人落帽 다른 사람들과 모자를 떨구지 못하고

空羨雁隨陽 공연히 기러기가 태양을 따라가는 것을 부러워하네

老菊霜威重 늙은 국화엔 서리의 위세가 무겁고

衰顔酒暈忙 쇠한 얼굴엔 술기운이 분망하네

可憐弦正月 사랑스러운 둥근 달이

來照孤眠床 외로운 침상에 와서 비춰주네

 

주석

1)隨陽(수양): 태양을 따라 멀리 남쪽으로 가는 것.

 

西來淹歲月 서쪽으로 와서 세월을 지체하며

南望道途長 남쪽을 바라보니 길이 머네

六甲今逢甲 육갑이 오늘 갑을 만나니

重陽是老陽 중양은 곧 노양이네

花羞頭揷少 꽃은 머리에 덜 꽂히는 것이 부끄럽고

罌恥盞飛忙 술동이는 술잔 날림이 바쁜 것이 부끄럽네

未必望臨勝 승경지에 임하여 바라보지 못하고

良辰度一床 좋은 날을 한 침상에서 보내네

 

又次李學士韻 <다시 이학사의 운에 차운하다>

忘年托弊早 망년의 정을 나의 젊은 때에 의탁하였는데

垂老更心親 늙어갈수록 더욱 마음으로 친하네

文壓班楊壘 문장은 반고와 양웅의 보루를 압도하고

詩輕晉宋人 시는 진나라 송나라 사람들을 경시하네

東村賜酒如 동촌에서 술을 사와서

南麓賞秋新 남쪽 기슭에서 새 가을을 감상하네

應有三生好 마땅히 삼생의 좋은 인연 지녔으니

殊方且作隣 이방에서 또다시 이웃이 되었네

(玄溪 현계)

 

주석

1)班楊(반양): 반고(班固)와 양웅(楊雄). 한나라 문장가들임.

2)晉宋人(진송인): 남북조 시대의 진(晉)나라와 송(宋)나라의 사람들.

 

蒼顔自怪此身頑 창백한 얼굴로 스스로 이 몸의 완고함이 괴이한데

閱盡悲憂尙得安 슬픔과 근심을 다 겪고 오히려 편안함을 얻었네

昔日吾廬鄕黨羨 지난날 나의 오두막을 고향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는데

弟兄同奉兩親歡 형제들이 함께 양친을 받들며 즐거웠었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현계 박상지의 술회 작품에 화답하다(和玄溪朴尙之述懷之作)>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草土餘生萬事悲 초토의 남은 생애 만사가 슬퍼서

此心良苦有誰知 이 마음 참으로 괴로운데 누가 알아줄 것인가?

今朝更爲君詩泣 오늘 아침 다시 그대의 시 때문에 우니

八月同吾十月時 그대의 팔월이 나의 시월과 같구려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화현계박상지술회지작(和玄溪朴尙之述懷之作)>이란 제목의 두 번째 시로 실려 있음. 이 시에 대한 이경석의 자주(自注)에 “선고비(先考妣)의 초신(初辰)이 모두 시월에 있다”고 하였다.

 

學士新詩起我頑 학사의 새 시가 나의 완고함을 일으켜주니

白鬚撚短始排安 흰 수염을 짧게 꼬며 비로소 시구를 안배하네

吟哦遣悶非乘興 읊조리며 번민을 풀어보나 흥이 나지 않고

盃酒昏暝豈做歡 잔술로 혼명하니 어찌 즐길 수가 있겠는가

 

卽事休言萬事悲 지금의 일로 만사가 슬프다고 말하지 마오

世間飜覆豈前知 세상일 번복됨을 어찌 미리 알리오

秋天日落邊聲起 가을날 해가 지니 변방의 소리 일어나고

似坐如來入定時 흡사 앉아서 여래가 선정에 들 때와 같네

 

秋來無事不生悲 가을되어 무사하니 슬픔이 생기지 않고

客裏衰容鏡裏知 나그네 길 쇠한 얼굴을 거울에서 깨닫네

半死殘骸猶異域 반쯤 죽은 남은 해골은 오히려 이역에 있는데

孰云身病是閑時 누가 병든 몸이 한가할 때라고 말하는가

(柳村 유촌)

 

更步前韻 <다시 전운에 차운하다>

自笑爲人賦性頑 스스로 우습구나 사람됨이 타고난 성품 완고하여

坐於塗炭處之安 도탄 속에 앉아서도 편안하게 처신하네

忘懷且學忘言術 회포를 잊고 또 망언술을 배우니

無酒烹茶有酒歡 술이 없어 차를 끓였으나 취한 즐거움이 있네

 

曉坐聽詩抆淚悲 새벽에 앉아서 시를 듣고 눈물 훔치며 슬퍼하니

此心唯有故人知 이 마음을 다만 고인만이 알리라

浮生未死皆爲痛 부질없는 생이 죽지 못해 모든 것이 고통인데

說盡長安共榻時 장안에서 걸상에 함께 앉았던 때를 말하네

 

土木形骸笑我頑 토목 같은 형해에 나의 완고함을 비웃는데

怪來心地却便安 괴이하게도 마음이 도리어 편안하네

覆牛不動頹然臥 엎어진 소가 꿈쩍 않고 퇴연히 누워버리니

底事爲悲底事歡 무슨 일로 슬퍼하고 무슨 일로 즐거워하는가

 

家國年來未死悲 집안과 나라 일로 연래에 죽지 못해 슬픈데

況君心事更誰知 하물며 그대 심사를 다시 누가 알리오

偏憐日日門閱望 날마다 가문의 명망을 몹시 부러워하는데

不見紆金拖紫時 금인과 자수를 차던 때를 볼 수 없네

(春坡 춘파)

 

주석

1)門閱(문열): 문벌(門閥).

2)紆金拖紫(우금타자): 우금예자(紆金曳紫). 금인(金印)과 자수(紫綏)를 패용함. 고위직의 신분을 말함.

 

自分人間我獨頑 세상에서의 자기의 분수 나만 홀로 완고하니

當時寧卜此會安 당시에 어찌 이 모임의 편안함을 바랬겠는가

唯公與我同心事 다만 공과 내가 심사가 같아서

拭淚空談曩昔歡 눈물 훔치며 공연히 지난날의 즐거움을 말하네

 

獨事關懷覽物悲 외로운 일 마음에 있어서 사물을 보고 슬퍼하니

夜來懷抱一燈知 밤이 되어 회포를 한 등불이 아네

人間好是三秋節 인간세상 바로 삼추의 절기인데

未死孤哀泣血時 죽지 못한 고애자가 피눈물 흘릴 때이네

(考妣初辰在七月八月(고비의 초진이 칠월 팔월에 있다), 玄溪(현계)

 

주석

1)孤哀(고애): 고애자(孤哀子). 부모의 상을 당한 자식.

 

心虛恥作丈夫頑 마음이 부끄럽게 장부의 완고함을 이루니

浮海長懷管幼安 부질없는 세상에서 관유안을 오래 생각하네

生老太平吾已矣 생로와 태평을 나는 이미 잊었는데

幾人能得百年歡 몇 사람이나 백년의 즐거움을 얻었는가

(柳村 유촌)

 

주석

1)管幼安(관유안): 한(漢)나라 말의 관녕(管寧). 유안은 그의 자이다. 황건적의 난 때 가족을 데리고 요동으로 피난 갔다가 37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후 출사를 하지 않고 생애를 마쳤다.

 

微雨凄風動客悲 가는 비와 처량한 바람이 나그네 슬픔을 자아내니

弟兄相對只相知 형제들 마주 한 곳을 서로 알리라

仍思買酒東村夜 동촌의 밤에 술을 사오려 하는데

燈下君獨戒醉時 등불 아래 그대 홀로 취함을 경계하고 있을 때이네

(春坡 춘파)

 

依依無緣問後期 끊임없이 나중의 기약을 물을 길이 없는데

門前一別倍相思 문전에서 한 번의 이별에 배나 그립네

從今永斷靑雲志 지금부터 청운의 뜻이 영원히 끊어지니

對酌誰吟白雪詞 술잔 대하고 누가 백설사를 읊는가

(玄溪 현계)

 

忽忽不曉問前期 홀홀히 이전 기약 묻는 것 깨닫지 못하고

腸斷街頭步步思 애끊는 길가에서 걸음걸음 그리워하네

相報愧無靑玉案 서로의 보답에 청옥안이 없는 것이 부끄럽고

共吟應有白雪詞 함께 읊음에는 당연히 백설사가 있네

(春坡 춘파)

 

주석

1)靑玉案(청옥안): 푸른 옥으로 만든 반상기(飯床器).

 

追聯用前韻 <다시 전운을 이어 쓰다>

歲月孤城裏 세월은 외로운 성 안에 있고

山河百戰餘 산하는 백전 끝에 남아 있네

朔風喧鼓角 삭풍 속에 고각 소리 시끄럽고

關路隔車書 관새의 길엔 수레와 서신이 막히었네

雲海心俱遠 운해의 마음은 모두 멀고

霜林鬢共踈 상림의 귀밑머리는 함께 성그네

眼中靑尙在 눈동자에 반기는 뜻 여전히 있으니

相對却歡如 서로 대하고 도리어 즐겁네

(白軒 백헌)

 

주석

1)이 시는 이경석의 『백헌집』권6에 <수함경(酬咸卿)>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

2)雲海心(운해심): 고원하고 공활(空闊)한 마음의 경계(境界).

3)霜林鬢(사림빈): 서리 내린 숲과 같이 하얀 귀밑머리.

4)眼中靑(안중청): 청안(靑眼)을 말함. 반기는 눈동자.

 

追和 <다시 화답하다>

賓客孤城老 빈객이 외로운 성에서 늙어가니

風霜六載餘 풍상 속에 육 년 남짓이네

銅龍悲瞻省 동룡문에서 슬프게 살펴보고

金馬憶懷書 금마에서 품었던 글을 추억하네

愛主危患激 임금을 사랑하여 위환에 격분하고

憂時壯髮踈 시국을 근심하여 장한 머리털 성글었네

天涯無限淚 하늘 끝에서 무한한 눈물 흘리고

臨別復交如 이별에 임하니 다시 쏟아질 듯하네

(玄溪 현계)

 

遼塞秋光晩 요새의 가을빛 저물어

驚臨積雨如 쌓인 비 기운에 놀라 임한 듯하네

自憐雙鬢雪 스스로 두 귀밑머리 하얀 것을 동정하는데

未達一封書 한 봉의 편지를 부치지 못하였네

戎馬邊城鬧 융마는 변방 성에서 시끄럽고

關河客夢踈 관하의 나그네 꿈은 성그네

冑筵連抆淚 주연에서 연이어 눈물 닦으니

經術奈空如 경술의 공허함이 어떠한가

(柳村 유촌)

 

주석

1)冑筵(주연): 서연(書筵). 왕세자가 독서하고 강론하는 자리.

 

邂逅連山路 이어진 산길에서 해후하니

團圓半月餘 단원절 후 반달 남짓이네

只緣憂國事 다만 나랏일 걱정으로

猶未付家書 아직 집안 편지를 부치지 못하였네

盃酒渾無興 술잔에도 전혀 흥이 나지 않고

詩篇亦已踈 시편 역시 이미 소홀하네

此時恩賜至 이 때에 은혜 내림이 이르니

心緖復何如 마음이 다시 어떠한지?

(玄溪 현계)

 

寂寞春坊會 적막한 춘방의 모임

題詩幷酒餘 시를 짓고 술을 마신 후이네

夜回遼塞夢 밤에 요새의 꿈이 돌아오고

秋隔洛陽書 가을에 낙양의 편지 막히었네

白雪調難和 백설조는 화답하기 어렵고

金門路已踈 금문의 길은 이미 소홀하네

何由對面君 어떻게 그대를 마주할까

氷玉烱然如 빙옥이 형연하게 빛나는 것 같네

(春坡)

 

風光今日好 풍광이 오늘 좋은데

我輩幾人存 우리들 몇 사람이나 있는가?

不是無明月 밝은 달이 없지 않으나

唯傷近夕昏 다만 저녁 어둠이 가까우니 속상하네

(玄溪 현계)

 

浮世千般苦 부질없는 세상 온갖 괴로움 속에

邊城一息存 변성에서 한 휴식이 있어

願將無限酒 원컨대 무한한 술로써

日日醉昏昏 매일매일 혼혼하게 취하고 싶네

(柳村 유촌)

 

一榻團園會 한 걸상의 단원절의 모임

渾盃厚意存 가득한 술잔 후의가 넘치는데

莫辭今夕醉 오늘 저녁 취함을 사양하지 마오

西日近黃昏 서쪽 해는 황혼에 가깝다네

(司書 薇川: 사서 미천)

 

주석

1)團圓(단원): 團圓節(단원절). 음력 8월 15일의 명절.

 

用前韻 <전운을 쓰다>

無斷阻顔面 무단히 안면이 막히니

相憶浹旬餘 열흘 남짓 서로 그리워했네

病久憐傷肺 병이 오래되어 상한 폐를 동정하고

憂深懶寄書 근심이 깊어서 편지 부침에 게으르네

酒中前夜遊 취하여 전날 밤 놀 때

懷訝故人踈 고인의 소홀함이 의아하였네

莫道詩意廢 시 생각 폐하였다고 말하지 마오

詩成錦不如 시 이루면 비단도 그것만 못하리라

(春坡 춘파)

 

和 <화답하다>

相距咫尺地 서로의 거리 지척의 땅인데

反成千里餘 도리어 천리 남짓을 이루네

何意近好日 무슨 뜻으로 좋은날이 가까운데

闕然無一書 궐연히 편지 한 장 없는가

端由世故促 다만 세상일 촉박하여

不是交情踈 교정이 소홀한 것이 아닌지?

