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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士信

 

 

 

 

 

 

 

 

사신

 

 

 

 

 

16세

 

 

 

 

 

 

 

 

 

 

17세

性源

 

 

 

 

 

성원

 

 

 

 

 

18세

 

 

 

 

 

 

 

 

 

 

 

 

 

 

 

 

 

 

 

 

 

 

 

 

 

 

 

 

 

 

19세

興吉

 

 

 

 

 

 

 

 

 

 

흥길

 

 

 

 

 

 

 

 

20세

 

 

 

 

 

 

 

 

 

 

 

 

21세

李震旭

高尙志

金盛明

起世

仁世

 

吾世

 

 

이진욱

고상지

김성명

기세

인세

 

오세

 

 

22세

 

 

 

震渭

震慶

震楨

震錫

 

 

 

 

 

 

 

 

 

 

 

 

진위

진경

진정

진석

 

 

 

 

 

 

 

 

 

 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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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世 楗(건)

1540(中宗庚子)~1601(宣祖辛丑).9.10 司猛
○配 파평윤씨(坡平尹氏) 1627(仁祖丁卯)5.7.卒
○墓 용인시 남사면 통삼리 통곡촌(通谷村=舊地名 道村) 마생곡(馬生谷) 오좌(午坐) 합조(合兆)

19世 興吉(흥길)

충의위(忠儀衛) 사맹(司猛)
○配 전주이씨(
全州李氏) 父 진사(進士) 형(珩)
○墓 용인시 남사면 통삼리 통곡촌(通谷村=舊地名 道村) 마생곡(馬生谷) 합조(合兆) 유표석(有標石)

20世 塑(소) cybernation_back.gif

 quartz_red.gif 숭모재기

 quartz_red.gif 판서공 유적명

 quartz_red.gif 崇慕齋告由文

 quartz_red.gif 숭모재고유문(역문)

 quartz_red.gif 판서공 재실 및 묘소

初諱 致範(치범) 字 邦瑞(방서) 1584(宣祖甲申)10.6.~1651(孝宗辛卯)10.13.
1624(仁祖2年甲子)자헌대부(資憲大夫)행병조판서(行兵曹判書)문장재망일세(文章才望一世)
○配 정부인(貞夫人) 연안차씨(延安車氏) 1652(壬辰)10.13.父 천락(天絡)
○墓 경남 사천군 북면 구암리 강성곡(江城谷) 립우산(立牛山) 병좌(丙坐) 유갈(有碣) 합조(合兆)
歲享日 음력 10월 13일

崇慕齋記(숭모재기) 판서공 소

欲闢勝地美飾者人之由情也自晋陽城翩然邇距十餘里之外奈洞面篤山里山康村者方內之名區淸州韓氏累世桑梓之庄也負于西淸湖枕于北大江而峀雲煙霞四時崱屴萬山腰擁不敢口現一幅之仙畵也橫流菁江溶溶之間垂竿而華翁者盖若尙父文王之待而衡宇三逕栽葵而食種菊而飮後誦詠而盤桓者盖若淵明之趣閑前座而挑燈心自讀書聲於溺不聽曉鷄鳴也盖董子之學行君子覓探此所當然矣昔崇政大夫兵曹判書諱塑晩年與徒遊道義自京畿高踏遠引泗川于卜居厥後玄孫龍衛副護軍諱命德公始移居于奈洞豈宿儒不止於此所乎殆至二百有餘歲之間克保家聲而先賢之儒染庭訓欲傳於後世眞可以令終之役也

 승지를 열어 아름답게 꾸미고자 함은 사람의 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진양성으로부터 훌쩍 날아갈 수 있는 십여리 밖에 내동면 독산리 산강촌은 이 지방 안에서는 이름난 터요 청주한씨가 누세로 농사짖고 살던 곳이기도 하다. 서쪽에 맑은 호수를 짊어지고 북쪽에 대강을 베고 돌에서 나오는 연하가 사시로 높고 낮은 여러산을 안고 있으니 감히 입으로 표현 못 할 한폭의 신선도다. 비스듬히 흐르는 남강의 넓고 조용한 사이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늙은이는 옛날에 강태공이 문왕을 기다리는 것 같고 오막사리 삼경에서 채소를 심고 국화를 길러 술 빚어 마신 뒤에 시를 읊으며 거니는 것은 대개 도연명의 한가로운 취향이요 등잔을 밝히고 심지를 돋우며 스스로 글 읽는 소리에 빠져서 날샌줄을 모름은 대개 동중서의 학행이니 군자가 이런 곳을 더듬어 찾는 것이 당연하도다. 옛날에 숭정대부 병조판서 휘소께서 만년에 좋은 벗을 찾아 세상 범속을 버리고 멀리 사천으로 내려와서 살 만한 곳을 가려 정착하였고 그후 현손 용양위 부호군 휘명덕공이 비로소 내동으로 옮겨오니 어찌 학식과 덕망있는 선비가 살곳이 아니리오. 그후로 이백여년의 세월에 집안의 명성을 잘 보존하면서 어진 선조가 가르친 가훈을 실천하며 그것을 후세에 전하고자 노력하니 참으로 보람을 거둘 수 있는 일이로다.

