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56_back.gif blue56_up.gif blue56_next.gif                        上世譜2-11      quartz_red.gif세계도 보기

8세

謝奇

 

 

 

 

 

 

 

 

 

사기

 

 

 

 

 

 

 

 

 

9세

 

 

 

 

 

 

 


 

 

 

 

 

 

 

 

 

 

 

 

 

10세

孝先 

仲輔 

文獻

仲平

 

 

 

 

 

 

敬善

 

 

 

 

 

 

효선 

중보 

문헌

중평

 

 

 

 

 

 

경선

 

 

 

 

 

 

11세

 

 

 

侯瑀

 

烋瑀

 

 

 

 

洪瑞

 

 

 

 

 

 

 

 

 

후우

 

휴우

 

 

 

 

홍서

 

 

 

 

 

 

12세

 

 

 


 

之民

 

 

 

 

正德

 

正粹

 

 

 

正命

 

 

 

 

지민

 

 

 

 

정덕

 

정수

 

 

 

정명

13세

 

 

 

尙禮

閔誠

仲賢

仲明

 

仲聖

 


 


 

 

具瞻


 

 

 

상례

민성

중현

중명

 

중성

 

사보

 

 

 

구담

14세

 

 

 

友信

 








克類

克順

克德

 

如斗

 

 

 

우신

 

극류

극순

극덕

 

여두

 2k

 

 

 

縣監公

 

 

 宣傳公

 通德郞

府使公

 府事公

進士公

 縣監公

進士公 

 正郞公

 洗馬公

 

部將公

 

 

 

 

9世 泳(영) 一作 永

字:貞甫(정보) 諡號 正惠(정혜), ○仕元官亞中大夫○行臺御史河南府路摠管兼 本路諸軍奧摠管 管內勤農事知河方事○贈集賢殿直學士經車都尉高陽侯, 配高陽郡夫人崔氏稼亭李穀撰行狀
공은 고려 충숙왕조와 원나라의 문신이다. 휘는 泳이고, 일명 永, 字는 貞甫이며, 제학공 謝奇의 둘째 아들이며, 문혜공 康의 손자이다. 충렬왕 5년(1279) 3월에 고려 세신대가의 자녀들을 禿魯花(독로화; 인질)로 원나라에 파견할 때 부친인 謝奇도 25인에 선발되어 伯氏인 渥과 함께 따라 갔다. 그래서 공은 나이 어려서부터 황제가 있는 곳에서 자라며 글을 배우다가 충렬왕 29년(1303)에 숙위(宿衛;황제를 호위하는 친위병)에 선발되고 4년 후 인종의 잠저(潛邸;왕에 오르기 전에 사는 사저)에 입시하여, 이듬해 승무랑자무고제점이 되고, 황경 원년(1313년, 고려 충선왕 5년)에 수무고사를 거쳐 이기고사, 금주자사를 역임하고 지치(至治) 2년(1322년, 충숙왕 9년)에 고주자사가 되어 고을을 다스렸는데, 고주는 변방으로 다른 夷族의 칩입이 심하여 백성들도 없고 생산이 없으며 도둑이 만연하였다. 공이 부임하여 스스로 검소하고, 덕으로 이들을 정성껏 감화시켜 도둑질을 하는 자는 엄하게 다스리니 고을에 평화가 이루어졌다. 이 때 충숙왕이 원나라에 오래 머물렀는데, 간신 權漢功(권한공)이 왕위를 瀋王(심왕)에게 넘기려고 꾀하는지라 시조하는 신하들이 절의를 다하여 보좌하였으니 그 공을 높이 샀다. 충숙왕 14년(1327) 11월에 왕이 교지를 내려 정승 윤석, 상당군 한악 등 26인에게 1등 공신을, 찬성사 정방길과 검교판서 한영들 54인에게는 2등 공신을 책훈하고 전답과 노비를 주고 그 부모 처자에게 작을 내렸다. 천력(天歷) 원년(1329, 고려 충숙왕 16년)에 의주로 전임 후 어사대의 천거로 하서농북도 첨렴방사사가 되고, 2년 후 아중대부 합서성원외랑을 거쳐 또 2년후 하남부로총관(河南府路摠管)에 임명되었다. 공은 비록 원나라에서 벼슬하고 있었지만 백성에게 이로운 것은 일으키고 병이 되는 것은 반드시 제거하였다. 은폐된 것을 검사하고 살펴서 실정을 파악하여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조세를 면제해 주고, 또한 관사를 새롭게 하고, 지방도로를 개설하고, 마을의 집들에 대문을 세웠으며, 농사와 뽕나무 재배를 권장하여 누에를 길러 비단을 생산하고, 약국을 세워 백성을 병으로부터 구제하고 천문관측기를 설치하여 기상을 관측했다. 또한 백성에게 배움보다 더한 것이 없다 하여 학문을 장려하였다. 무릇 멀리 살고 있는 백성들까지도 억울한 일들을 하소연하면 정성으로 조사하여 풀어주었다. 충숙왕 복위 5년(1336)에 관직에 재직중 졸하니 집현전직학사(集賢殿直學士) 아중대부(亞中大夫) 경거도위(經車都尉)에 증직되고 고양현후(高陽侯)에 추봉되었다. 시호는 정혜(正惠)이다. 이렇듯 공이 귀하게 되자 원나라 순제가 공의 부친인 謝奇에게 한림직학사 고양현후를, 또한 祖父 康에게는 첨태상 예의원사 고양현백을 추증하였다.
부인은 고양군부인(
高陽郡夫人) 최씨(崔氏)이고 아들은 감찰어사 孝先(효선)과 무공고부사 仲輔(중보), 급사동궁 文獻(문헌)과 이부상서 仲平(중평)이다. 稼亭 李穀이 지은 行狀이 있다.

10世 孝先(효선)

다른 이름은 孝元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원나라에서 관직에 나가 감찰어사(監察御史)를 지냈으며 중국에 귀화하여 후손은 중국에 거주하였다.

10世 仲輔(중보)

다른 이름은 孝亨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원나라에서 관직에 나가 무공고부사(武功庫副使)를 지냈으며 중국에 귀화하여 후손은 중국에 거주하였다.

10世 文獻(문헌)

다른 이름은 孝利라고도 기록되어 있고 자(字)는 承壽이다. 원나라에서 관직에 나가 급사동궁(給事東宮)을 지냈으며 중국에 귀화하여 후손은 중국에 거주하였다(以上三昆弟子孫居中國).

10世 仲平(중평

공은 원나라의 문신이었다. 휘는 仲平(중평)이고, 일명 孝貞(효정), 字는 貞夫(정부)이며, 독로화로 원나라에 건너간 제학공 謝奇(사기)의 손자이며, 원나라에서 벼슬한 하남로 총관 정혜공 泳(영)의 넷째 아들이다. 공은 부친과 함께 원나라에서 성장하고 벼슬에 올라 감무(監務)에 이르고 누진하여 문하성(元門下省)의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랐다가 본국인 고려로 돌아왔다(還本國). 배위는 무송유씨(茂松庾氏)로 정랑(正郞) 忠佐(충좌)의 따님이다. 아들은 해지관 侯瑀(후우)와 충렬 烋瑀(휴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