佳節莫虛擲 가절을 헛되이 내던지지 마오

有酒秋露如 술이 있는데 가을이슬 같다오

 

斗酒厭厭飮 말술을 조용하게 마시고

相思耿耿餘 그리운 생각에 불안하네

詩成疑下字 시 짓고서 쓴 글자를 의심하고

愁寂斷來書 근심 속에 오는 편지 끊어졌네

照榻輕塵沒 밝은 걸상엔 가벼운 먼지 가라앉고

斜窓夕照踈 기운 창에는 석양빛 성그네

平生報國志 평생의 보국의 뜻에

今日恨無如 금일 한이 끝이 없네

(柳村 유촌)

 

咫尺阻相訪 지척에서 서로의 방문이 막히니

還同千里餘 도리어 천리 밖에 있는 듯하네

病廢三杯酒 병으로 세 잔의 술을 폐하고

愁關一字書 한 글자의 편지에도 수심 어리네

豈是交情淺 어찌 교정이 얕아서이겠는가?

自然人事踈 자연히 인간사에 소홀하네

看君詩語好 그대의 시어가 좋음을 보니

諷詠覺誰知 풍영하는 깨침을 누가 알리

(薇川 미천)

 

萬死風塵裏 풍진 속에 죽음을 무릅쓰니

春堂泣別餘 춘당에서 울며 이별한 후이네

相尋荊樓詠 서로 형루를 찾아 읊조리니

仍隔豫章書 곧 예장의 편지가 끊어졌네

酒戶憐多減 술집은 가련하게 몹시 줄어들었는데

孤村魂未踈 외로운 마을엔 혼이 소홀하지 않네

羈愁賴君豁 나그네 시름 그대에게 의뢰하여 풀리니

一見一驩如 한 번 볼 때마다 한 즐거움이 있는 듯하네

(春坡 춘파)

 

주석

1)豫章書(예장서): 예장우(豫章郵). 서신을 지닌 사람을 말함.

 

九日陪從野次, 押善伯呼韻 <중구일에 야차(野次)에 배종하여 선백(善伯)의 호(呼)자 운(韻)에 압운하다>

蹔出重城快意飛 잠시 중성을 나서니 유쾌한 뜻이 날고

臨流客興却忘歸 흐르는 물에 임하니 나그네 흥에 도리어 돌아가길 잊네

忽驚佳節當吹帽 문득 가절의 모자 날림에 놀라고

共說羈懷未授衣 모두 나그네 시름에 수의절이 아니라고 말하네

白草已枯愁遠望 백초는 이미 말라 수심 속에 멀리 바라보니

黃昏漸近照斜暉 황혼이 점차 가까워 석양빛이 비추네

忘憂賴有宮壺賜 근심 잊는 것은 궁중 술을 내림에 의존하고

尙憙君臣到處依 오히려 군신이 가는 곳마다 의존함이 기쁘네

 

追次靑坡二韻 <다시 청파의 두 운에 차운하다>

引興興不至 흥을 이끌려도 흥이 이르니 않고

銷愁愁更長 수심을 풀려해도 수심은 더욱 기네

寧將一尊酒 차라리 한 동이 술을 가지고

又作兩重陽 다시 중양절을 이루네

愁起倍相憶 근심 일어나 배나 서로 그리운데

夜歸何太忙 밤에 돌아가는 것 어찌 그리 서두르는가

佳期須莫負 좋은 기약을 반드시 저버리지 마오

爲子掃塵床 그대 위하여 먼지 낀 침상을 청소했다오

 

百尺重城大澤濱 백 척의 중성 대택의 물가에

一秋歸思夜來新 한 가을의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밤이 되어 새롭네

生憎月下悲鳴雁 달빛 아래 슬프게 우는 기러기 증오스러우니

不識天涯有旅人 하늘 끝에 나그네가 있음을 모르는가

(玄溪 현계)

 

剝■■傳咶急 문 두드려 전하는 말 급한데

淸詩意味長 맑은 시의 의미가 기네

故人新釀酒 고인이 새로 술을 빚었는데

今日似重陽 오늘이 중양절 같네

路隔龍山遠 길은 용산과 막히어 멀고

心隨鶴駕忙 마음은 학가를 따라 분주하네

唯須走馬去 다만 달리는 말을 좇아가서

談笑卽連床 담소하며 침상을 나란히 하네

 

淸秋落日大江濱 맑은 가을 해가 진 큰 강가에서

一曲長歌意更新 한 곡조 장가는 뜻이 더욱 새롭네

孤雁去時但羨我 외로운 기러기가 떠날 때 다만 나를 부러워하는데

不知俱是望鄕人 모두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임을 모르네

(江上口占, 春坡) <강가에서 읊다> (춘파)

 

附追次飛字韻 <다시 비(飛)자 운에 차운하여 부치다>

江阜秋晩雁南飛 강 언덕 가을 저물어 기러기 남으로 나니

塞外羈臣政憶歸 변새 밖 떠도는 신하는 진정 귀향을 생각하네

題柱昔年通紫闥 기둥에 시 적던 지난날은 궁궐에 통했는데

揷花何日舞班衣 꽃 꽂고 어느 날이나 춤추는 색동옷을 입을 건가

叨陪鶴駕醉佳節 학가를 모시고 가절에 취하니

莫向牛山恨落暉 우산을 향하여 지는 햇살을 한스러워하지 마오

最是問安初開後 가장 문안 인사 처음 열린 후

月明門掩思依依 달 밝고 문 닫으니 사념이 끝이 없네

(春坡 춘파)

 

주석

1)牛山(우산): 산동성(山東省) 치박시(淄博市)에 있는 산의 이름. 삼국 위나라 조식(曹植)의 <감절부(感節賦)>에서 “우산에서의 애읍을 사모한다(慕牛山之哀泣)”이라고 하였음. 그 내용은 인생의 짧음을 노래한 것임.

 

塞天無際雁南飛 변새의 하늘 끝이 없는데 기러기 남으로 날고

秋滿關城客未歸 가을 가득한 관성엔 나그네 돌아가지 못했네

佳節偶成今日會 가절에 우연히 금일의 모임을 이루었는데

寒來猶着去年衣 추위에도 오히려 거년의 옷을 입고 있네

盃觴草草無歡意 술자리 초초하여 기쁜 뜻이 없고

雲海茫茫易夕暉 운해는 망망한데 저녁빛이 바뀌었네

畵角三聲孤館夢 화각 소리 세 차례 외로운 여관의 꿈에 울리니

不堪羈思更依依 나그네 수심이 다시 끊이질 않음을 감당할 수 없네

 

殊方爲客久 이방에서 나그네 된지 오래인데

愁與病俱長 근심과 병이 모두 오래이네

佳節猶是夕 가절에 오히려 이 저녁이 있어

歡游憶洛陽 즐거운 유람에 낙양을 추억하네

驚魂危不定 놀란 혼은 위태롭게 안정되지 못하고

歸夢覺遠忙 귀국의 꿈은 깨어나 멀리 분주하네

閉戶無言坐 문 닫고 말없이 앉아 있으니

凝塵自滿床 엉긴 먼지 절로 상에 가득하네

(薇川 미천)

 

九月初十日, 始見一枝菊, 醉中戱吟 <구월 초십일, 처음으로 국화 한 가지를 보고 취중에 장난삼아 읊다>

明日是重陽 내일이 중양절이고

今日非重陽 오늘은 중양절이 아닌데

今日始見菊 오늘 처음 국화를 보니

昨日非重陽 어제는 중양절이 아니었네

(玄溪 현계)

 

莫道過重陽 중양절이 지났다고 말하지 마오

九秋皆重陽 구추가 모두 중양절이니

有酒卽酩酊 술이 있어 명정하게 취한다면

無日不重陽 중양절이 아닌 날이 없다오

(薇川 미천)

 

주석

1)酩酊(명정): 술에 몹시 취한 모양.

 

永夜愁無寐 긴 밤 근심으로 잠 못 이루고

寒燈獨自親 차가운 등불을 홀로 가까이 하였네

空吟詩上語 공연히 시 속의 말을 읊으나

不見眼中人 시야 속의 사람은 볼 수가 없네

白酒此時熟 백주는 이 때에 익었는데

黃花何處新 황화는 어느 곳에서 새로 피었는가?

鄕園錦繡色 고향 동원의 비단 수의 고운 빛

今日屬誰憐 오늘은 누구의 사랑 속에 있는가?

(玄溪 현계)

 

輔德佳篇富 보덕의 좋은 시편 풍부하고

司書故意親 사서의 옛 뜻이 친하네

重陽近落日 중양절에 지는 해 가까운데

兩地隔三人 두 곳에서 세 사람이 떨어져 있네

醉憶黃花友 취해서 노란 국화의 벗을 추억하고

寓留紫塞新 머물러 있으니 자새가 새롭네

遠憐老賓客 멀리서 늙은 빈객을 동정하는데

無酒病爲憐 술이 없어 병을 이웃으로 삼았다네

(春坡 춘파)

 

頓忘客裏苦 문득 나그네길의 고생을 잊으니

無日不相親 매일 서로 친하니 않은 날이 없네

擧目非吾土 눈을 들어보아도 나의 고향이 아닌데

論心是故人 마음 나누는 고인이 있네

自憐衰病甚 쇠한 병이 심함을 스스로 동정하는데

還覺鬢毛新 다시 귀밑머리 새로움을 깨닫네

他日難忘處 훗날 잊기 어려운 곳은

天涯作比隣 하늘 끝에서 가까운 이웃이 된 곳이네

(薇川 미천)

 

敬次 <삼가 차운하다>

千里歸心付短章 천리 밖 귀향의 마음 짧은 시에 부치니

精深字字與行行 정심한 글자들과 구절들이네

休將一勺窺涯涘 한 국자로 큰 강물을 살피질 마오

大海波濤接混茫 큰 바다의 파도가 혼망에 접했다네

(玄溪 현계)

 

風滿踈櫺月隱墻 바람은 성근 격자창에 가득하고 달빛은 담에 은은한데

歸來無語淚千行 돌아와서 말없이 눈물만 천 가닥 흘리네

尊酒白雪誰人和 술잔 앞의 백설가를 누가 화답하리오

秋盡遼河路渺茫 가을 다한 요하 길은 아득하기만 하네

(春坡 춘파)

 

和薇川咏菊韻 <미천의 영국운에 화답하다>

愛爾能全節 네가 절개를 온전히 지킴을 사랑하니

非吾只爲眸 내가 다만 보고자함은 아니네

群芳已消歇 여러 꽃들은 이미 시들었는데

獨秀傲霜秋 홀로 피어나 서리의 가을을 이겨내네

(玄溪 현계)

 

絶域風霜裏 외딴 이역의 풍상 속에

逢渠刮病眸 그대 만나서 병든 눈을 비비네

依然相對坐 의연히 서로 대좌하고

還憶故鄕秋 도리어 고향의 가을을 추억하네

(薇川 미천)

 

病臥茅簷雨 띠집 처마의 빗속에 병으로 누웠는데

昏昏合兩眸 어질어질 두 눈이 감기려 하네

淸詩來慰我 맑은 시가 와서 나를 위로하는데

寒菊爲誰秋 찬 국화는 누구를 위해 가을을 이루었나?

(春坡 춘파)

 

怪爾華池鶴 괴이하다 화지의 학이여

如何溝瀆隈 어찌하여 도랑의 모퉁이에 있는가

每來空舞躍 매번 와서 공연히 춤추며 도약하고

欲去復遲回 가려다가 다시 머뭇거리네

非曰此可濯 이곳은 몸 씻을 만하지 못하고 하니

其懷良足哀 그 회포가 참으로 슬프네

還同柳學士 다시 유학사와 함께

對此咏徘徊 이를 대하고 읊으며 배회하네

(玄溪 현계)

 

주석

1)華池(화지): 전설 속의 못의 이름. 곤륜산(崑崙山)에 있다고 전함.

 

次 <차운하다>

側足汚池上 더러운 못에 발을 디디고

歸心綠水隈 돌아갈 마음은 푸른 물가에 있네

靑田巢別久 청전의 둥지를 떠나온 지 오래이고

碧落夢飛回 벽락의 꿈이 날아서 돌아오네

月照孤形瘦 달빛에 비치는 외로운 모습 수척하고

風聽一唳哀 바람 속에 듣는 한 울음소리 슬프네

蘆銛矰未脫 갈대의 날카로운 주살을 벗어나지 못할 터이니

憐爾此徘徊 네가 이곳에서 배회함을 동정하네

(柳村 유촌)

 

주석

1)靑田(청전): 산 이름. 절강성(浙江省) 청전현(靑田縣) 서북에 있음. 이곳의 학이 예로부터 유명함.

2)碧落(벽락): 하늘.

 

感懷更步咏鶴 <감회가 있어 다시 영학시를 보운한다>

久繫樊籠裏 새장 속에 오래 매어 있는데

長思雲水隈 구름 낀 물가를 오래 생각하네

與君心迹似 그대와 심적이 같으니

飛爾等閒回 날아서 등한히 돌아오네

每喚三更夢 매번 삼경의 꿈에 부르니

偏憐一響哀 한 소리의 슬픔을 몹시 동정하네

何時隨鶴駕 언제나 학가를 따라서

千里共徘徊 천리 길을 함께 배회할 건가

(玄溪 현계)

 

和春坡 <춘파에게 화답하다>

天上銀漢亦有期 천상의 은하수도 또한 기약이 있는데

人間咫尺奈相思 인간세상의 지척에서 어찌 서로 그리워하는가?