 日其貴門之令孫奉愚亨基兩氏予之訪書齋記於予請而曰判書公沒于世遠嘉言懿德竹帛勳業懼歲愈久而泯沒無傳羹牆之道日益疎遠無苾芬之所者豈不爲慨然也哉爲然慕先之誠住在乙亥秋享時與諸宗人營建一舍于吻合詢議然後各任分役健力者長嶝下均堆石成基而開勝區文老者鳩財醵出而執書筆遂築一室突兀楣楔而扁其名曰崇慕來請於乞文盖崇慕也者追遠不勝感愴之道故允誠其不休哉不敢固辭而忘拙

 어느날 귀한 가문의 영손 봉우, 형기 두분이 나의 서재로 찾아와서 나에게 글을 청하면서 판서공이 돌아가신지가 오래되어 훌륭한 교훈과 아름다운 덕행과 죽백에 기록한 훈업이 세월이 오래되면서 잊혀저 전하지 못할까 두렵고, 향사를 모심과 사모하는 도리가 날이 갈수록 더욱 소원해 지니 선조를 받들고 모실 장소가 없는 것을 어찌 탄식하지 않겠는가. 선영을 사모하는 정성이 그러하여 지난 을해년 묘제시에 여러 종인과 더불어 조그마한 집을 세우는데 의견을 모아 각각 소임을 나누니 건장한 젊은이는 흙무더기와 돌을 골라 터를 닦아 승구를 개척하고 글하는 늙은이는 종재를 모으고 돈을 거두며 문서를 작성하여 드디어 한채의 집을 짓고 현판을 높이 걸고 그 편명을 숭모재라하고 나에게 와서 글을 청한다 하니 대개 숭모라는 것은 지나간 먼일을 그리워 하면서 사모하는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한 도이므로 진실로 그 정성이 아름답지 아니한가. 감히 사양치 못하고 졸렬함을 잊고 붓에 먹을 찍으니

 以慕先之誠者自出於尋常其本者自鄕至於行路人有稱頌指點也幾何以偉哉是故所以斯齋之起必不偶然也諸子孫者能守繼述以闡揚遺香登臨斯齋之時不忘貽訓之則雖囂塵之叔世不能百世圮泐之憂尋哉

 선조를 사모하는 정성은 예사롭지 않은데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은 그 근본은 향당으로부터 길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칭송을 받으니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므로 이 재실을 세운 것이 우연이 아니다. 모든 자손들이 조상의 뜻과 업적을 이어 가는데 어긋남이 없고 고인이 남긴 미덕을 밝께 드러내어 이 재사에 오를 때면 조상이 남겨둔 교훈을 잊지 아니한즉 비록 세상이 어지럽고 소란스러워도 이 재사의 향화는 영원하리라.

1996년(歲丙子) 양춘절(陽春節) 광산후인(光山後人) 김영건(金永乾) 記

崇政大夫兵曹判書淸州韓公遺蹟銘幷序(숭정대부병조판서청주한공유적명병서) 판서공 소

千枝萬葉所以枝達葉潤者盖土深肥根之故也天地無違賴於循環不知理共生土壤之受氣眞可以鬱然而巳矣先祖精靈雖云無體無臭在山川靈秀之間常諦而有所助焉以先祖潛光毓德燾其蔭德於後昆不置差於貧富瓜諸子孫者妄忘其報恩於祖未盡誠之道實擊胸而慨然之事也然在晋陽治之奈洞面淸州韓氏宗人者世道板蕩人心浮薄之間謙謙幅而其先貽訓世世家傳躬行而眷眷服膺豈不休