南樓一夜亂箏響 남쪽 누대의 하룻밤에 풍경소리 요란하니

雨後西風吹雁時 비 내린 후 서풍이 기러기소리 불어갈 때이네

(玄溪 현계)

 

佳節濠梁邂逅期 가절에 호량에서 해후의 기약이 있는데

中宵明月只相思 한밤중 밝은 달 아래 다만 서로 그리워하네

慇懃一○燒春酒 은근히 한 차례 춘주를 데우니

恰慰文園抱渴時 흡족히 문원의 소갈증을 위로하네

(春坡 춘파)

 

주석

1)文園(문원):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

 

九秋十五日 구추 십오 일에

一榻兩三人 한 걸상의 두세 사람

(春坡 춘파)

絶勝春坊直 경치 빼어난 춘방에서 숙직하며

孤吟坐至晨 외롭게 읊으며 앉아서 새벽에 이르네

(玄溪 현계)

 

昨日黃花酒 어제는 황화주를 마시고

今日黃花煎 오늘은 황화전을 먹네

金罇與玉筯 금 술잔과 옥 젓가락

前後相續連 전후로 서로 이어지니

殊渥至於此 특별한 은혜가 이곳에 이르렀네

盛意非偶然 성대한 뜻 우연이 아닌데

愧共涓埃效 작은 공을 함께 함이 부끄러운데

仰答恩遇偏 은우를 우러러 답하니

唯將國太平 다만 나라의 태평을

黙禱蒼蒼天 푸르고 푸른 하늘에 묵묵히 기도하네

(玄溪 현계)

 

憶君夢裏見 그대 그리워 꿈속에서 보고

憂君腸內煎 그대 근심되어 오장이 타내

君身同伯道 그대의 몸은 백도와 함께 하고

君志慕二連 그대의 뜻은 이련을 사모하네

君病侍講久 그대 병들어 시강이 오래인데

震宮爲惻然 진궁에서 측은하게 여기었네

君有五言詩 그대에게 오언시가 있어서

感激珍賜偏 감격스럽게 진중히 시를 내려주었네

君將欲何報 그대는 장차 무엇으로 보답하려는가

隻手思擎天 한 손으로 하늘을 떠받칠 것을 생각하네

(春坡 춘파)

 

주석

1)二連(이련): 한 몸이 두 군데로 이어짐.

 

老我此羈怕 늙은 나는 이 여행이 두려운데

憂病苦相煎 근심과 병의 고통 서로 괴롭히네

賴有一故人 다행히 한 고인이 있어서

與之床席連 더불어 상석을 나란히 하네

家國事酸辛 집과 나라의 일 괴로운데

欲說心茫然 말하려니 마음이 아득하게 되네

愧乏分寸效 분촌의 공도 없어 부끄러운데

徒荷恩私偏 다만 은혜 편사하게 받았네

才高且年妙 재간 높고 나이 또한 묘령이니

勗君到補天 더욱 힘써서 그대는 보천에 이르리라

(柳村 유촌)

 

莫報門將閉 문을 닫겠다고 알리지 마오

相看意有餘 서로 보니 뜻이 넘치는데

不堪歸臥後 돌아와 누운 후

窓月照殘書 창가의 달빛이 남은 글을 비추는 것을 감당할 수 없네

(春坡 춘파)

 

喜君詩有味 그대의 시는 맛이 있어 기쁜데

愧我酒無餘 나의 술은 남은 것이 없어 부끄럽네

(玄溪 현계)

明日相思意 내일 서로 보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

唯憑數字書 다만 몇 글자의 편지에 기대리라

(柳村 유촌)

 

多端人事阻佳期 다단한 사람의 일로 좋은 기약 막혔는데

同到天涯咫尺思 함께 하늘 끝에 와서 지척에서 생각하네

唯有一杯秋露春 다만 한 잔의 추로춘이 있어서

擁壚須慰苦吟時 화로 껴안고 골똘히 읊는 때를 위로하네

(春坡 춘파)

 

此地相逢本不期 이곳에서의 상봉을 본래 기약하지 않았는데

秋來共把望鄕思 가을되어 함께 잔 들고 고향생각을 하네

誰敎仙露人間在 누가 선로를 인간 세상에 남겨두었나

恰到臨邛病渴時 흡족히 임공에서 소갈증이 날 때에 이르렀네

(柳村 유촌)

 

주석

1)臨邛病渴時(임공병갈시): 한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탁문군(卓文君)과 함께 임공(臨邛) 땅으로 가서 술장사를 하였는데, 사마상여는 평소 소갈증이 있었다고 함.

 

一罇佳會有相期 한 술동이의 좋은 모임 서로 기약이 있는데

咫尺如何千里思 지척에서 어찌하여 천리 멀리 생각하는가

最是月明孤館夜 가장 달 밝은 외로운 여관의 밤에

不堪愁寂獨吟時 근심 속에 홀로 읊을 때가 견딜 수 없네

(薇川 미천)

 

病中孤負故人期 병중에 홀로 고인과의 기약을 어기고

獨對殘花有相思 혼자 시든 꽃을 대하니 그리운 생각이 있네

想得佳辰詩酒會 가절의 시주의 모임을 상상하니

朗吟長句把盃時 긴 구절 낭랑히 읊으며 술잔을 들 때이리

(玄溪 현계)

 

人間萬事本難期 인간세상 만사가 원래 기약하기 어려워서

十五離親曾不思 열 다섯에 부친을 이별할 줄 일찍이 생각 못했네

況復劬勞今日是 하물며 다시 구로하는 오늘이 그때이니

可堪西望念兒時 서쪽을 바라보며 어린애 때를 생각하네

(是日元生萬年初辰也: 이날은 원생(元生) 만년(萬年)의 초진이다)

 

今年已失昔年期 금년에 이미 석년의 기약을 저버렸는데

昨日相逢今日思 어제 상봉하고 금일에 생각하네

人事從來本如此 사람일 종래부터 본래 이 같으니

他時應復說前時 훗날 마땅히 다시 이전의 때를 이야기하리

(玄溪 현계)

 

多病憐君未赴期 병이 많아 그대 그리며 약속에 가지 못하고

午眠欹枕夢中思 낮잠 자며 베개에 기대어 꿈속에서 생각하네

從知聚散元無定 설사 취산에 원래 정해짐이 없다는 걸 알더라도

憂樂人間亦一時 금심과 즐거움은 세상에서 또 한때이네

一笑罇前話 한 차례 웃으며 술 앞에서 대화하고

依然醉散餘 의연히 취한 후 흩어진 후이네

更深仍不寐 시간 깊어도 잠 못 이루니

寂寞枕席書 적막한 잠자리에서 편지를 쓰네

(薇川 미천)

 

天涯此別豈前期 하늘 끝에서 이 이별 어찌 예전에 기약했으리

千里秦中只夢思 천리 밖 진중에서 다만 꿈속에 그리네

同學少年今日淚 동학하던 소년이 오늘 눈물짓는데

願將書報倚門時 원컨대 편지로 그리워하던 때를 알리리라

 

薊門霜落葉初飛 계문에 서리 떨어져 나뭇잎 처음 날리고

關路人稀書未歸 관새 길엔 사람 드물어 편지가 돌아오지 못하네

南望不禁遊子淚 남쪽 바라보며 나그네 눈물을 참지 못하는데

北來誰寄侍臣衣 북쪽에서 오는 누가 시신의 옷을 부치는가

愁中旅雁驚秋晩 근심 속에 길가는 기러기 저무는 가을에 놀라고

苦羨棲鴉帶夕暉 깃드는 까마귀 석양빛을 띠고 오는 것을 몹시 부러워하네

何意與君同此況 무슨 뜻으로 그대와 이 상황을 함께 하니

定敎隨處却相依 진정 가는 곳마다 도리어 서로 의존하게 하네

 

舊意元無逆 옛 뜻이 원래 거슬림이 없는데

玆行亦有緣 이 행차 역시 인연이 있네

殊方俱作客 이방에서 모두 나그네가 되어

同病更相憐 동병상련을 하네

得酒盃分半 술잔을 얻으면 반을 나누고

論心枕共連 마음 나누며 침석을 함께 나란히 하네

他時歸去後 훗날 돌가간 이후에

應詫子孫傳 마땅히 자손에게 자랑하여 전하리라

(玄溪 현계)

 

異域非鄕土 이역은 고향 땅이 아닌데

相逢是宿緣 상봉하니 이는 숙연이네

君强懷激然 그대의 강한 가슴 격렬하고

吾老足悲憐 나의 늙은 발은 슬프고 가련하네

刳服慚綿隱 찢어진 옷은 면으로 가린 것이 부끄럽고

辭榮憶魯連 벼슬 버림에 노련을 생각하네

秋來多少意 가을되어 다소의 뜻이 있는데

書斷向誰傳 편지 끊기니 누구에게 전하나

(辭榮用聯城事, 柳村: 사영은 연성사를 이용하였다. 유촌)

 

주석

1)辭榮(사영): 부귀영화의 생활을 도피함.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은거함.

2)魯連(노련): 노중련(魯仲連). 전국시대 정치가 겸 은사(隱士). 많은 고적을 쌓았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동해로 들어가 은거하였음.

3)聯城事(연성사): 연성(聯城)은 제(齊)나라 땅인데 연(燕)나라에게 점령당하자, 제나라 전단(田單)이 이를 수복하려고 하였으나 많은 희생자를 내고도 연성을 회복하지 못하였는데, 노중련이 연나라 장수에게 편지를 써서 스스로 자결하게 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전단은 연성을 점령할 수 있었음. 노중련은 이 일의 공적에 대한 포상을 거절하고 은거하였음.

 

醉後口占, 用前韻 <취한 후에 읊다. 전운을 사용하다>

何事非前定 어떤 일도 미리 정해짐이 없는데

今來且業緣 지금 온 것은 또한 오랜 인연이네

踈狂人共奕 소광를 사람들 모두 근심하는데

放浪子偏憐 방랑을 그대가 몹시 동정하네

酒薄愁難破 술은 박하여 근심을 풀기 어렵고

詩枯意未連 시는 매말라서 의미가 연결되지 못하네

莫將筒裏句 장차 통 속의 구절을 가지고

書向卷中傳 시권에다 써서 전하지 마시오

(柳村 유촌)

 

주석

1)踈狂(소광): 소탈하고 거리낌 없는 성품.

 

遠落三千里 삼 천 리 밖에 멀리 떨어져

都忘十二緣 열두 인연을 모두 잊었네

猥承僚友好 외람되게 동료의 우정을 받들고

偏荷丈夫憐 몹시 장부의 동정을 입었네

對酌蒲團並 부들 자리에서 함께 대작하고

趨筵步武連 연석에 나아감에 보무를 나란히 하네

願將今日事 바라건대 오늘의 일을

輸入畵圖傳 그림으로 그려서 전하고자 하네

 

莫笑無王卨 왕설이 없다고 웃지 마오

還憐有海明 해명이 있어서 도리어 사랑스럽네

(玄溪 현계)

誰知今日會 누가 금일의 모임을 알 건가

俱是故人情 모두가 고인의 정인데

排遣愁難解 수심을 풀기가 어렵네

(柳村 유촌)

沽來酒每盈 술을 사와서 매번 가득 채우네

(玄溪 현계)

唯須酩酊醉 다만 반드시 명정하게 취하리니

不必笑歸程 부디 돌아가는 길을 웃지 마오

(薇川 미천)

 

又押呼韻 <다시 호(呼)운을 압운하다>

斗酒非關醉 말술도 취할 수 없으니

深杯且莫停 깊은 술잔을 멈추지 마오

(柳村 유촌)

偏憐頭共白 머리가 모두들 흰 것이 몹시 가련하니

相對眼俱靑 서로 대하니 눈동자 모두 반가운 빛이네

客味衣全冷 나그네의 음식 의복이 모두 차갑고

天時葉已零 하늘의 때는 나뭇잎 이미 떨어졌네

(玄溪 현계)

中宵無限意 한밤중의 무한한 회포에

空望斗牛星 공연히 두우성만 바라보네

(薇川 미천)

 

醉後感懷, 前韻示諸公 <취한 후 감회가 있어서 전운으로 제공에게 보이다>

久纏瘴水疾 오랜 동안 장수병에 걸려서

腸如膏火煎 내장이 기름불에 타는 듯하네

賴有數君子 다행히 몇몇 군자가 있어서

一醉三日連 한 번 취함이 삼 일이나 이어지네

眞情醉中發 참된 정은 취중에 표현되니

此心無間然 이 마음 간격이 없는 듯하네

臣道豈有比 신도를 어찌 비할 수 있겠는가

君德宜無偏 군덕은 마땅히 치우침이 없네

還將九五福 도리어 구오복을 가지고

竊祝冥冥天 남몰래 명명한 하늘에 축원하네

(玄溪 현계)

 

渾忘旅味苦 여행길 음식 맛을 모두 잊고 괴로운데

唯伴茶茗煎 다만 차를 동반하여 끊이네

秋深雁鴻斷 가을 깊어 기러기 끊기고

磧塞霜雪連 자갈밭 변새엔 서리와 눈이 이어지네

世事一長吁 세상일 한 차례 길게 탄식하니

莫問然未然 그런가 그렇지 않는가를 묻지 마오

同懷報主誠 같은 회포는 임금에게 보답할 정성인데

所見期不偏 보는 바는 치우치지 않기를 기약하네

致言出肝膈 하는 말은 마음에서 나오니

寧負吾心天 어찌 내 마음의 하늘을 저버릴 것인가

(柳村 유촌)

 

夢得首句, 足步前韻, 呈柳村 <꿈속에서 수구(首句)을 얻고서 전운(前韻)을 밟아서 유촌에게 드리다>

野外群山擁 들 밖은 여러 산으로 둘러싸이고

江干細路緣 강가엔 작은 길들이 이어졌네

黃花但自好 황화는 다만 절로 고운데

綠竹更堪憐 녹죽은 더욱 사랑스럽네

客夢今宵到 나그네 꿈 오늘밤에 이르고

秋光故國連 가을빛은 고국에 이어졌네

鄕園無限興 향원에 대한 무한한 흥을

說向大人傳 대인에게 말하여 전하네

(玄溪 현계)

 

和 <화답하다>

遣悶詩無賴 수심 푸는데 시에도 의뢰하지 못한데

還家夢作緣 집에 돌아감은 꿈으로 인연을 맺네

花徑九日醉 꽃길에서 중구절에 취하니

人到異鄕憐 사람들 이역에 와서 가련하네

望入關雲斷 조망은 관새의 구름으로 들어가 끊어지고

寒從朔氣連 추위는 북쪽 기운을 좇아 이어지네

眞歸路不遠 참으로 돌아갈 길 멀지 않으니

佳句我先傳 가구로 내가 먼저 전하리라

(柳村 유촌)

 

追次 <추가로 차운하다>

絶漠羈留地 외딴 사막 나그네 머무는 땅인데

相逢似夙緣 상봉하니 이른 인연이 있는 듯하네

客懷良友托 나그네 회포는 좋은 벗에게 의탁하고

天眷病臣憐 하늘의 보살핌은 병든 신하를 동정하네

玉面嵇中散 옥 같은 얼굴은 혜중산 같고

淸詩謝惠連 맑은 시는 사혜련 같네

風塵咫尺望 풍진 속에 지척에서 바라보니

誰使寸心傳 누굴 시켜서 촌심을 전할 것인가

 

주석

1)嵇中散(혜중산): 죽림칠현 중 한 사람인 혜강(嵇康). 중산(中散)은 그의 자.

2)謝惠連(사혜련): 육조시대 진(晉)나라 시인.

 

撼屋風威壯 지붕 흔드는 바람의 위세가 장한데

思親鬢髮明 부모 생각에 귀밑머리 희어졌네

君言制作誡 그대 말을 제작하여 경계로 삼는데

吾病不禁情 내 병은 정을 금할 수 없네

閉戶人難問 문을 닫으니 사람들이 문안하기 어렵고

開眸淚自盈 눈을 뜨니 눈물이 절로 가득하네

關河千里杳 관하는 천 리나 아득하고

塵色曉前程 먼지 빛이 앞길에서 밝네

 

藥物新愁集 약물에 새 수심이 모이고

杯觴舊業停 술잔에 옛 사업이 정지되었네

月窺簷際白 달빛은 처마 끝을 엿보며 희고

燈伴案頭靑 등불은 책상머리에서 푸르네

涕淚君親隔 눈물 속에 군친과 떨어져 있고

風霜草木零 풍상 속에 초목이 영락하였네

天時與人事 천시와 인사로 인하여

黙坐鬢星星 묵묵히 앉아있자니 귀밑머리 성성하게 희어지네

 

獨坐萬念集 홀로 앉아 있으니 온갖 사념이 모이고

憂病苦相煎 근심과 병이 괴롭게 서로 괴롭히네

況君南土疾 하물며 그대는 남쪽 토질병에 걸렸는데

一家七喪連 일가에 일곱 상이 이어졌네

人理那有此 인생의 이치에 어찌 이 같음이 있는가

思之久慘然 이를 생각하니 오랫동안 참담하네

如我弟兄情 나에겐 형제의 정이 있는데

爲君憂愛偏 그대 위해 근심과 사랑이 편중되네

服食在吾身 의복과 음식은 내 몸에 달렸으니

脩短不由天 길고 짧음이 하늘에서 비롯되지 않네

(春坡 춘파)

 

次春坡韻 <춘파운에 차운하다>

風箏亂愁耳 풍쟁소리 귀에 요란한데

客夢還遽然 나그네 꿈이 도리어 분주하네

明月正如晝 밝은 달빛은 진정 대낮 같고

良宵長似年 좋은 밤은 길어서 한해와 같네

知心復有幾 마음 알아 줄 이 또한 몇이나 있던가

會面嗟無緣 만나서 대면할 인연이 없어 탄식하네

脉脉苦相憶 끊임없이 괴롭게 그리워하며

挑燈仍不眠 등불 밝히며 잠을 못 이루네

(玄溪 현계)

 

風日蕭蕭冷 바람 부는 날 소소하게 차갑고

沈吟坐憫然 침음하며 앉아서 근심하네

論懷六七友 회포 풀 육칠 명의 벗들

爲客二三年 나그네가 된 지 이삼 년이네

遲速元來散 더디고 신속하게 왔다가 흩어지나

追隨且是緣 서로 따르는 것 또한 인연이네

仍憐病學士 병든 학사를 동정하며

但對菊花眠 국화를 마주하고 잠을 자네

(春坡 춘파)

 

和柳村釀酒 <유촌의 양주에 화답하다>

肯效迾門下 기꺼이 닫힌 문 아래로 가는 것을 본받아

無妨醉甕間 술동이 사이에 취해 있어도 무방하리라

何時新釀熟 어느 때나 새 술이 익어서

紅暉上愁顔 붉은 빛을 근심스런 얼굴에 올려볼 건가

(迾門下用李宗諤迾酒事, 玄溪 열문하는 이종악의 열주사를 이용하였다. 현계)

 

甕中有造化 술동이 속에 조화가 있으니

爭動一宵間 다투는 움직임 한 밤 사이에 있네

未是長如渴 오랜 갈증은 아니지만

還憐潤苦顔 도리어 윤기 있는 괴로운 얼굴 가련하네

(柳村 유촌)

 

送菜, 示春坡 <채소를 보내줌에 춘파에게 보이다>

恩頒白菜又盈筐 은혜롭게 백채를 나눠주어 또 광주리에 가득하니

爲送君家意味長 그대 집에 보내준 것 의미가 기네

他日擁爐呼酒處 훗날 화로 끼고 술을 청하는 곳에서

嚼來方覺齒生香 씹어보면 바야흐로 이에서 향기가 남을 깨달으리라

(玄溪 현계)

 

次 <차운하다>

生菜靑靑滿一筐 생채가 푸릇푸릇 한 광주리에 가득하고

故人詩興此時長 고인의 시의 흥치가 이때에 기네

偏憐百草凋零後 모든 풀 시들어버린 후가 가련한데

獨帶天廚雨露香 홀로 궁중 부엌에서 비이슬의 향기를 띠고 있네

(春坡 춘파)

 

却愧傍人見淚痕 옆 사람이 눈물 흔적을 볼까 도리어 두려워서

獨歸深室暗銷魂 홀로 돌아와 깊은 방에서 몰래 수심을 삭이는데

長卿病後無來往 장경이 병든 후 왕래가 없어서

不怕街頭早閉門 길가에 일찍 문을 닫을까 두렵네

(玄溪 현계)

 

주석

1)長卿(장경):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 한(漢)나라의 사부가(辭賦家).

 

萬里長天月一痕 만 리의 긴 하늘에 달빛 한 흔적이 있고

山河難禁往來魂 산하는 왕래하는 혼을 막기 어렵네

城頭曉角驚寒枕 성 머리의 새벽 뿔피리소리가 찬 침석을 놀라게 하는데

孤館寥寥尙掩門 외로운 여관은 쓸쓸하게 아직 문이 닫혀 있네

(玄溪 현계)

 

此身窮苦獨何偏 이 몸의 궁고는 유독 어찌 편중되었나

異域羈留更可憐 이역에서 나그네로 머무니 더욱 가련하네

衣食囊無數十萬 의식낭 속에는 몇 십만 전도 없는데

家鄕路隔二三千 가향 가는 길은 이삼 천 리나 막혀 있네

死生關運寧論命 사생은 운에 달렸으니 어찌 목숨을 논할 건가

窮達由人莫問天 궁달은 사람에게 달렸으니 하늘에 물을 수 없네

笑盡向來浮世事 우습구나 이제까지의 부질없는 세상일이

曉窓明滅一燈懸 새벽 창가에 명멸하는 한 등불이 매달렸네

(玄溪 현계)

 

珍重書緘荷眷偏 진중한 서함으로 권애를 편중되게 받으니

客中相慰且相憐 나그네길에 서로 위로하고 서로 동정하네

吾生苦晩思三五 나의 생애 괴롭게 저물어 삼십 오 년을 생각하니

斗酒何妨醉十千 말술 수십 천에 취하는 것이 어찌 방해될 것인가

自是交遊到白首 이로부터 교유가 백발에 이르니

由來禍福視蒼天 화복의 유래는 푸른 하늘을 살피네

誰知夜夜孤臣淚 누가 밤마다 외로운 신하의 눈물을 알 건가

銀漢迢迢夢獨懸 은하수 아득한데 꿈이 홀로 매달렸네

(春坡 춘파)

 

孤枕長宵積淚痕 외로운 잠자리 긴 밤에 눈물흔적만 쌓이고

關河迢遞斷歸魂 관하는 아득하여 돌아가는 혼이 끊어지네

誰將箇裏千般恨 누가 그 속의 천 가지 한을 가지고

寫出哀辭奏九門 슬픈 말을 베껴내어 구중궁궐에 올린 건가

 

遼塞霜寒氣象偏 요새에 서리 차가운 기상이 가득하고

旅遊辛苦政堪憐 여행의 고생 진정 가련하네

重關有阻亭連百 중첩한 관문은 막혀 역참이 백이나 이어지고

弱水無津路幾千 약수엔 나루 없고 길이 몇 천 리이네

曉明未生留北地 새벽 빛 아직 생기지 않아 북쪽 땅에 머물어 있는데

夢魂獨解向東天 꿈속의 혼은 홀로 동쪽하늘을 향할 줄 아네

秋風久斷江山使 가을바람은 강산의 사신을 오래 동안 끊었고

分照唯看漢月懸 나눠진 빛에 다만 한나라 달이 매달린 것을 보네

(柳村 유촌)

 

次春坡韻 <춘파의 운에 차운하다>

病裏苦腸日幾回 병들어 아픈 창자 매일 몇 번이던가

壯心零落着寒灰 장한 마음 영락하여 차가운 재를 붙였네

秦關路阻行人斷 진관 길은 막혀 행인이 끊어지고

衡浦秋深旅雁哀 형포에 가을 깊어 나는 기러기 슬퍼하네

政憶往時重九節 진정 지난날의 중추절을 추억하며

共携請客上山臺 객을 불러 하께 손잡고 산의 대로 오르네

殊方此會猶難得 이방의 이 모임 오히려 얻기 어려우니

莫怪相逢勸酒盃 상봉하여 술잔 권하는 것 괴이 여기지 마오

(玄溪 현계)

 

關樹淸霜一雁迴 관새의 숲에 맑은 서리 내려 한 기러기 돌아오고

旅窓深坐只晝灰 여관 창가에 깊이 앉으니 낮이 잿빛이네

包胥痛哭秦庭遠 포서가 통곡하던 진정은 멀고

屈子離騷楚澤哀 굴자가 이소 읊던 초택이 슬프네

病裏恨添開篋詠 병에다 수심 더하니 상자 열어 읊조리니

天涯日落望鄕臺 하늘 끝에 해 지는 망향대가 있네

憐君萬里同爲客 그대 그리며 만 리 길에서 함께 나그네 되어

抛却長安舊酒盃 장안에서의 옛 술잔을 던져버렸네

(春坡 춘파)

 

주석

1)包胥(포서): 신포서(申包胥). 춘추시대 초(楚)나라 대부(大夫). 오(吳)나라가 초나라에 쳐들어오자 진(秦)나라 조정에 가서 7일 밤낮을 통곡하여 진나라가 초나라를 돕게 하였음.

2)秦庭(진정): 진나라 조정.

2)屈子(굴자): 굴원(屈原). 전국시대 초(楚)나라 대부로서 참소를 받고 쫓겨나 초택에서 <이소(離騷)>를 지어 자신의 충심을 노래하였음.

 

塵榻寥寥與夢回 먼지 낀 걸상에 쓸쓸하게 꿈과 함께 돌아와

坐來空栱小爐灰 앉아 있자니 공중 두공에 작은 재가 날리네

人間至痛無三樂 세상에서 지극한 고통에 삼락이 없는데

客裏新詩有七哀 나그네길의 새로운 시엔 칠애가 있네

萬里思歸頻倚柱 만리 밖에서 귀환을 생각하며 빈번히 기둥에 기대고

一秋多病倦登臺 한 가을에 병이 많아 게으르게 대에 오르네

風霜老盡潤明菊 풍상 속에 빛나는 국화 늙어서 다 시들었는데

不見墻頭過酒盃 담장머리엔 지나가는 술동이를 볼 수 없네

(玄溪 현계)

 

주석

1)三樂(삼락): 군자삼락(君子三樂). 『맹자』에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양친이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하고, 천하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는 것이라고 하였음.

2)七哀(칠애): 인생에서 7가지 슬픔. 통이애(痛而哀), 의이애(義而哀), 감이애(感而哀), 원이애(怨而哀), 이목문견이애(耳目聞見而哀), 구탄이애(口歎而哀), 비산이애(鼻酸而哀)를 말함.

 

長安南望幾時回 장안을 남쪽으로 바라보니 언제나 돌아갈까

歲暮羈懷若死灰 세모에 나그네 회포가 죽은 재와 같네

每憶門闌稱福祿 문 난간에서 복록을 기원하던 때를 매번 추억하니

不知人世有悲哀 인간세상에 비애가 있는 줄을 몰랐네

題詩欲醉千鍾酒 시 짓고 천 잔의 술로 취하려는데

乘興仍登百尺臺 흥을 타고 백 척의 대에 오르네

羽化倘能遊物表 우화등선하여 능히 세상 밖을 유람한다면

三山如塊五湖盃 삼신산은 흙덩이 같고 오호는 술잔 같으리

(春坡 춘파)

 

주석

1)羽化(우화): 우화등선(羽化登仙). 날개가 돋아서 신선이 되어 날아감.