 천지만엽이 가지를 뻗고 잎이 윤이나게 되는 까닭은 대개 흙이 깊어 뿌리가 살찌기 때문이다. 천지의 도는 어김없이 순환하건만 토양의 기운을 받아 공생하는 이치를 모르니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선조의 영혼이 비록 몸도 없고 체취를 느낄 수 없다고하나 산천에 함께 계시면서 항상 살피고 도와주고 후광과 음덕이 자손 모두에게 차별없이 고루 미치나 모든 자손들은 망동되게도 선조에게 갚아야 하는 은혜를 잊고 성의의 도를 다하지 않으니 실로 가슴을 치며 탄식할 일이다. 그러나 진양군 나동면에 세거하여온 청주한씨 종인들은 세상 인심과 도덕이 어지럽고 천박한 가운데서도 겸손하고 진실되고 선조가 남긴 교훈을 정성으로 세세가전으로 실천하면서 늘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고 실행하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哉日奉愚洪愚亨基氏其門之中祖家狀而持余訪書齋屬乞銘之遺事余素無學非才敢難而勘累而固辭不聽而益勸不獲而舒狀按曰公諱塑初諱致範字邦瑞上祖高麗朝統合三韓開國壁上功臣太尉諱蘭諡威襄公忠穆王朝輸忠贊化功臣匡靖大夫判厚德府事右文館大提學知春秋館事上護軍封淸城府院君諱脩號柳巷諡文敬公九代顯祖入朝鮮惟忠同德翊戴開國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世子師封西原君諱尙敬號信齋諡文簡公八代祖太宗朝文科壯元嘉義大夫咸吉道觀察使封淸山君諱惠號松齋公七代祖世宗朝文科推忠定難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崇祿大夫議政府右贊成封西平君諱繼禧諡文靖公六代祖高祖曰常曾祖曰性源祖曰楗考曰興吉宣祖朝文科官至掌令光海昏主遯于靈光陳石山下妣恭人海豊張氏大鎔女

 어느날 봉우,홍우,형기씨가 그 문주의 대표로 중조에 관한 문중의 문서를 가지고 나의 서재로 찾아와 유사비명을 부탁하니 내가 본래 학문이 얕고 재주가 없는지라 감히 감당키가 어려워 여러번 사양 하였으나 듣지 않고 더욱 청하여 더는 거절할 수 없는지라 하는 수 없이 가장을 상고하여보니 공의 휘는 소요, 처음의 휘는 치범이며 자는 방서이다. 상조는 고려조 통합삼한 개국벽상공신 태위 휘는 란 시호는 위양공이요, 충목왕조에 수충찬화공신 광정대부 판후덕부사 우문관대제학 지춘추관사 상호군 봉청성부원군 휘수 호유항 시문경공이 구대조요, 조선조에 들어와서 유충동덕익대개국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장부영의정 세자사 봉서원군 휘상경 호신재 시문간공이 팔대조요, 태종조에 문과에 장원하여 가의대부 함길도관찰사 봉청산군 휘혜 호송재공이 칠대조요, 세종조에 문과하여 추충정난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 숭록대부 의정부우찬성 봉서평군 휘계희 시문정공이 육대조이며, 고조는 상이요, 증조는 성원이요, 조는 건이요, 아버지는 흥길이니 선조조에 문과하여 벼슬이 장령에 이르렀으나 광해군의 정사가 어지러움에 영광 진석산하로 퇴거하여 여생을 보냈으며, 어머니는 공인 해풍장씨로 대용의 여식이다.

 公宣祖十七年甲申十月初六日生于京畿道廣陽故第弱冠而親蠱助意光海昏政遯于靈光陳石山下而不忘兩親式穀之義以晝宵養豪邁拔衆之才守峻潔之操豊功偉績爀於一世之名門莫非於心中深刻而濂洛關之務聲華風標以內百里鳴振矣仁祖反政後甲子行資憲大夫兵曹判書陞資以有斐令德上以信忠竭力報君國益之務下以節用愛人施善而黎民蒙養或有暇日則與有德者道義文遊觴飛詩興不聽鷄鳴朝廷勳臣者無不從公者也然一世榮辱豈一席之留乎公晩歲從遊道義慶南泗川移居于逍遼孝宗二年辛卯十月十三日卒享年六十八墓于泗川郡北面龜巖里江城谷立牛山丙坐原配貞夫人延安車氏吏曹判書天輅女有貞淑婦德卒于壬辰同原合兆生三男起世仁世吾世震渭長房孫震慶震禎次房孫震永季房孫曾孫以下世遠蕃故皆不錄也嗚呼當世英雄權柄者之勢而顧之則不足以天動地歸于塵土之中光陰無常積疊萬尺矣爲之銘曰