2)三山(삼산): 삼신산(三神山). 전설 속의 신선이 산다는 세 개의 산.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말함.

 

咫尺寧無會面期 지척에서 어찌 만날 기약이 없는가

自說君病廢吟詩 스스로 말하길 그대의 병으로 시 읊기를 폐했다고 하네

爐頭剩有羔兒酒 화로 앞에 남은 고아주가 있으니

莫帕寒風捲地吹 찬바람이 땅을 말며 부는 것을 두려워 마오

(玄溪 현계)

 

주석

1)羔兒酒(고아주): 산서(山西)에서 생산되는 명주(名酒)의 이름.

 

尺牘憧憧似有期 척독이 끊임없이 기약이 있는 듯한데

善論詩法又刪詩 시법을 잘 논하고 또 시를 잘 선별하네

無端枯木春風起 무단히 마른나무에 봄바람이 일어나

盡向江郞筆底吹 모두 강랑의 붓 아래를 향하여 부네

(春坡 춘파)

 

주석

1)江郞筆(강랑필): 강엄(江淹)의 오색필(五色筆). 강엄은 남조 양(梁)나라의 시인인데 꿈속에서 어떤 사람에게 오색의 붓을 받아 문채가 준발하였다고 함.

 

次 <차운하다>

多病相踈若負期 병이 많아 서로 소홀하여 기약을 저버린 듯한데

未逢君面見君詩 그대 얼굴은 보지 못하고 그대 시를 보네

吟來却似開靑眼 읊어보니 도리어 청안을 여는 듯하니

盡日淸風低上吹 종일 맑은 바람이 아래위로 불어오네

(柳村 유촌)

 

呼韻

見月非鄕土 달을 보니 고향 땅이 아닌데

聞笳是塞聲 갈피리 소리 들으니 곧 변새의 소리이네

誰知羈旅客 누가 길가는 객을 알아서

愁向此中生 이 중의 생을 근심해 주겠는가?

 

月黑雁南去 달빛 어둡고 기러기 남쪽으로 가는데

江流猿夜聲 강물 흐르고 원숭이가 밤에 우네

孤燈坐無寐 외로운 등불 아래 앉아서 잠이 없는데

安得不愁生 어찌 근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玄溪)

 

度莫身無寄 사막을 지나니 몸을 기탁할 곳 없는데

逢秋雁有聲 가을을 만나니 기러기 소리가 있네

誰將一國計 누가 장차 한 나라의 계책을 가지고

都付此書生 모두 이 서생에게 맡기려나?

(柳村)

 

醉後, 使谷口把筆走次春坡韻 <취한 후 곡구에게 붓을 들게 하고 춘파의 운에 차운하다>

每日長歌今日歌 매일 장가를 부르고 오늘도 부르는데

一年三百半經過 일년 삼 백일이 반이나 지났네

寒燈欲滅吟偏苦 찬 등불은 꺼지려고 하고 읊조림은 고통스럽고

小醉初醒興不多 약간의 취기가 비로소 깨려하여 흥이 많지 않네

雲雨未能成短夢 비구름은 짧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尊罌唯願變長河 술동이가 다만 긴 강으로 변하기를 바라네

當時豈道今如許 당시에 어찌 지금을 말할 수 있었으랴

○○相思奈若何 서로의 그리움 그대를 어찌하나

 

久隔溫溫玉雪姿 오랫동안 온온한 옥설의 자태와 막히었지만

佳辰好會豈無期 명절의 좋은 모임 어찌 기약이 없겠는가

團圓莫道有來日 단원절에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마오

汨沒其如無去時 골몰한 것 그 어찌 과거엔 없었겠는가

從古人生都是夢 예로부터 인생이 모두 꿈과 같으니

卽今世事總堪悲 지금의 세상일도 모두 슬플 뿐이네

黃花爛漫身仍病 황화가 난만히 피었는데 몸에 병이 따르고

願把淸尊慰所思 바라건대 맑은 술잔 쥐고 심사를 위로하고 싶네

(玄溪 현계)

 

中宵高詠當悲歌 한밤중 소리 높은 읊조림에 슬픈 노래 마주하니

門外寥寥載酒過 문 밖엔 술을 싣고 지나감이 적고

篋裏淸詩請弟遠 상자 속 맑은 시는 아우에게 청하기가 멀고

秋來白髮病臣多 가을되어 백발의 병든 신하가 많네

初隨胡蝶身疑夢 처음엔 호랑나비를 따르니 몸이 꿈속에 있는 듯하고

又學蛟人淚作河 다시 교인을 배워서 눈물이 강이 되네

明友待看書慰我 밝은 친구를 기다려 글을 보며 나를 위로하고

問君眠食且如何 그대에게 잠과 음식이 어떠한지 물어보네

 

風塵潦倒棟梁姿 풍진 속에 요도한 동량의 자태

末路知音是子期 말로의 지음은 종자기이네

持病喜看詩上語 병을 지니고 기쁘게 시어를 보는데

扣門聲似洛中時 문 두드리는 소리 낙중에서와 같네

支頤欲作終朝睡 턱 괴이고 아침 내내 자려는데

吹角如何向曉悲 부는 뿔피리 어찌하여 새벽 향해 슬픈가

賴有年少新酒熟 다행히 젊은이의 새 술이 익어서

菊花盆下若爲思 국화 화분 아래 그리움을 이루네

 

주석

1)潦倒(요도): 쇠로(衰老).

2)鍾子期(종자기): 전국시대 금(琴)의 명인 백아(伯牙)의 친구. 백아의 금곡을 잘 이해하였는데, 종자기가 병들어 죽자 백아는 금의 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함. 후에 자신를 잘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고 하였음.

 

醉後聯句 <취한 후에 구를 잇다>

莫厭深深坐 깊고 깊은 곳에 앉는 것을 꺼리지 말고

唯須淺淺斟 다만 반드시 얕게 얕게 따르구려

都將千里恨 모두 천 리 밖의 한으로써

相對五人心 상대한 다섯 사람의 마음이네

(春坡 춘파)

 

未效秦庭哭 진나라 조정에서의 통곡을 본받지 못하고

空爲越地吟 공연히 월 땅에서 읊조리네

醉中無限意 취중에 무한한 뜻이 있으니

誰奏雍門琴 누가 옹문의 금을 연주해 주리오?

(薇川 미천)

 

주석

1)秦庭哭(진정곡): 조국 초(楚)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진나라 조정에서 7일 밤낮을 끊임없었던 신포서(申包胥)의 통곡.

2)雍門琴(옹문금): 옹문자주(雍門子周)의 금(琴). 옹문자주는 전국시대 금의 명인. 또한 시국을 통찰하는 견식이 있어서 맹상군(孟嘗君)을 깨우쳐 주었음.

 

昨醉仍成病 어제의 취함이 병이 되었으니

今盃莫滿斟 오늘의 술잔은 가득 따르지 마오

不辭連日飮 연일의 음주를 사양하지 않음은

難負故人心 고인의 마음을 저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네

舊興還無減 옛 흥이 도리어 줄지 않았는데

新詩且欲吟 새 시를 또 읊으려 하네

何時五湖上 어느 때나 오호 위에서

彈盡廣陵琴 광릉금을 연주할 거나

(玄溪 현계)

 

주석

1)廣陵琴(광릉금): 광릉산(廣陵散)을 연주하는 혜강(嵇康)의 금(琴).

 

○興騎驢講院來 흥이 나서 나귀 타고 강원에 오니

客中懷抱向誰開 나그네 길 회포를 누구에게 열 건가

君看○事本如許 그대는 보구려 세상일이 본래 어떠한지를

樂一會來悲一回 즐거움이 한 차례 오면 슬픔이 한 차례 온다네

(春坡 춘파)

 

和 <화답하다>

萬里關河秋色來 만리의 관하에 가을빛이 오니

淸尊聊爲故人開 맑은 술동이를 애오라지 고인을 위하여 여네

却愁門掩君歸後 도리어 문 닫고 그대 돌아간 후를 근심하니

一寸柔腸又九回 일촌의 무른 창자가 또 아홉 번 뒤틀리네

(玄溪 현계)

 

追附次韻 <추가로 차운을 덧붙이다>

光陰忽忽電飛迴 세월이 홀홀 번개 난 듯 돌아오고

秋管吹殘季月灰 가을피리 남은 소리는 마지막 달의 재 속에 있어

萬里飄零多苦恨 만리 길에 날려 떨어져 괴로운 한이 많으니

百年遲暮足悲哀 백년 인생 말년에 비애가 풍족하네

心隨逝水同朝海 마음은 흘러가는 물을 따라 아침 바다를 함께 하고

望斷還鄕不上臺 조망은 환향 길에 끊어져 대에 오르지 못하네

黃葉共傷新白髮 누런 잎에 함께 상심하니 백발이 새롭고

綠尊無賴動深盃 푸른 술동이에 의존할 수 없는데 깊은 잔을 들이키네

 

詩澁難成律 시는 생삽하여 율을 이루기 어렵고

盃催不待斟 술잔은 재촉하여 따르는 걸 기다리지 않네

看君五字句 그대의 오언시를 보니

寫我九秋心 나의 구추의 마음을 베껴놓았네

老覺淹中苦 늙어서 체류하는 고통을 깨달으니

愁添夜半吟 수심이 한 밤중의 읊조림에 더해지네

却將知己淚 도리어 지기의 눈물을 가지고

洒向白牙琴 백아의 금을 씻으리라

 

未必從遊憚去來 종유함에 오고감을 꺼질 필요가 없으니

深盃淺酌此懷開 깊은 잔에 얕게 따름에도 이 회포를 열 수 있네

羈愁付書南飛雁 나그네 시름은 남으로 날아가는 기러기에게 편지 부치고

秋後音書不待迴 가을 후 답장 서신이 돌아오길 기대하질 않네

(柳村 후촌)

 

次春坡 <춘파에게 차운하다>

名家莫出隴西人 명가라도 농서 사람을 뛰어넘지 못하니

餘事文章意轉新 여사의 문장이 의미가 더욱 새롭네

一斗百篇驚滿席 한 말 술에 백 편을 지어서 온 좌석을 놀라게 하니

靑蓮居士是前身 청련거사가 곧 전신이었네

(玄溪 현계)

 

주석

1)隴西人(농서인): 당나라 이백(李白)을 말함. 농서 출신임.

2)靑蓮居士(청련거사): 당나라 이백(李白)의 호.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家)>에 “이백은 한 말 술을 마시면 시를 백 편 짓는다(李白一斗詩百篇)”라고 하였음.

 

相看俱是洛陽人 서로 보니 모두가 낙양 사람들인데

世事悲歡醉更新 세상일 슬픔과 기쁨이 술 취하니 더욱 새롭네

歸臥不知千里外 돌아와 누워서 천리 밖임을 알지 못하는데

角聲驚起夢中身 뿔피리 소리가 꿈속의 몸을 놀라 일으키네

 

豪氣由來我輩人 호기로운 우리 무리들

況兼詩格更淸新 더구나 시격이 더욱 청신하네

黃昏漸近相思苦 황혼이 점차 가까워지니 그리움에 괴로운데

咫尺猶分兩地身 지척에서 오히려 양쪽의 몸으로 나눠있네

(春坡 춘파)

 

○水誰悲失路人 누가 길 잃은 사람을 슬퍼하는가

一年羈思九秋新 일 년의 나그네 수심 속에 구추가 새롭네

多懷○是窓前菊 회포 많은 창가의 국화

寂寞殘香似病身 적막한 남은 향기는 병든 몸과 같네

(玄溪 현계)

 

同是天涯去國人 함께 하늘 끝에서 고국 떠나온 사람들인데

暮城吹角病懷新 저무는 성의 뿔피리 소리에 병든 회포가 새롭네

仍憐學士吟詩處 학사가 시 읊는 곳을 사랑하는데

咫尺何由致我身 지척에서 어떻게 이 몸을 가져갈 수 있는가

(春坡 춘파)

 

聞白軒入東館 <백헌이 동관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忽報芳塵近 문득 향기로운 먼지가 가깝다는 소식을 전하니

還憐行役疲 도리어 행역의 고달픔을 동정하네

如何相步地 어찌하여 서로 걷던 곳이

又隔一宵期 또한 한 밤의 기약이 막히었네

雁去來書少 기러기 떠나서 오는 편지가 적고

鶴鳴出客遲 학이 우니 떠나는 나그네가 지체하네

箇中無限意 그 가운데 무한한 뜻이 있으니

非獨爲君私 그대를 위한 사랑뿐만이 아니네

(玄溪 현계)

 

和<화답하다>

改屬難危際 위난의 시기에 속하니

寧辭道路疲 어찌 여행의 고달픔을 사양하랴

相思不得見 서로 그리며 볼 수 없는데

何日是前期 언제나 이전의 기약을 이루나

遼塞生寒早 요새엔 한기 일어남이 이르고

秦關報曉遲 진관엔 새벽 알림이 더디네

南冠對孤影 남관 쓰고 외로운 그림자 마주하니

雪涕愧鴻私 눈물 씻으며 큰사랑이 부끄럽네

(白軒 백헌)

次洛州灣上作 <낙주의 만상에서의 작품에 차운하다>

爲問南飛雁 물어보자 남으로 나는 기러기야

如何中夜征 어찌하여 한밤중에 길을 떠나는가

故鄕何處是 고향은 어느 곳인가

華髮此時生 흰머리가 이때에 돋아나네

悚懼吾家禍 송구한 우리 집의 화난을

淹忽異域憶 문득 이역의 추억하네

風塵鴨水上 풍진 속 압수 가에서

回首望說卿 고개 돌려 그대를 바라보며 말하네

(玄溪 현계)

 

王事風塵際 나랏일이 풍진 속에 있는데

深秋賦遠征 깊은 가을에 원정가를 부르네

難危唯有死 위난 속에 다만 죽음이 있을 뿐이니

喪禍欲無生 상을 당하여 살고 싶지 않네

絶塞三年別 외딴 변새에서 삼 년의 이별

孤燈半夜憶 외로운 등불 아래 한밤중에 추억하네

隔江東館信 강 건너에 동관의 소식 있으니

揮涕問蘇卿 눈물 훔치며 소경에게 물어보네

(洛州 낙주)

 

주석

1)洛州(낙주): 구봉서(具鳳瑞: 1597(선조 30)-1644(인조 22))의 호. 자는 경휘(景輝), 본관은 능성(綾城). 이조정랑 변(忭)의 증손, 계(棨)의 아들. 권필(權韠)에게서 시를 배웠고, 1617년 생원시를 거쳐 1624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였음. 참의, 승지를 거쳐 전라도관찰사를 지냄. 병자호란 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음. 시호는 경헌(景憲).

 

錄呈賓客 <기록하여 빈객에게 드리다>

爲問西原老 물어보자 서원의 노인이여

如何不把盃 어찌하여 술잔을 들지 않는지

公心在將攝 공의 마음은 조섭함에 있지만

吾恐病還來 나는 병이 다시 올까 두렵다오

(輔德 보덕)

 

○域風霜裏 이역의 풍상 속에

休停舊酒盃 옛 술잔을 멈추지 마오

忘憂興發○ 근심 잊고 흥이 나는 것은

都自醉中來 모두 취중에서 온다오

(文學 문학)

 

次補德鳳城三五七言 賓客 <보덕의 봉성 삼오칠언 시에 차운하다> 빈객

去渡河 강을 건너려고 떠나가서

未渡河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하였네

鳳城八渡河 봉성의 팔도하

鶴野三流河 학야의 삼류하

今朝又過太子河 오늘 아침 또 태자하를 지나와서

回首龍灣誰渡河 머리 돌려 용만을 바라보니 누가 강을 건너고 있는가

 

주석

1)봉성(鳳城): 봉황성(鳳凰城).

2)八渡河(팔도하): 팔도수(八渡水). 섬서성 약양현(略陽縣) 동쪽에 있는 물 이름.

 

甕北河 옹북하

遼陽河 요동하

去時徒步河 갈 때는 도보로 강을 건넜었는데

來時氷渡河 올 때는 얼음 위로 강을 건너네

過盡三流八渡河 삼류하와 팔도하를 모두 지나왔는데

今渡沙河明混河 지금 사하와 명혼하를 건너가네

 

投璧河 투벽하

流澌河 유시하

艱難阨於河 강에서 간난으로 곤궁에 처했는데

大業基於河 강에서 대업의 기틀을 세웠네

嗟我君臣爲底事 아 우리 군신들은 무슨 일로

虐雪層氷空渡河 모진 눈발과 두터운 얼음 위로 공연히 강을 건너가는가

 

久客添衰謝 오랜 나그네길에 쇠락함을 더하고

天寒未擧杯 날 차가운데 술잔을 못 드네

偏憐同病頻 동병을 몹시 동정하는 것이 빈번하여

寄五言來 오언시를 부쳐왔네

 

閑中一噱 <한가한 가운데 한 차례 웃다>

强作元三日 억지로 원삼일을 이루니

休辭進一盃 한잔 술 올리는 것 사양하지 마오

雖然亦多感 비록 그러하나 또한 감개가 많으니

苦盡又甘來 고생이 다하면 좋은 일이 온다오

(玄溪侍生 현계시생)

 

次 <차운하다>

已抆吟詩舌 이미 시 읊은 혀를 닦았는데

仍踈斟酒杯 술잔 따르는 것 소홀하네

悲從詩上起 슬픔은 시에서 일어나고

病自酒中來 병은 술 취함에서 온다오

(賓客 빈객)

 

悅目嬌娥黛 아리따운 여인의 화장에 눈이 즐겁고

醺心亞面杯 아자 문양의 술잔에 마음이 훈훈히 취하네

衰遲盡外物 쇠락하여 외물을 다 물리치고

願作一如來 원컨대 한 여래가 되고 싶네

(賓客 빈객)

 

鶴駕將隨獵行, 臣以老病, 落留不侍, 區區之懷, 敢進短律. 且寓虞箴之意 <세자의 학가가 장차 수렵행차를 따르려는데, 신하가 노병 때문에 떨어져 머물며 모시지 못하고, 구구한 회포를 감히 짧은 율시로 올리고 또한 근심하는 잠계의 뜻을 부치었다>

乘堂憂恤大朝懷 당에 올라 조정을 걱정하는 감회가 있는데

況此窮各有狩行 하물며 이런 궁벽한 처지에 수렵행차가 있네

積雪陰山經贔屭 눈 쌓인 음산을 힘겹게 지나고

層氷峻坂度崢嶸 층을 이룬 얼음의 높은 언덕을 높게 지나가네

神明森衛應無咎 신명이 삼엄하게 호위하여 마땅히 허물이 없을 것이나

巖阻交馳豈○輕 바위로 막힌 내달림 어찌 경솔히 하랴

衰病主能陪執靮 쇠약한 병으로 모시고 고삐 잡음을 주관하지 못하고

淸塵瞻拜涕縱橫 맑은 먼지 바라보고 절하며 눈물 종횡으로 흘리네

(壬午潤十一月 日 賓客臣韓敬進 임오(1642)년 윤십일월 빈객 한모가 삼가 올리다.)

 

次 <차운하다>

君臣異域未歸懷 군신이 이역에서 돌아가지 못한 회포 있는데

鶴駕如何又此行 학가는 어찌하여 또 이런 행차가 있는가?

遼海層氷方慘裂 요동 바다 층을 이룬 얼음이 바야흐로 참담히 깨지고

陰山積雪定崢嶸 음산에 쌓인 눈 진정 드높으네

回轅無計顔猶厚 수레 돌릴 계책도 없는데 얼굴은 오히려 두터우니

執靮乖心死且輕 고삐 잡고 어그러진 마음 죽음조차 가볍네

病裏不堪瞻望遠 병들어 감히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任敎雙涕滿襟橫 두 줄기 눈물만 옷깃 가득히 흘리네

 

飄泊天涯作短蓬 하늘 끝에 떠돌며 날리는 쑥대 되었는데

殊方物色歲時窮 이역의 물색 세시가 궁벽하네

凝嚴慘慘飛霜氣 굳게 엉겨 참참히 서리 기운 날고

朔雪蕭蕭送海風 삭방의 눈발은 소소히 바다 바람을 보내네

駱酒飮來還不醉 낙주를 마셔도 오히려 취하지 못하고

狐裘着處却無切 여우 갖옷 입은 곳 도리어 애절하지 못하네

掩門孤館形將影 문 닫은 외로운 관사 형용이 그림자 지는데

衰病如今一老翁 쇠약한 병에 걸린 지금 한 늙은이가 있네

(司書 사서)

 

次呈 <차운하여 올리다>

殊方歲暮雪花飛 이방의 세모에 눈발이 날리고

白首羈臣苦憶歸 백발의 떠도는 신하는 귀환을 몹시 생각하네

千里故山長入夢 천리의 고향 산이 오랫동안 꿈속으로 들어와서

兩行哀淚幾沾衣 두 줄기 슬픈 눈물 몇 번이나 옷을 적시었나

陰雲慘慘圍荒野 어두운 구름은 참담하게 황야를 에워싸고

寒日亭亭送落暉 찬 해는 정정하게 지는 햇살 보내네

賴有連床知己在 다행히 침상을 나란히 한 지기가 있어서

肺肝傾處喜相依 마음을 털어놓는 곳에서 서로 의지하네

 

幾洒思鄕淚 몇 번이나 고향생각의 눈물을 뿌렸던가

長懷去國憂 오랜 동안 나라 떠나온 근심을 품었네

有時驚蝶夢 때때로 호랑나비 꿈에 놀라고

無計變烏頭 계책 없어 검은머리 변하였네

分義須當盡 분수과 의리를 마땅히 다 하고

衰遲說可休 말년에 쉴 것을 말하리라

歸田他日約 전원으로 돌아간다는 훗날의 약속

攜手與公遊 손잡고 그대와 함께 놀리라

 

役役成何事 부지런히 무슨 일을 이루는가

衰年四十强 쇠한 나이 사십이 넘었네

衣冠非屬目 의관은 살필 수도 없고

鬢髮是新霜 빈발엔 새 서리가 내렸네

望裏山河隔 조망 속의 산하가 막히었고

愁邊歲月長 근심 속에 세월이 기네

何當返丘壑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永負酒爲鄕 술을 고향으로 삼는 것을 영원히 저버릴 건가

 

重門深鎖夜如年 중첩한 문 깊게 닫히고 밤이 일년 같은데

耿耿孤燈照不眠 가물가물 외로운 등불 아래 잠 못 이루네

主辱如今身未死 군주가 욕을 당한 오늘 몸이 죽지 못하고

多慙極食水衡錢 몹시 수형전을 먹어치운 것 부끄럽네

(文學 문학)

 

주석

1)水衡錢(수형전): 한(漢)나라 때 황실에서 사장(私藏)했던 전(錢).

 

次退軒韻 <퇴헌의 운에 차운하다>

殊方同作客 이방에서 함께 나그네가 되어

相對萬端憂 서로 마주하니 만 가지 근심이 이네

末路誰哀眼 말로에 누가 슬프게 보는가

刻懷到白髮 새긴 회포 백발에 이르렀네

浮名都夢幻 헛된 명성 모두 환몽이고

身世合歸休 신세가 모두 헛되었네

他日田園計 훗날 전원으로 돌아갈 계책

知心馬少游 마음 알아주는 마소유이네

 

주석

1)馬少游(마소유): 후한 마원(馬援)의 아우. 청빈한 생활을 추구하였음.

 

客裏元多感 여행길엔 원래 감개가 많은데

羈愁入夜强 나그네 시름이 밤이 되어 더 강해지네

殘生催老病 남은 생애 늙은 병을 재촉하는데

短褐劫風露 짧은 갈옷에 바람 이슬이 겁나네

故國音書斷 고국의 소식이 끊기고

殊方峯月長 이방에서 산봉우리 달빛만 기네

關河千萬里 관하 천만 리 밖에서

何處是吾鄕 어느 곳이 내 고향이던가

晩朝飯後, 口占 <늦은 조반 후에 읊다>

零落空廚未擧火 영락한 빈 부엌에선 불을 피지 않고

終朝無活對床眠 아침 내내 활기 없이 상을 마주하고 잠자네

晩來糜糲猶甘口 저녁이 되어 현미 죽이 오히려 입에 단데

却笑何曾食萬錢 도리어 우습구나 어찌 일찍이 만전을 먹어치웠던가

 

次玄溪韻, 呈退軒案下 <현계의 운에 차운하여 퇴헌의 안하에 올리다>

矯首天涯欲奮飛 하늘 끝에서 고개 들고 힘차게 날려하는데

君臣愛重未言歸 군신들 애중하여 귀환을 말하지 못하네

羈魂黯黯迷關路 나그네 혼은 암암하게 관새 길을 헤매고

瘦骨稜稜攬弊衣 수척한 뼈는 울퉁불퉁 낡은 옷을 걷어올리네

峯暮凍雲多雪意 산봉우리 저물어 얼어붙은 구름은 눈 기운이 많고

塞垣寒日少효暉 새원의 찬 해는 새벽빛이 적네

殊方景物非吾土 이방의 경물이 나의 향토가 아닌데

隻影如今底處依 외로운 그림자가 지금 아래에 의지하네

(司書 사서)

 

奉呈退軒案下 <삼가 퇴헌의 안하에 올리다>

末路看交態 말로의 교유의 모습을 보면

紛紛逐勢移 분분하게 세력을 좇아 옮겨가는데

知君一片意 그대의 한 조각 마음을 아니

可托百年期 백년의 기약을 맡길 만하네

盡亂同死生 난리 다하도록 생사를 함께 하고

規箴是切偲 규잠이 절실하고 굳건하네

東還他日約 동쪽으로 돌아가서 훗날의 기약은

終老水雲涯 수운 가에서 생을 마치는 것이네

鼓報重城曉 북소리가 중성의 새벽을 알리는데

車聞萬輛回 수레 소리 만 량이 돌아오네

轟轟掀地軸 굉굉하게 지축을 흔들고

隱隱響天雷 은은하게 천둥소리가 울리네

辭說紛難測 어지러운 말 분분하여 예측하기 어렵고

塵沙拔不開 모래먼지는 뽑아서 시야를 열 수가 없네

掩門無語坐 문 닫고 말없이 앉아 있으니

心事等寒灰 심사가 차가운 재와 같네

 

坎止流行是自然 험난을 만나면 멈추고 흐름을 타면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此身無處不爲天 이 몸이 하늘로 삼지 못할 곳이 없네

殊方莫道艱危甚 이방에서 고생이 심하다고 말하지 마오

所持君親分義全 지닌 뜻은 군친에 대한 분수와 의리를 지킴이네

(司書 사서)

 

遣悶呈薇兄求和 <시름을 풀려고 미천형에게 올려서 화답을 구함>

○如日三月 하루가 삼 개월만 같은데

孤臣自百憂 외로운 신하는 백 가지 근심이 이네

鄕心萬里外 고향생각을 만리 밖에서 하는데

世事十分頭 세상일 몹시 머리맡에 있네

流急退宜勇 흐름이 급하면 물러나는 것이 마땅한 용기이니

夜深行可休 밤이 깊으니 행차를 쉬어야 하리

東歸雲水地 동쪽으로 돌아가 운수의 땅에서

從子共優遊 그대 좇아 함께 즐겁게 노닐리라

(退軒 퇴헌)