 공은 선조17년 갑신 10월 6일 경기도 광양(광주 혹은 용인)에서 태어났다. 광해군의 혼정을 꺼려 벼슬을 버리고 퇴거한 부모를 따라 영광군 진석산 아래에서 가사를 도우며 소년기를 보냈다. 훌륭한 부모님의 가르침과 혁혁한 가문의 후예임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밤낮으로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염계,명도,이천,장재,주희의 학문에 정진하니 그 명성이 백리밖에 까지 떨쳤다. 인조반정후 갑자년에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올라 위로는 국가의 업무를 믿음과 충성으로 힘을 다하여 군왕에게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애게 근검으로 모범을 보이고 선정을 베풀고 가르쳤으며 혹시 여유로운 시간에는 덕망있는 선비와 도리와 의를 논하며 시흥에 취하여 잔을 기울임에 밤가는줄을 잊었으니 조정의 벼슬하는자 공을 멀리 하는이 없었다. 그러나 일세의 영과 욕이 어찌 한곳에만 머무르리요, 공은 도의로 사귄 벗을 찾아 경남 사천으로 이거하여 만년을 지내시다가, 효종2년(1651) 10월 13일 돌아가시니 향년이68세요, 산소는 경남 사천시 북면 구암리 강성곡 입우산 병좌이고, 부인이신 정부인 연안차씨는 이조판서 천로의 여식으로 그 성품이 맑고 곧고 후덕하였으며 임진년(1652)에 돌아가시니 입우산 병좌에 공과 합조이다. 아들 삼형제를 두었으니 기세, 인세, 오세이고, 진위는 장손으로 기세의 아들이요, 진경과 진정은 인세의 아들이며, 진영은 오세의 아들이다. 증손이하는 세대가 멀고 번성하여 다 기록하지 않는다.  아아-당세에 영웅으로 권력을 가진자 돌아보니 하늘을 들고 땅을 흔들었어도 흙으로 돌아가니 세월이 덧 없구나.이에 명을 지으니

 貞珉銘公者 勳舊望族  곧은 옥돌에 새긴 공의 이름은 공훈과 이름높은 가문이로다
 龍頭蓮跌   齋庭撑天  용머리에 연꽃좌대가 재실뜰에서 하늘을 버티었도다.
 班班令德   旣久世沒  아름답게 빛나는 덕은 세월속에 묻히어가도
 規圓矩方   不窮世傳  그림쇠와 곡척은 끝없이 세상에 전하리로다
 賢孫願情   竟方奏功  어진 자손들의 바람이 마침내 보람되게 이루어졌도다
 附銘如此   敬虔過覽  이와같이 명을 붙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보고 가소서

   歲丙子(1996) 陽春節(양춘절) 光山後人(광산후인) 金永乾(김영건) 撰(지음)

十一世孫(십일세손) 奉愚(봉우)  瑢愚(용우)  順愚(순우)  命愚(명우)  
                                           哲愚(철우)  星愚(성우)  洪愚(홍우)  泰愚(태우)  省愚(성우)
                      十二世孫(십이세손) 亨基(형기)  舜基(순기)  基牲(기생)  基葉(기엽)  基福(기복) 謹竪

崇慕齋告由文(숭모재고유문) 판서공 소


歲次丙子七月十二日甲午十二世孫亨基判書府君折衝將軍府君嘉善大夫龍
衛副護軍府君通政大夫孝子鎭奎府君四位碣前伏惟敢告厥由世遠世亂佛慕盡誠子孫之道無彊疎迂當世徵判書公生涯狐三十在位淸要公私如矩操履安詳廉約小心克己奉公節用愛人糠粃之士諂求之徒興利之臣闕內絶大明將輝天休兀立是非論辨小大經論躬行僞謙岡弗興迪嗚呼偉哉公之貽績雖千子孫罔踏公影皇天愧畏今此勝闢不具俎豆蘋繁陣設四位府君同床歆享能知非禮是諸孫恭涓吉日稽首伏拜敢告厥由欣然陟降萬世保地
歲丙子(1996)七月十二日甲午十二世孫亨基敢告

 숭모재고유문(역문)