 

敬次奉呈薇川安下 <삼가 차운하여 미천의 안하에 받들어 올리다>

旅泊殊方類轉蓬 떠돌며 이방에 머무니 나부끼는 쑥과 같고

幾迴孤館泣逢窮 몇 번이나 외로운 여관에서 울며 궁벽하였던가

魂迷鴨水漫天雪 혼이 헤매는 압수엔 하늘 가득히 눈발 날리고

腸斷龍沙捲地風 애끊는 용사엔 땅을 말며 바람이 부네

望眼欲穿盡不達 바라보는 시선이 뚫어보려 하나 모두 다다르지 못하고

羈愁來逼酒無功 나그네 시름 끼쳐와서 술도 효력이 없네

何時得遂歸田計 어느 때나 전원으로 돌아갈 계책을 이루어서

閑臥苔磯作釣翁 한가히 이끼 낀 낚시터에 누워 낚시하는 늙은이가 되어볼까

 

驚沙獵獵振枯蓬 날리는 모래는 어지럽게 마른 쑥대를 흔들고

又覺殊方峯月窮 또 이방에서 산봉우리 달빛이 다함을 깨닫네

羈恨不堪催短景 나그네의 한은 짧은 해를 재촉함을 견딜 수 없는데

雄心無計借長風 웅대한 마음은 장풍을 빌릴 계책이 없네

靑袍朝士貪身命 청포 입은 조정의 선비는 신명만 탐하는데

白馬將軍上首功 백마 탄 장군은 일등 공을 올리네

却笑來時强壯我 도리어 우습구나 지금까지 강장한 내가

如今已是一衰翁 오늘은 이미 한 쇠약한 늙은이일세

(文學 문학)

 

夜坐述懷求和 <밤에 앉아서 회포를 써서 화답을 구하다>

獨夜坐無睡 외로운 밤 앉아서 밤이 없는데

衝窓風力强 창을 치는 바람의 힘이 강하고

殘燈明復暗 잔등은 밝았다가 다시 어두워지네

寒被雪兼霜 추위는 눈과 서리를 맞고

心折永湯動 마음은 꺾여져 오래 요동치네

悲隨一線長 슬픔은 한 가닥으로 기네

太平何日是 태평한 날은 언제인가

歸臥水雲鄕 수운향에 돌아가 누우리라

(文學 문학)

 

次尙輔韻(二師字) <상보의 운에 차운하다>(세자이사의 자이다)

羈孤異域同襟袍 나그네 외로움 이역에서 금포를 함께 하니

非是人間付有無 인간 세상에 부칠 바가 아니네

深夜酒醒愁寂寂 깊은 밤 술 깨어 근심만 적적한데

此時情問與詩俱 이 때 정답게 시를 함께 할 것을 묻네

 

주석

1)襟袍(금포): 품은 생각.

 

次韻寄二師 柳村 <차운하여 이사에게 부치다> 유촌

西風南雁影隨陽 서풍 속 남쪽 기러기의 그림자 태양을 따라가고

何事奄忽寄異鄕 무슨 일로 문득 이향에서 머무는가

當歲未死陪講幄 당세에 죽지 못하고 강악을 모시니

窮愁無賴動飛觴 깊은 시름 의뢰할 것 없어 곧 술잔을 날리네

孤樓○思三秋切 외로운 누대에서 그리움 삼추에 절실한데

鶴野歸心一夢凉 학야에서 귀향 생각 한 꿈속에 처량하네

揮淚○天天不語 눈물 훔치며 하늘에게 물으나 하늘은 말이 없고

蒼蒼深意有難詳 창창한 깊은 뜻 상세하기 어렵네

 

주석

1)講幄(강악): 강의하는 자리.

 

追次練光亭呈韻 <추가로 연광정정운에 차운하다>

○上層城城上樓 층성의 성 위의 누대

樓前百丈練光浮 누대 앞에 백 길 높이 비단 빛이 떠 있네

雲容靄日媚升旭 구름에 가린 해는 떠올라 아름답고

雨意返潮催渡舟 비 기운 도는 조수는 건너는 배를 재촉하네

列峀羣峯來作屛 늘어선 산봉우리들이 와서 병풍이 되었고

長林廣野繞成湖 긴 숲과 넓은 들이 둘러서 호수를 이루었네

山河自是夢華地 산하가 절로 꿈속의 화지인데

何事登臨却抱愁 무슨 일로 올라와서 도리어 수심을 품는가

 

주석

1)練光亭(연광정): 평안도 평양의 대동강 가 덕암(德巖) 위에 있는 누대 이름.

 

復次前韻 <다시 전운에 차운하다>

節屬中秋尙亢陽 절기는 중추에 속하는데 오히려 양기 극성하여

殊方氣候異吾鄕 이방의 기후가 나의 고향과 다르네

枯形若木須良葉 깡마른 모습은 나무 같고 수염은 이파리 같은데

渴口如燋索巨觴 갈증난 입이 타는 듯하여 큰 술잔을 찾네

醉後壯懷歌激然 취한 후에 장한 회포 노래가 격렬하고

醒來孤枕覺凄凉 술 깨니 외로운 잠자리 처량함을 깨닫네

擎天抱日平生志 하늘 떠받들고 해를 낄 평생의 뜻을

未必逢人說到詳 사람 만나 자세히 말할 필요 없으리라

 

주석

1)亢陽(항양): 극성(極盛)한 양기(陽氣).

 

白頭新沐曝秋陽 백발머리 새로 감고 가을볕을 쬐는데

懶拂塵冠却望鄕 게으르게 먼지 낀 모자를 털고 다시 고향을 바라보네

音信久踈驚雁信 소식이 오래 소홀하여 기러기 편지에 놀라고

盃觴已遠怯蛇觴 술잔은 이미 멀리하여 뱀 그림자 비추는 술잔이 겁나고

千峯孤日雙眸冷 천 봉우리 외로운 해는 두 눈동자 속에 차갑고

獨飯殘燈隻影凉 등불 아래 혼자의 식사에 외 그림자 처량하네

莫問世間勞苦事 세간의 고생의 일을 묻지 마오

古來天道未曾詳 예로부터 천도는 상세한 적이 없다오

 

주석

1)蛇觴(사상): 뱀 그림자가 어른대는 술잔. 사영배궁(蛇影杯弓)의 고사를 취한 것임. 벽에 걸린 활의 그림자가 술잔에 비추어 뱀으로 착각하고 복통을 일으켰다는 두선(杜宣)의 고사.

 

海內干戈自壬辰 해내의 전쟁은 임진년에서 비롯되었는데

吾東禍機幾酸辛 우리 동쪽의 재앙에 몇 번이나 고생하였던가

當年半作乘桴擄 당년에 반은 뗏목 탄 포로가 되었는데

今日渾成度溟人 금일은 온통 명부를 지나는 사람이 되었네

鶴馭未旋忽險阻 학어는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문득 험하게 막히니

鵷班寧憚在泥塵 원반이 어찌 진탕 속에 있음을 꺼리겠는가

難危羽翼非商晧 난위를 보좌함에 상산사호가 아닌데

備數冑筵浪過春 주연에 숫자를 채워 마음껏 봄을 보내네

 

주석

1)鶴馭(학어): 왕세자의 수레.

2)鵷班(원반): 조정의 반열.

3)羽翼(우익): 보좌함.

4)商皓(상호): 상산사호(商山四皓). 진(秦)나라 때 나리를 피해 상산(商山)에 은거하였던 4명의 늙은이.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 기이계(綺里季)을 말함. 이들은 후에 한고조가 태자를 폐하려하자 조정으로 와서 태자를 보호하였음.

5)冑筵(주연): 세자를 모시고 강론하는 자리.

 

自歎生逢難離辰 살아 상봉하여 이별하기 어려운 날을 스스로 한탄하니

備嘗燥濕如甘辛 마르고 젖고 달고 쓴맛을 실컷 맛보았네

包圍共脫籠中鳥 둥글게 앉아 함께 새장을 벗어난 새들이라 말하며

絶漠同悲磧裏人 외딴 사막의 자갈 길 속의 사람임을 슬퍼하네

淍汥詎堪容淺學 물줄기 돌림에 어찌 천학을 용납하겠는가

周旋猶可逐淸塵 주선함에 오히려 맑은 먼지를 좇을 수 있네

他時故國從遊處 훗날 고국의 종유하는 곳에서

座上開尊別看春 좌석에 술동이 열고 특별히 봄을 보리라

 

和 <화답하다>

○○邊秋近授衣 변방의 가을 수의달에 가까운데

異鄕羈思覺支離 이향의 나그네 시름 지리멸렬함을 깨닫네

歸人可○無愁苦 돌아가는 사람은 수심이 없는데

應有面顔淚洒時 마땅히 얼굴에 눈물 씻을 때이리

 

遼塞高風已報秋 요동 변방의 높은 바람 이미 가을을 알리고

歸心日夜海東流 귀향의 마음 밤낮으로 바다 동쪽으로 흘러가네

君行莫說北邊信 그대의 행차 북쪽 변방의 소식을 말하지 마오

恐惹家人一倍愁 집사람들 한 배나 더 근심일까 두렵다오

 

又次前韻 <다시 전운에 차운하다>

三板七國憶晉陽 삼판 남은 성벽 칠국의 진양을 생각하고

解棼今日又他鄕 분란 풀린 오늘 또 타향이네

夷言未慣揮雙手 오랑캐 말은 익숙하지 않아 두 손을 휘젓고

虜酒無算倒幾觴 오랑캐 술은 계산 없이 몇 잔을 들이키네

北望猶來驚歲月 북쪽 바라보며 오는 세월에 놀라고

東還何日問溫凉 동쪽으로 돌아가 언제나 안부를 물을 건가

秋風見路盲車計 가을바람 속 길을 보며 수레 계책 어둡고

城下同盟孰證詳 성 아래의 동맹을 누가 상세히 증명할 건가

 

주석

1)三板(삼판): 판(板)은 고대 성벽을 쌓을 때 사용하는 판자로서 삼판은 육척(六尺)임.

전국시대 지백(智伯)이 한(韓)나라, 위(魏)나라를 거느리고 조(趙)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진양(晉陽)를 포위하고 물로 공격을 하였는데, 침수되지 않은 성벽이 삼판 남아있었다고 함.

2)解棼(해부): 해분(解紛). 분란이 풀림.

 

次二師苦秋炎韻 <이사의 고추염운에 차운하다>

蓐收斂手朱明虐 자리 걷고 손 여미니 여름날이 고역인데

時序成功竟孰能 시서의 성공은 결국 누가 이루는가

流火爍金身去葛 흐르는 열기 쇠를 녹일 듯하여 몸에서 갈옷을 벗고

餘炎釀鬱劍揮蠅 남은 열기 무더워서 검을 파리에게 휘두르네

舊中遼左霜成早 옛날엔 요좌에 서리가 이르다는데

今見陰方冷氣仍 지금 어두운 쪽을 보니 냉기가 이어지네

唯有色爲寒水玉 다만 빛이 있어 찬물의 옥빛이고

論詩罷似夏蟲氷 시를 논하는 것 파하니 여름벌레가 언 듯하네

 

주석

1)朱明(주명): 여름의 아칭(雅稱).

 

炎凉代謝平分意 더위와 추위가 교대하는 것은 공평한 뜻인데

成歲元非一氣能 세월 이루는 것 원래 한 기운이 이룰 수 없네

未見霜前飛獨雁 서리 이전에 홀로 나는 기러기 보지 못하였는데

可堪秋後轉多蠅 가을 이후에 더욱 파리가 많음을 감당하네

自悄身世勞兼苦 스스로 신세의 노고를 근심하는데

寧恨天時變復仍 어찌 천시의 변화가 이어짐을 한스러워 하겠는가

賴有淸詩爽牙頰 다행히 맑은 시가 있어 입안이 상쾌한데

滌煩還勝水晶氷 번뇌 씻으니 도리어 수정 얼음보다 낫네

 

羈泊簪紳困此辰 나그네로 머무는 잠신들 이날이 곤욕스러운데

敢將心事異甘辛 감히 심사의 달고 매움이 다르겠는가

泥中未議非凡物 진탕에서 비범한 물건을 의논하지 않는데

世上安知無好人 세상에 어찌 호인 없음을 알겠는가

報國自致力作粉 나라에 대한 보답엔 스스로 힘써 가루가 되고

雪羞推拍海揚塵 수치 씻음엔 바다를 쳐서 먼지를 날리네

窮愁不耐秋蠶爲 깊은 시름 가을누에 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고

强向尊中喚作春 억지로 술동이를 향해 불러서 봄을 이루네

 

倥侗自是少經營 어리석어 스스로 경영함이 적고

翰墨才踈語不驚 한묵의 재간 소홀하여 말이 남을 놀라게 하지 못하네

弊洞素○田買郭 나의 동리에 본래 성곽 밖의 밭을 사두었는데

聲名更乏價連城 명성은 더욱 연성벽의 가치가 없고

遭逢已愧○涯分 서로 만나 이미 분수에 넘침이 부끄럽고

羈絏何心畏死生 떠돌며 무슨 마음으로 생사를 두려워하는가

歸夢只勞關塞上 돌아갈 꿈은 다만 관새 위에서 괴로운데

○榛莽莽路縱橫 잡목만 우거져 길이 종횡이네

 

주석

1)連城(연성): 連城璧(연성벽). 전국시대 조(趙)나라가 초(楚)나라의 화씨벽(和氏璧)을 얻었다는 소식을 진(秦)나라가 듣고 조나라에게 15성(城)과 바꾸자고 하였음. 전하여 연이은 성(城)의 가치를 지닌 보옥(寶玉)을 말함.

 

次二師示諸學士韻 <이사의 시제학사운에 차운하다>

對食靡甘寢不安 밥을 대해도 달지 않고 잠자리도 불안하여

還家一夢未曾闌 집에 돌아가는 한 차례 꿈은 무르익지 못하네

秋聲乍起乾坤肅 가을소리 곧 일어나 건곤이 엄숙한데

客意先知枕簟寒 나그네 시름 먼저 잠자리의 차가움을 아네

驚似羈蜼毛羽落 놀라기는 떠도는 원숭이가 우모를 떨어뜨린 듯하고

孱如縶驥道途難 잔약하기는 굴레 맨 천리마가 길 가기 어려운 듯하네

有時東望山河隔 때때로 동쪽 바라보니 산하가 막혀 있고

何日言歸相舞歡 어느 날이나 돌아가 서로 춤추며 즐겨볼 건가

 

遼陽形勢昔開營 요양의 형세는 옛날에 진영을 열었고

威震陰山虜瞻驚 위엄 떨진 음산을 오랑캐들 놀라서 바라보았네

頗老有機望列障 염파 늙은이는 책략을 지니고 여러 요새를 바라보았는데

奢兒無略失長城 조사의 어린 아이는 계략이 없어 만리장성을 잃고 말았네

疆場戲戲餘千里 국토가 기쁘게도 천리가 넘는데

戰伐年年苦萬生 전쟁이 해마다 일어나 만 백성이 괴롭네

可惜衣冠華夏地 애석하구나 의관 입은 중국의 땅

積骸成莽黑煙橫 해골만 쌓여 덤불을 이루니 검은 연기 비켜있네

 

주석

1)頗老(염파): 염파(廉頗) 노인. 염파는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장군. 북방의 흉노를 물리쳤음.

2)趙奢(조사):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장군. 그의 아들 괄(括)이 장평(長平)의 대전에서 진(秦)나라의 백기(白起)에게 대패하였음.

 

曾憶詩樓報日安 일찍이 시 짓던 누대에서 태평을 알리던 때를 추억하는데

山河一隔歲將闌 산하는 한 번 막혀 세월은 저물어가네

瞻天遙村佳辰恨 하늘 바라보며 먼 마을의 명절을 한스러워하는데

催曉更籌暑色寒 새벽 재촉하는 산가지 바뀌어 새벽빛이 차갑네

誓竭丹衷爲羽翼 단충을 다하여 우익이 되자고 맹세하고

自期糜粉濟艱難 가루가 되도록 간난을 구하자고 스스로 기약하였네

何時倒到遼陽海 어느 때나 요양의 바다를 뒤집어서

洗盡窮愁變作歡 깊은 시름 다 씻어내고 다시 즐겨볼 건가

 

久客堪愁寂 오랜 나그네 생활 근심을 감당하는데

心期托有人 마음의 기약을 의탁할 사람이 있네

幽懷寫好句 깊은 회포는 좋은 시구로 베껴놓고

濁酒慰芳辰 탁주로 명절을 위안하네

夷險堅吾節 이험에도 나의 절개를 견고하게 하고

艱危任此身 난위에는 이 몸을 맡기네

無將今日事 장차 금일의 일을 가지고

安樂異踈親 안락에 친소가 다르지 않게 하리라

 

次李獻納九日朔望致禮韻 <이헌납의 구일삭망치례운에 차운하다>

中秋萱落後 중추에 원추리꽃이 떨어진 후

佳節菊垂時 가절의 국화가 드리운 때이네

待漏衣冠促 시간 기다리며 의관을 재촉하고

瞻天相跪隨 하늘 보며 서로 무릅 걸음으로 따르네

臚傳聞座響 호명 소리에 앉는 소리가 들리고

歌詠見新詩 노래 속에서 새 시를 보네

盡日心頭恨 종일 마음이 한스러워

盈襟淚獨知 옷깃에 가득한 눈물을 홀로 아네

 

주석

1)臚傳(여전): 황제에게 알현할 때 호명하는 것.

 

又次前日安字韻 <다시 전일의 안자운에 차운하다>

○爲還似夢槐安 도리어 괴안국의 꿈을 꾼 듯한데

羈緖鰥鰥世味闌 나그네 시름에 눈만 말똥말똥 세상맛이 없는데

雁呌長○邊月苦 기러기 울며 멀리 가니 변새의 달빛 괴롭네

啁鳴遠樹暮聲寒 먼 숲에서 재잘대는 새의 저녁 소리가 차갑고

吟成越○千般恨 읊조림 이루니 천 가지 한이 일어나고

淚盡羝羊一乳難 눈물 마르기는 숫양의 한 차례의 젖처럼 어렵네

不分我生愁與幼 나의 생애 근심과 환몽을 구분할 수 없으니

酒中敎喚暫時歡 취중에 잠시의 즐거움을 불러보네

 

주석

1)槐安(괴안): 괴안몽(槐安夢). 남가일몽(南柯一夢). 일장춘몽과 같음.

 

又次前韻 <다시 전운에 차운하다>

苦憶靑陽裏 청양에 괴롭게 생각하는데

靑樓五尺餘 청루는 오 척이 넘네

周文三問禮 주나라 문왕은 예를 세 번 물었고

漢餘之經書 한나라 때의 경서이네

淹恤殊方久 이방에서 머무르며 근심한 지 오래인데

江山信使踈 강산엔 편지 전하는 사람 드무네

霜秋多少恨 서리 내리는 가을에 다소의 한이 있는데

中夜涕漣如 한밤중 눈물이 쏟아질 듯하네

 

주석

1)靑陽(청양): 봄날을 말함.

2)淹恤(엄휼): 타향에서 오래 머무르며 근심함.

 

路隔三千遠 길은 삼천 리나 막히어 멀고

秋深八月餘 가을 깊어 팔월이네

雁飛行亂字 기러기의 날아가는 행렬의 글자 어지럽고

人病卷迷書 사람은 병들어 책에는 글자가 어지럽네

報國微誠切 보국의 작은 정성이 절실한데

回轅宿計踈 수레 돌리려는 묵은 계책은 소홀하네

朝衣空收淚 조의에 공연히 눈물 거두는데

天意到何如 하늘의 뜻은 어디에 이르는가

 

次輔德韻 <보덕의 운에 차운하다>

鶴髮鴒原與縞衣 백발로 할미새 나는 들에서 상복을 입고

無窮哀慟憶當時 무궁한 애통 속에 당시를 추억하네

憐君不忍吟風雅 그대 그리워 차마 풍아를 읊지 못하겠네

三百篇中幾句詩 삼백편 중에 몇 구의 시던가

 

주석

1)鶴髮(백발): 백발(白髮).

2)鴒原(영원): 할미새가 나는 들판. 형제의 우애를 말함.

3)風雅(풍아): 『시경』을 말함.

4)三百篇(삼백편): 『시경』의 시를 말함. 『시경‧소아』의 <상체(常棣)>시에서 할미새를 가지고 형제의 우애를 말하였음.

 

玉宇霜飛夜氣新 옥우에 서리 날리고 밤기운 새로운데

眼中難見夢中人 시야엔 꿈속의 사람을 보기 어렵네

悲風白草多蕭瑟 슬픈 바람에 백초가 몹시 소슬하고

恐却沙場更不春 사막에 다시 봄이 오지 않을까 두렵네

 

與君秋露感俱新 그대와 함께 가을이슬에 대한 감개가 모두 새로우니

又作殊方苦惱人 다시 이역의 고뇌하는 사람이 되네

蝶夢未知身孑孑 나비가 된 꿈에 몸이 혈혈단신임을 몰랐는데

彩衣時入北堂春 색동옷 입었을 때 북당으로 들어가던 봄이었네

 

주석

1)蝶夢(점몽): 호접몽(胡蝶夢)을 말함.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았는데 깨고 나서 자신이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자신이 된 것인지를 몰랐다고 함.

2)北堂(북당): 어머니의 거소.

 

又次前韻 <다시 전운에 차운하다>

高風沙塞外 높은 바람 사새 밖에 있고

行色九秋餘 행색은 구추가 지난 후이네

草草催長路 초초하게 긴 길을 재촉하며

忽忽付短書 홀홀히 짧은 편지 부치었네

難色須妙略 난색에 반드시 묘한 계략이 있어야 한데

衰朽愧空踈 쇠약하게 시들어 공소함이 부끄럽네

遙想端門裏 멀리서 단문 안을 생각하니

天容舊日如 천용은 지난날과 같으리라

 

주석

1)端門(단문): 원래 노(魯)나라 궁궐 문. 전하여 대궐의 문을 말함.

2)天容(천용): 임금의 얼굴.

 

左袒詞壇上 사단에서 좌단하고

論兵學力餘 논병은 학력의 나머지이네

胸藏幾萬甲 가슴에 품은 것 몇 만의 갑옷인가

內腹○○書 뱃속에는 또 얼마의 서책인가

暴略樞機密 폭략에는 추기가 정밀하고

王戎譏身踈 왕융에는 자신을 원망함이 드무네

終敎○○地 마침내

冠蓋日絶如 수레가 매일 끊어지는 것 같네

 

주석

1)暴略(폭략): 폭행하고 노략질함.

2)樞機(추기): 중요한 정무(政務).

3)王戎(왕융): 왕의 군대. 나라의 전쟁을 말함.

 

又次前韻 <또 전운에 차운하다>

○裏霜飛日 서리가 날리는 날

愁逢月變時 달이 바뀌는 때를 근심 속에 만나네

遙瞻天北極 멀리서 하늘 북쪽 끝을 보니

却羨雁南隨 도리어 기러기가 남쪽을 따라감이 부럽네

怳若龍樓曉 어슴푸레한 용만의 새벽에

渾忘瑣尾詩 온통 쇄미시를 잊었네

回頭仰玉色 고개 돌려 옥색을 우러르니

含恤小臣知 품은 근심을 소신이 아네

 

주석

1)瑣尾詩(쇄미시): 『시경‧패풍(邶風)‧모구(旄丘)』을 말함. 내용은 군신(君臣)이 유리(流離)하며 곤궁한 처지를 당한 것을 읊은 것임.

 

煎藥 <약을 다리다>

辛甘犀苹火同煎 맵고 단 박씨와 쑥을 불로 함께 다리는데

壁盡陰寒暖氣宣 음하고 찬 기운 없어지고 더운 기운이 퍼지네

却憶銀臺南至日 문득 은대의 남지일을 생각하니

恩頒最在百僚先 은혜롭게 나누어준 것 가장 백료들보다 앞이었네

 

주석

1)銀臺(은대): 승정원(承政院)의 별칭.

 

膠椒薑桂蜜成煎 아교 산초 생강 계피 봉밀을 다리니

喚做陽和體裏宣 양화를 불러 일으켜 몸 속에 퍼지네

若使始皇知妙法 만약 진시황이 이 묘법을 알았더라면

宣敎徐巿比來先 서불에게 명하여 가장 먼저 왔으리라

 

주석

1)徐巿(서불):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구하러 갔던 인물.

 

추록(追錄) : 이후는 이경석의 『백헌집』에서 『심양추창록』에 직접 관련된 시편을 뽑은 것임.

 

次李咸卿 <이함경에게 차운하다>

詩奚日日報平安 시가 어찌 날마다 편안함을 알리는가

玉樹頻看意未闌 옥수를 빈번히 보아도 뜻이 차지 않네

萬里乾坤遼海闊 만리의 건곤에 요해가 넓고

五更金鼓朔風寒 오경의 쇠북소리에 삭풍이 차갑네

雲迷陰磧添愁易 구름이 어두운 자갈밭에서 헤매어 수심이 쉽게 더해지고

月照秋窗作夢難 달빛은 가을 창을 비추어 꿈을 이루기 어렵네

待得明年東還日 명년의 동쪽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려서

壽尊開處共淸歡 생일 술동이를 열 때 함께 좋은 즐거움을 나누리라

 

和尙之用以自嘲 <상지에게 화답하여 스스로를 비웃다>

不曾心上費經營 일찍이 마음으로 경영한 적이 없으니

得失悠悠未足驚 득실은 아득하여도 놀라지 않네

此日偏懷典屬國 이날 몹시 전속국을 생각하니

當年虛築受絳城 당년에 수강성을 헛되이 건축하였네

千鍾却是黃龍府 천 종의 술은 도리어 황룡부에 있는데

孤直元非白馬生 외로운 직언엔 원래 백마생이 아니네

旅館坐看秋夜月 여관에서 가을달을 앉아서 보니

碧天如掃數星橫 푸른 하늘엔 쓸어낸 듯 몇 개 별만이 비껴 있네

 

주석

1)典屬國(전속국): 소무(蘇武)를 말함. 19년 동안 흉노에 억류되어 있다가 돌아와서 전속국에 임명되었음.

2)受絳城(수강성): 한(漢)나라 때 세운 성. 적군을 항복하고 투항하게 하였음.

3)黃龍府(황룡부): 부(府)의 이름. 거란(契丹) 때 설치하였음. 지금의 길림성(吉林省) 농안현(農安縣). 이 구절은 다음의 고사를 이용하였다. 진소왕(秦昭王) 때 이(夷)와 맹약을 맺어 진(秦)이 이(夷)를 침범하면 황룡 한 쌍를 보내고, 이가 진을 침범하면 청주(淸酒) 일종(一鍾)을 보낸다고 돌에 새겼다. 따라서 천 종의 술이 황룡부에 있다는 것은 오랑캐인 청나라의 침범을 말하는 것임.

4)白馬生(백마생): 동한(東漢)의 장담(張湛). 광무제 때 충간을 잘하였음. 항상 백마를 타고 다녔으므로 황제가 백마생이라고 불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