세월이 흘러 병자년 7웡12일 갑오에 12세손 형기는 병조판서부군과 절충장군부군,가선대부용양위부호군부군,통정대부효자부군 네분의 비앞에 꿀어앉아 감히 오늘의 경위를 고하나이다. 세대가 멀고 세상이 어지러워서 사모의 정성을 다하지 못하니 자손의 도리가 한없이 소원하였나이다. 당세를 어렴풋이 상고하건대 판서공부군의 생애는 청렴하셨던 것 같습니다. 조정의 중요한 직위에 계시면서도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셨고 몸가짐이 침착하고 조용하며 청렴하고 검소하며 매사에 조심하여 사심없이 공무에 임하며 물자를 아끼고 백성을 사랑하니 아첨하고 이익을 쫒는 무리들도 궐내에서 공을 두고 쑥덕거리지 못하였다. 장차 맑은 공의 모습이 드러나 그 아름다움이 우뚝서게 되었다 옳고 그름의 논조를 정당하게 분별하여 밣히고 크고 작은일을 빈틈없이 처리하고 남을 높이고 나를 낮추어 몸소 실천하니 더불어 순종치 않는이 없었다. 아--,위대하여라. 공이 남기신 발자취여. 비록 천명의 자손이 있다하나 공의 공의 작은 발자국도 채울 수 없으니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오늘 이 승구를 열어서 예기도 갖추지 못하고 변변치 못한 제물을 차리고 네분 부군을 한자리에 모시게 됨이 예의가 아님을 아오나 여기 모인 모든 자손이 좋은날을 가려 공손히 머리숙여 절하며 감히 그 사유를 고하오니 기쁘신 마음으로 임하시어 흠향하시고 만세토록 이 땅을 보호하여 주소서.
 1996년 병자 7월 12일 갑오일에 12세손 형기 감히 고하나이다.

判書公의 齋室과 墓所 판서공 소

숭모재(판서공 재실)          

숭모재옆 뜰에 세운 판서공이하 선조들의 기적비             

       경남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 소재

좌로부터 諱塑, 諱秉有, 諱命德, 諱鎭奎(27세)公의 碑이다.

판서공의 병조판서 임명 교지

판서공파 고문서 11점의 경남문화재295호 지정서

판서공의 묘소(사천시 북면 구암리 소재)

판서공의 묘비(전,후면)

21世 起世(기세) cybernation_back.gif

初諱 世烈(세열) 字 元寶(원보) 1606(宣祖丙午)7.9.~1661(顯宗辛丑)4.5.
○配 분성김씨(盆城金氏) 1611(辛亥)~1683(癸亥)9.10. 父 용한(龍漢)
○墓 경남 사천군 북면 구암리 강성곡(江城谷) 립우산(立牛山) 선영(先塋) 병좌(丙坐) 합조(合兆) 유갈(有碣)

22世 震渭(진위)

字 泰之(태지) 1639(仁祖己卯)1.3.~1699(肅宗己卯)3.20. 墓 경남 사천군 유동면 탑리
○配 밀양박씨(密陽朴氏) 1640(庚辰)~1702(壬午)3.4. 父 학룡(學龍) 墓 건위동원(乾位同原) 자좌(子坐)

21世 仁世(인세)

初諱 世仁(세인) 字 景寶(경보) 1610(光海庚戌)5.8.~1699(肅宗己卯)10.22.
유효행(有孝行),이수증지중추부사(以壽贈知中樞府事)
○配 증숙부인(贈淑夫人) 진양강씨(晋陽姜氏) 父 태경(泰敬)
○墓 경남 고성군 상리면 조산리 와곡(蛙谷) 병좌(丙坐) 합조(合兆) 유표석(有表石)

22世 震慶(진경)

字 泰叔(태숙) 1638(仁祖戊寅)3.10.~1718(肅宗戊戌)4.3. 유효행(有孝行)
墓 경남 고성군 상리면 오산리 조두계관산(鳥頭契冠山) 임좌(壬坐)

22世 震禎(진정)

字 泰敬(태경) 1645(仁祖乙酉)~1732(英祖壬子)2.27.
○配 진양정씨(晋陽鄭氏) 1646(丙戌)~1705(乙酉)4.7.
○墓 경남 고성군 삼산면 천황산(天皇山) 경좌(庚坐)

21世 吾世(오세)

初諱 世吾(세오) 字 益五(익오) 1644(甲申)~1693(癸酉)3.18.
○配 경주이씨(慶州李氏) 1645(乙酉)~1706(丙戌)9.9. 父 석홍(碩洪)
○墓 경남 통영시 도산면 원산리(院山里) 사계촌상(沙溪村上) 유좌(酉坐) 합조(合兆)

22世 震錫(진석)cybernation_back.gif

一諱 鎭錫(진석) 字 永化(영화) 1675(肅宗乙卯)~1745(英祖乙丑)5.5.
○配 연안김씨(延安金氏) 1675(
乙卯)~1754(甲戌)4.16. 父 권(權)
○墓 통영시 도산면 저산리 기곡(基谷) 간좌(艮坐) 합조(合兆)